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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Aug 01. 2023

문해력 향상을 위해선 요약을

책 <어머니 문해력은 요약이 전부입니다>


나는 공부를 할 때든 책을 읽을 때든 요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더불어 잘하고도 싶다. 독서와 공부에는 끝이 없다고 하니 평생의 숙제랄까. 사실 이건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주 큰코다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거기도 한데, 1학년 1학기 서양사 강의를 잊을 수가 없다. 교과서는 없는데 '배운 부분에서 시험을 내겠다' 고 하시던 교수님. 강의 계획서에는 알아서 찾아 읽으라는 듯 나열된 수많은 참고문헌들. 시험지는 앞뒤 깨끗한 여백의 B4 용지 더미. 칠판에 "십자군 전쟁의 발생 배경과 영향, 전쟁의 의의에 대해 논하시오." 라고 적으시곤 "종이 여기 둘 테니 원하는 만큼 가져가세요." 이라고 하시던 말씀.


그때 나는 현실 부정과 더불어 인생 내 인생 최고의 회의를 경험했던 것 같다. 왜 대학에서의 시험은 객관식은커녕 단답형 주관식도 없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 내가 고등학교 내내 배웠던 건 뭘 위한 거였지?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했고 시험이 끝나고 첫 수업, 쉬는 시간에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제가 1학년인데 제 답안지의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었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다행히 화를 내시기는커녕 친절하게 보완해야 할 점을 짚어주셨던 거로 기억한다. 물론 여전히 내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참고문헌에 적힌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읽어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는 이해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고, 그렇게 1학년 1학기를 백지 B4 용지의 트라우마와 함께 마무리했다.


이후 만난 교수님들은 자꾸만 시험을 '페이퍼로 대체' 하고 기말고사는 한 학기 동안 배운 작가들 중 한 사람을 골라서 세 작품 이상에 관한 글을 쓰기를 원하셨다. 분석이 어려우면 관련 논문 스무 편 이상을 요약해 오라 하셨다. 요약하면 '읽어는 보겠다' 하셨으니,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후자를 택했다. 초록에 이미 요약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하지? 표절하면 안 된다는데 어떻게 써야 하지? 그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준 바 없는 것을 요구받은 것에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A4지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받아쓰며 정리 아닌 정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끊임없는 요약과 패러프레이징의 연속. 과제 하나, 시험 하나당 대여섯 번의 요약 과정을 거치면 내 이름 석자를 적어낼 수 있는 페이퍼를 만들 수 있었다.


깨달았던 것은, 비단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관해 나만의 견해를 표하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이해와 더불어 < 패러프레이징, 요약, 암기 > 의 과정이 필수라는 것이었다. 4년의 대학 생활은 보고 배운 것에 대해 그것들을 숙달하는 연속이었다. 수업 시간은 그것을 끄집어내서 표현하고 타인의 의견과 비교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과정의 연속이었으니까.


수많은 책을 탐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속독을 위해선 천천히 정독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나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 아니기에 수많은 참고문헌들 중 내게 읽기 쉬웠던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뇌로 읽는 게 아닌 눈알만 굴리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불안감. 그 불안감 때문에 손을 계속 움직였고 입을 계속 열었다. "교수님 이 구절에 대해 저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도 되는 건가요?," "이렇게 써도 논리가 괜찮나요?" 끝없이 질문을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생각보다 재밌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고, 모르는 거에 겁먹을 거 없다는 상반된 두 말을 염두에 두며.


책을 읽는 내내 이걸 그때의 내가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혼자 지나온 시간들이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지문 요약을 계속 시키고 있기에 나름의 확신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맞네, 라는. 여담인데 에디톨로지에서 배운 카드 요약을 적용하면 더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실질적으로 요약을 놀이처럼 익힐 수 있는 여러 교수법을 설명해 주신 것이 좋았다. 쉬운 언어로 쓰인 실용적 요약 실천서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가나문화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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