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근래 들어 (사실 지난 주말 이래로 내내 ···) 사람은 큰 물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이 더 절실히 와닿는다. 경력 짬밥을 칭찬한다는 의미로 "너도 고인 물 다 됐구나." 라는 말에 현타가 오기도 하고, 실제로 현 상태에 고여 있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져 터질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읽고 봐도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굴러가는 삶과 다름없는 것 같다. 삼십 대가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죽으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지금으로부터 십 년 뒤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불안해서 또다시 뭔가를 읽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독서광이나 책벌레가 아니기 때문에 "책을 왜 읽나요?" 라는 말에 자동반사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표현하자면, "집에서도 다른 세상과 삶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떠한 생각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와 같으니까요." 와 같은 판에 박힌 말을 내뱉을 뿐.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사실 책 추천을 위한 책은 사보지 않는 편인데, '퓰리처상을 수상한 《 뉴욕타임스 》 서평가' 의 서재, 그의 생각의 지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여담인데, 최근 들어 누군가의 SNS 나 유튜브 피드를 보면 그 사람의 무의식적 기호를 알 수 있지 않나라는 의심이 드는 참이다)
이민자의 자녀로서 어릴 때부터 독서를 사랑했던 저자는 비평가가 아닌 한 명의 독자로서 아흔아홉 권의 책을 골라 소개했다고 한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각 챕터가 단숨에 끝날만큼 호흡이 짧고 빠르게 읽힌다. 번역본을 읽었기 때문에 번역한 분의 한국어 능력인 것도 있겠지만, 짧은 문장들인데도 읽기 좋은 호흡으로 문장이 간결하게 쓰인 게 참 부러웠다. 그러나 짧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건 아니다. 저자가 꾹꾹 눌러쓴 단어 하나하나에는 그가 살아오면서 읽어온 동서고금의 무한한 레퍼런스들이 현실정치와 판타지를 막론하고 종과 횡을 가로지르며 얽혀 있다.
발췌
[...] “우리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성장하고 동굴을 떠나 활과 화살을 내려놓고서 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병든 사람들을 도운 이유는, 다시 말해 황폐한 사막과 혼란한 정글에서 벗어나 집을 짓고 사회를 만든 이유는, 책 읽기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우리한테만 일어났다고 생각한 일을 책에서 읽고서 그 일이 100년 전 도스토예프스키한테도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제임스 볼드윈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이는 언제나 자기 혼자라 생각하고 괴로워하며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매우 큰 해방이다. 이것이 예술이 중요한 이유이다.”
[...] “책 읽기는 우리 모두를 이민자로 만든다. 우리를 고향으로부터 멀리 데려간다.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어디서든 우리의 고향을 찾게 해 준다.”
[...] 최고의 문학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며, 확실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우리의 기본 설정값을 재검토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책은 우리를 오랜 사고방식으로부터 흔들어 깨워, 우리 대 그들이라는 반사적인 생각을 미묘한 차이와 맥락에 대한 인식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 문학은 정치 신념, 종교 교리, 관습에 따른 사고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우리를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에 노출시킨다.
[...] 문학은 “자기 두개골 속에 고립된” 독자가 상상으로 “다른 자아에 접근”하게 해 준다. 정치와 사회의 분열로 쪼개진 세계에서, 문학은 시간과 장소를 가로질러, 문화와 종교 그리고 국경과 역사 시대를 가로질러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 우리의 것과 아주 다른 삶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인간 경험이 주는 기쁨과 상실감을 함께 나눠 갖는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다.
[...] 훌륭한 문학작품이란 먼지투성이의 오래된 고전이 아니라 인간이 영원히 씨름해야 할 문제를 다루는 대담하고 창의적인 작품이었다. 우리가 신, 자연, 운명과 갖는 관계, 그리고 인간 이해의 원대한 가능성과 엄연한 한계에 대한 본질적 문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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