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계절을 맞는 버스커의 자세
추운 겨울이 돌아왔다. 봄부터 가을까지 치열한 경기를 소화한 프로야구 선수들은 가을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나면 휴식기에 들어간다. 그동안 팀은 훈련과 휴식, 회복 그리고 전술 보강 및 선수와 코치들의 트레이드 등을 하며 다음 시즌을 대비한다. 이 기간을 스토브(난로) 앞에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시기라 하여 스토브리그라 한다. 추운 겨울 동안 경기를 하지 못하는 이 시기에 이루어지는 각종 보강 활동들이 다음 시즌의 활동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기에 팬들은 스토브리그를 제2의 리그라고도 부른다.
날씨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버스킹에도 스토브리그가 있다.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날씨는 4월 이후부터 10월 정도가 한계이다. 추운 기온은 특히 악기 연주자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3월이나 11월에도 버스킹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제대로 된 연주를 하기에는 너무 추웠다. 길거리에서 떨면서 노래 부르다 보면 30분도 지나지 않아 목에서 의도치 않은 바이브레이션이 나오고, 특히나 기타, 건반 연주자들은 얼어오는 손가락에 이른바 ‘삑사리’가 작렬한다. 옷이야 껴입으면 어찌해 보겠지만 장갑을 끼고 연주할 순 없는 노릇이니.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겨울은 버스커들에겐 스토브리그가 된다. 날 풀리는 계절만 바라보고 손을 놓기엔 아쉬우니 삼삼오오 지하 연습실로 들어가 다음 시즌을 위한 연습으로 겨울을 난다. 이 시기도 사실 꼭 필요한 것이 한참 활동하는 시즌에는 새로운 곡을 추가하거나 다양한 음악적 도전을 시도할 시간이 모자라다 보니 팀의 재정비나 레퍼토리 추가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필요한 시간이라고 해도 반복되는 연습만으로는 지루할 수밖에 없고, 결국 공연이 고파지게 된다. 합주도 즐거운 시간이라고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런가. 애당초 누군가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게 되는 법. 따뜻한 봄날은 멀고 무대가 절실해지는 계절이 겨울이다.
절실한 마음과는 별개로 아마추어, 혹은 버스커들에게 공연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수도권이나 서울이라면 조금 환경이 나을지 모르겠지만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 아예 대관을 해서 공연을 꾸민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방이라 해도 구할 수 있는 전문 공연장도 의외로 드물지 않고, 조그만 무대를 가진 펍이나 카페들도 많지는 않지만 더러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대관을 해서 제대로 된 무대를 꾸미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장소 대관비도 문제지만 결국 문제는 관객이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팀이나 인디 뮤지션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아마추어 밴드나 버스커들이 객석을 채울 수 있는 티켓 파워가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방법은 지인 찬스 뿐이다.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객석을 메꿔야 한다. 물론, 유료공연은 언감생심이다. 전석 초대라고 해도 쉽지는 않겠으나, 어찌어찌 대충 좌석을 반절이나마 채워서 공연을 했다고 쳐도 그건 일생의 이벤트에 가깝지 두 번 이상 할 짓은 못된다. 내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닌 지인의 방문이라면 그건 대부분 예의상의 방문일 것이고, 두 번 이상 초대하는 건 결례에 가까운 짓일 터이다.
그나마 쥐똥같은 인지도가 있는 팀이라 해도 혼자서, 혹은 한 팀으로 객석을 채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합동 공연을 기획하는 이도 더러 있다. 합동 공연의 장점은 최소한 다른 팀의 연주자의 수만큼은 관객이 확보된다는 데에 있다. 오래전 나를 포함한 직장인밴드 4팀이 라이브 클럽을 대관해서 공연한 적이 있었다. 관객은 다른 3팀의 멤버와 지인 몇 명이 전부였고, 그런 풍경은 그리 드물지도 않았다.
공연장이 아닌 펍이나 카페 등에서 공연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힌다. 대관비를 지불하는 전체 대관이 아니더라도 무대를 내어주는 마음씨 좋은 가게 사장님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에는 도의상 몇 테이블 정도는 손님을 채워주어야 한다. 전문 공연장이 아닌 상업공간이니 이는 당연한 도리일 테지만 쥐똥같은 인지도도 없는 우리는 그 몇 테이블도 힘들다.
다른 방법은 ‘오픈 마이크’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라이브 바(Live Bar)의 주요 공연들은 페이 공연, 그러니까 입장료가 있는 공연이다. 대부분 프로 연주자들이거나 인지도 있는 인디 뮤지션들의 무대이지만 이런 곳에는 ‘오픈 마이크’라고 해서 공연이 없는 날에 일반인들에게 무대를 열어 주기도 한다. 일반인이라고 해도 라이브 가라오케처럼 아무 손님에게나 마이크를 내어주는 경우보다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에게 기회를 주는 시스템인 경우가 더 많고, 아직 지명도가 없는 신인이거나 아마추어들에게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되곤 했다.
하지만 요즘엔 오픈 마이크를 운영하는 가게가 많이 사라진 듯하다. 수도권이나 서울 홍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지역에서 오픈 마이크를 할 수 있는 가게는 드물다. 라이브 공연을 하는 펍 자체가 많지 않은 것도 있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오픈마이크를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드나드는 몇 군데 펍의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나름의 고충이 있는 듯했다. 기획공연의 경우에는 어차피 음악의 성격과 타깃이 확실하고 공연자의 실력도 어느 정도는 사전에 검증이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픈마이크의 경우에는 공연자의 성향이나 실력을 미리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펍은 공연장이라기보다는 상업공간이니 장사와 매출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고, 아예 실력이 떨어지는 공연자이거나 펍의 성격과 맞지 않는 연주를 하는 경우에는 그날의 매상뿐 아니라 펍의 평판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픈 마이크 참여자를 대상으로 리허설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오픈 마이크의 취지와도 맞지 않고, 리허설까지 해 가면서 참여하는 이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또 한 가지, 공연 장소를 구하는데 의외로 중요한 문제가 음악의 색깔 문제다. 어찌어찌 맘씨 좋은 사장님이 있는 펍이나 가게를 찾았다고 해도 그 가게나 손님들과의 음악 색깔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블루스, 재즈 바에서 힙합 공연을 하거나, 7080 통기타 카페에서 하드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공연하고 싶은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려면 관객이 있어야 한다. 공연에 오롯이 비용을 지불하고 오는 손님들과 그에 걸맞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인이 만나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일 테지만 그보다 조금 더 가볍게 연주자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그곳에 가면 맥주 한잔, 차 한잔과 함께 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고 알려진 공간이 많아져야 할 것이고, 그런 공간이 많아지려면 그러한 문화를 즐겨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이름 없는 음악인들에게 무대는 늘 고프고, 또 구하기 어렵다. 겨울을 맞은 버스커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따뜻한 무대가 많아져서 이 계절이 더 이상 버스커들에게 스토브리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