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 문화의 새로운 모습
버스킹(Busking)이라는 말의 뜻은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행위’를 뜻한다고 한다. 주로 음악가들의 공연을 일컬을 때가 많지만 넓게 보면 마임이나 댄스, 마술 등 다양한 공연까지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의 버스킹 영상들을 보면 보컬이 포함된 공연뿐 아니라 주로 악기로 구성된 연주 영상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유럽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플롯 등의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나 색소폰 연주, 비트박스 등의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의 버스킹은 보컬 위주의 공연이 대부분이다. 버스킹 열풍을 이끌었던 「버스커버스커」라든가 「10cm」 등의 유명한 팀들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의 버스킹이라고 하면 보컬과 통기타의 1인 밴드 혹은 건반 및 타악기 등으로 이루어진 어쿠스틱 밴드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보컬이 위주라고는 하지만 악기의 연주가 동반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악기가 없이 거리로 나오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앰프와 MR, (반주음악, Music Recorded의 약자. 물론 완벽한 콩글리쉬이다. 하지만 한국 한정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용어이기에 일단 이 글에서는 계속 사용하기로 한다.) 그리고 마이크 한 대만 들고 노래를 불렀고, 악기와 함께하던 기존의 버스킹에 대비하여 MR 버스킹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버스킹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10여 년 전쯤 일로 기억된다. 버스킹 관련 커뮤니티에서 MR 버스킹에 대한 설전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갑자기 늘어나는 MR 버스커들의 유입으로 커뮤니티에는 관련 글이 폭증했다. 좋은 실력을 가진 보컬들의 흔적도 많았지만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글과 영상들에서는 함량 미달의 내용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거리로 나가보고 싶은데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라며 평가를 부탁하는 노래 파일의 대부분은 에코가 가득해서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조차 없는 노래방에서의 녹화영상이거나 휴대폰 녹음 파일이었고, 버스킹 영상들에서는 가사를 보느라 휴대폰에 코를 박고 혼자만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기존 버스커들이 MR 버스킹에 대한 비판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에 항의하는 MR 버스커들의 분노에 찬 댓글로 한동안 꽤나 떠들썩했다.
악기 하나 갖추지 못한 공연은 버스킹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강경한 입장의 사람들부터 MR 버스킹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조악한 실력과 준비되지 않은 공연 매너들이 아쉬운 것이라는 비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MR 버스킹을 시작했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은 기존 버스커들의 텃세 혹은 쓸데없는 악기 자부심에 불과하다는 반발과 항의들로 맞섰다.
초기의 비판들은 주로 악기도 없이 MR만으로 노래하는 것 자체가 성의가 없다, MR만 틀어놓고 노래 부르는 버스킹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비정상적인 행태이다, 등이었지만 악기 못하면 버스킹도 하지 말라는 거냐, 버스킹의 정의가 거리공연인데 악기와 노래의 형식만이 진정한 버스킹이라는 건 편협한 시각이 아니냐 등의 반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의견이었기에 MR버스킹에 대한 논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논쟁 초반,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던 기존 버스커들의 불편함 – 힘들게 개척해 온 입지에 대한 자부심과 거기에 쉽게 발 담그려는 것처럼 보이는 뉴비들에 대한 상대적 아니꼬움? - 으로 인한 반발심은 논쟁을 거듭하면서 어쩔 수 없는 시류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인 요소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으로 차츰 정리되어 갔다.
긍정적인 면이라면 무엇보다도 버스킹의 진입장벽을 낮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악기를 다루고 청중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서 노래는 누구든 부를 수 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어쩌면 이렇게도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은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숨은 고수들이 즐비하고, 삼한(三韓) 이래 내려온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DNA는 도처에 깔린 노래방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 잠재 가수(?)들이 저렴해진 개인 앰프 장비와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쉽게 구하고 재생할 수 있게 된 반주 음악 파일의 도움으로 악기 수련의 진입장벽을 거치지 않고도 청중들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면은 그대로 부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대로 거리로 나오게 되어버린 것이다. 악기는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얼마간의 연습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에 대해 객관화가 이루어지기 쉽다. 쉽게 말해서 내가 연주하는 소리가 거지 같다는 것을 본인이 제일 먼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노래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 본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느낌은 당혹감이다. 어? 이게 내 목소리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본인이 부르는 소리는 몸 안에서 바로 귀로 전달되는 소리가 섞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밖에서 들리는 소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 가면서 모니터링하는 과정이 없다면 자신의 노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또 한 가지, 자신의 노래 실력을 착각하게 만들어 주는 대표적인 요인이 노래방이다. 좁은 공간에서 터질듯한 반주 음량에 과도한 에코가 들어간 마이크로 불러대는 노래들로 익숙해진 노래방 가수들이 간혹 밴드 오디션을 보러 와서 실제 악기의 연주에 맞춰 노래해 보게 되면 상당히 당혹해하는 경우가 많다. 노래방 반주와 에코의 거품이 없는 본인의 노래에 가장 실망하는 사람들은 본인 그 자신이다. 다만, 왜 이렇게 자기의 노래가 좋지 않게 들리고 노래하기 힘든지 그 시점에서 알지는 못한다.
진입장벽이 낮아진다는 것은 해당 문화의 저변 확대에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시적으로 질적 저하를 가져올 때가 많다. 실제 연주에 맞춰 노래해 보는 경험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기회조차 없었던 대부분의 노래방 보컬들은 자신의 노래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었고, 때마침 불어온 버스킹 열풍에 힘입어 충분한 검증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그로 인한 가장 큰 비판요소는 무대와 공연에 대한 미흡한 준비였다. 미숙한 실력은 차치해 두고라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가사로 인해 휴대폰 화면에 코를 박고 관객과의 교감 따위는 엿 바꿔먹은 공연 매너 라거나 MR 음질에 대한 고민도 없이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멜로디도 제거되지 않은 미디 음악 특유의 저렴한 음색이 나는 반주 파일을 사용하는 방식들이 가장 큰 비판을 많이 받는 요소였다. 모든 연주를 MR에 맡기고 자신의 보컬만으로 승부하겠다면 가사 정도는 숙지하거나 최소한 보면대와 악보 정도를 두고 보조적으로 도움을 받는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했다. 또한 MR에도 어느 정도 투자를 하여야 했다. 스스로 만들 수는 없다 해도 좋은 MR을 찾거나 구매하는 것도 조금만 고민한다면 충분히 공연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MR로 노래하는 사람들이 가장 잘 빠지기 쉬운 함정이자 민폐가 앰프의 출력을 높이는 것이다. 밴드 음악이나 직접 악기 연주를 병행하는 경우와 달리 MR은 개별 악기 사운드의 조절이 불가능하고, 본인 또한 에코 가득한 노래방에서의 경험만 있으니 거리에서 노래를 부를수록 반주가 빵빵하지 않아 불편해서 반주를 키우게 된다. 그에 따라 자기 목소리 모니터링이 되지 않으니 또 마이크를 키우게 되고 이 악순환의 에스컬레이션의 결과는 터져나가는 출력의 민폐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주변에 상가나 민가가 있다면 신고당해도 어쩔 수 없는 소음 공해일 것이고, 행인들이나 다른 버스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
MR 버스킹을 폄하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행위가 진짜 ‘공연’이 되려면 그에 맞는 정성과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의 공연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기예이기에 호기심과 약간의 너그러움을 가지고 관람하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노래를 할 수 있기에 실력이 부족한 MR 버스킹을 보는 행인들은 거기에 더욱 냉정해지게 된다.
- 저 정도는 나도 하겠는데? 아니, 저럴 거면 노래방에 가서 혼자 부르지 왜 길거리에서 민폐를 끼치고 있나? -
당신이 노래로만 공연을 하겠다면 악기 연주자 이상의 고민과 연습을 투자하고, 그 결과를 보여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버스킹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게 표현의 자유, 노래 부를 자유이다. 하지만 거리는 공연장이 아니다. 관객은 공연을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버스킹이 이루어지는 거리의 행인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도 당신의 버스킹을, 당신의 노래를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걸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의 자유만큼 그들의 권리도 중요하다. 거리 공연도 공연이니만큼 공연과 관객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예의가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공연을 하는 자신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가볍고 경박한 공연은 결국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터넷의 수많은 논쟁과 담론들에도 무색하게 지금은 MR을 틀고 노래하는 이들이 주류가 된 듯하다. 물론 빼어난 실력과 좋은 태도로 멋지게 노래하는 이들도 그만큼 많아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버스킹 명소, 관광지에는 자신만의 노래방을 거리에 가져 나온 이들이 꽤나 보인다. 그들의 소음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는 이들을 보며 나 또한 부끄러워지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버스킹이라는 문화가 같이 지탄을 받고 있는 느낌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