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도 채 안 되어 완독하게 되어 당황한 미친 이야기. 어제 오전에 북클럽 택배로 받아본 작품이었는데, 격할지도 모르겠지만 읽자마자 든 생각은 그 한 마디였다.
나는 이 작품 제목의 번역이 <단순한 열정> 인 것이 적절한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싶다. 원제는 <Passion Simple> 인데 읽으면서 열정보다는 격정에 더 가깝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전반부 사랑의 열정에 관해 토로하고 묘사할 때는 열정인 채로 두어도 적합하겠다 싶긴 하지만, 이별 후 고통을 토로하는 마음까지 포괄하려면 그 지독한 양가적인 감정에 격정激情 이 더 어울리지 않나 ··· 라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하다는 수식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느끼고 느낀 passion 이란 감정의 절대성과 보편성, 혹은 은밀한 내면의 개인성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표현하자면 <순전한 격정> 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작품 속 화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소식 등의 거대담론적 뉴스는 기억하고 묘사하지 못하지만, '그 사람' 의 사소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느꼈던 사소한 모든 감정을 기록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화자의 내면 세계에서는 결코 사소한 어떤 것이 아니지만. 사랑으로 말미암은 격정의 감정은 이별과 함께 고통의 감정으로 변하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 또한 옅어지고 희미해진다. 화자는 그의 존재로 인해 자신과 타인이 구분되는 어떤 한계선에 다다를 수 있었음을 고백하며, 사회적 시선과 판단의 소용없음을 말한다. 그의 존재로 인해 욕망에 충실한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로 왔고, 아이러니하게도 세상과 더 밀접해졌음을 고백한다.
여하튼, 앞서 언급했듯 이 소설은 미친 작품이나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스스로 당혹스러우리만치 집요하게 화자의 내밀한 자기 고백적 일기를 읽어 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에 당황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생애 누군가에게서 느끼고도 무심코 지나쳤을 매 순간의 감정을 화자가 짚고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리 박히듯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걸 수도 있겠다.
발췌
[...]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 외에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 나는 '언제나' 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 나는 그 사람을 내 존재를 위해 선택한 것이지 책의 등장인물로 삼기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니다.
[...] 어느 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놓았을지 모르잖아.'
[...] 나는 그 사람에 관한 책도, 나에 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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