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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목 Apr 07. 2022

이제, 겨우 시작

농부의 일상

 오늘도 나는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말들을 연신 입밖으로 내 뱉으며 중얼거린다. 

 "내년엔 미리 미리 준비해야지..."

 "에이...조금만 더 일찍 시작할 걸..."

 나의 게으른 습관 때문에 일어난 일 때문이다. 겨우네 분명 내년에 쓸 도구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고장난 것들을 고쳐놔야 겠노라고 하루 하루 계획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어릴 적부터 이 게으른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가 않는다. 작심삼일이라고 계획하고, 준비하,고 다짐하면 고작 삼일뿐이다. 

 오늘은 볍씨종자를 소독하는 온탕소독기를 만들고 시험가동을 할 예정이다. 비닐 하우스로 가기 전에 작년에  썼던 영농일지를 훑어보면서 머리 속으로 오늘 할 일들을 계획했다. 이미 머리 속으로 금형공장에서나 볼 듯한 설계도가 그려진다. 그 설계도를 가지고 온탕소독기를 만들어서 이웃사람들한테 자랑할 일들까지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마음도 흐믓해질 정도다.

 오늘은 바람이 유난히도 많이 분다. 더군다난 내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은 산 바로 밑이어서 그런것인지 다른 곳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하우스 문을 열자 몇주 전에 뜯겨져나간 비닐이 펄럭이며 춤을 추고 있다.

 "휴...빨리 씌워놓을걸..."

 4일 후면 못자리를 해야 하는데 비닐교체를 해주는 시공업자는 올 생각을 안하고, 불똥이 튈 때로 튀고 나서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했다. 

 얼마 전에 보조사업으로 구입한 볍씨 발아기 통과 파이프 부속들, 파이프 렌치를 가져다 놓고 온탕소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25mm로 나와서 15mm로 들어가야 하니깐...어디갔지?"

 어제 농협 자재판매점에 가서 부속들을 사왔는데 필요한 부속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내가 들고 다니다가 어디 잘 두었으리라...

 미리미리 만들었으면 천천히 잘 생각하면서, 인터넷 영상도 보면서 만들었을텐데 하루만에 만들려니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어디 잘 두었을 부속은 결국 찾지 못해 농협 자재판매점에 다시 다녀오고서야 파이프들을 조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순환모터를 연결하고 가스 온수기를 설치하면 끝. 아뿔사...제작년에 사둔 중고 온수기인데 보관을 잘 못 했는지, 사기를 당한 것인지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하고 건전지도 바꿔봤지만 결론은 실패다. 미리미리 했었더라면 인터넷으로 저렴한 제품을 살 수 있었을 터인데 이제 비싼 돈을 주고 읍내로 가서 온수기를 사와야 한다. 역시난 35~40만원이면 살수 있는 제품을 10만원이나 더 주고 온수기를 사왔다. 설마 이제는 되겠지 궁시렁대며 스위치를 킨다. 위~잉거리며 순환모터가 돌아가고 온수기에 불이 붙는다.





 "와!"

 뜨거운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성공인가? 왠걸...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수기가 꺼져버린다. 

 "뭐지?"

 수압이 약해서 순환모터에서 물을 온수기로 내밀어 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에이...짜증나..."

 결국 읍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춘천시내로 나가 펌프를 사오고 나서야 온탕소독기가 정상 작동되었다. 

 이렇게 매년 고생하는 것 같은데 이놈의 게으른 습관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제자리에 두지 않는다. 분명 살 때는 손떨리게 비싼 것들이 어느샌가 밭 구석에 처박혀서 있고 어떤 것은 잃어버렸다가 다음해 김매면서 찾고 말이다. 확실히 얘기해 두지만 이런 습관은 고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필요치않게 들어가는 돈을 막아야 한다. 올해는 꼭 그래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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