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은 처음인데 문체가 너무 리드미컬하고 담백해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비롯하여 두 개의 작품이 삼부작을 이룬다는데 곧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삶을 이루는 모든 것에 궁금증을 던지면서도 자신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이였던 메다르도는 종교 전쟁에 참여했다가 몸이 반쪽이 되어버리고 만다. 반쪽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건 '악한' 메다르도였는데, 그는 성 내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반쪽 내고 사소한 죄목에도 엄격한 벌을 내리며 자신의 악을 과시한다. 이후 '선한' 메다르도가 마을로 돌아오며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기적인 선과 이상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둘은 동시에 파멜라라는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데, 파멜라를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게 된다. 악한 메다르도는 선의 끝단을, 선한 메다르도는 악의 끝단을 칼질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피의 결투 끝에 두 사람은 다시 재결합된 온전한 메다르도가 된다.
작중 악한 메다르도는 반쪽으로 나뉜 뒤에야 '완전성' 에서 벗어났다 고백한다. 그 완전성이란 순진한 그를 종교 전쟁으로 이끌고 갔던 사회가 주입한 신앙심으로 대표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표면적은 반쪼가리가 되었으나 각 반쪼가리에 해당하는 선악의 깊이는 두 배가 되었으니 반쪼가리가 되기 전의 '온전한' 메다르도와 반쪼가리 삶을 겪은 후 재결합된 '온전한' 메다르도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중 여러 인물군상들이 나온다. 욕망과 쾌락에 사로 잡힌 이들, 의무와 규율에 사로 잡힌 이들, 자신의 무기가 살상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 해도 개의치 않는 이, 자신의 딸을 물건 취급하며 이쪽저쪽 반쪼가리 자작들에게 넘기려 드는 부모, 생명을 구하는 것에는 무관심하고 자신의 지적 탐구에만 골몰하는 자 등. 반쪼가리가 된 경험이 없는데도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파멜라라는 인물의 순수하면서도 주체적이며 결단력 있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작품의 화자는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은 메다르도의 조카인데, 작품 전체가 이 아이의 회고록 같기도 하다.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대표되는 반쪼가리 자작'들'이 활개 치는 과정은 무구한 아이의 눈으로 묘사되고 설명된다. 이렇듯 순진했던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자신 또한 스스로의 반쪽'들'과 내면을 탐구하는 듯 보이나, 관습과 질서의 상징으로 점철된 어른의 세계에 접어들며 "이런 환상이 부끄러워 참을 수 없었다" 는 말과 함께 그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듯 보인다. 작품의 말미에서 아이는 새로운 세계인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여정에 합류하는 것에 실패한 것을 슬퍼한다. 그리고 "나는 여기 이곳, 의무와 도깨비불만이 가득 찬 우리들의 세계에 남아 있다." 라고 이야기한다. 선한 메다르도의 비인간적인 덕성이 심어 놓은 의무, 악한 메다르도의 비인간적인 사악함이 만든 죽음의 도깨비불<만>이 가득 찬 <우리들>의 세계에 대한 회의는 더 복잡해진 세상 속에서 그러한 이분법적 관점만으로는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을 거라는 작가의 탄식일지도 모른다.
발췌
[...]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 버릴 수 있지.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 무엇 때문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정신없어하는지 이제 알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조금은 착하고 조금은 사악하다는 거지요. 이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요.
[...] 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