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부상인지 버스커인지
기타 하나 둘러메고 가볍게 나서는 버스킹!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 문장에는 크나큰 어폐가 있다. 버스킹을 나서는 이의 짐은 전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기타 한 대와 앰프 하나면 충분하지 버스킹에서 무슨 장비가 그리 필요하겠나 싶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깔끔하지 않다.
개인 공연인지 팀 공연인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테고 기타와 보컬로 이루어진 공연을 할 것인지, MR을 사용한 악기 연주를 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매번 천차만별일 테지만 오늘은 가장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버스킹 공연, 기타 한 대와 노래로 이루어진 버스킹을 기준으로 내가 가지고 다니는 짐을 한번 꾸려보려 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 장비 현황이기에 버스커들 마다 다른 점도 있을 테니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주길 바란다.
가장 먼저 기타가 필요할 것이다. 흔히들 통기타라고 부르는 어쿠스틱 기타는 생각보다 부피가 크다. 폼케이스나 소프트 케이스에 넣어 등에 울러 메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짐이다. 여행용 미니 기타나 마틴에서 나오는 백패커 모델을 사용하면 부피는 줄어들겠지만 아무래도 사운드나 연주감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버스킹이라곤 해도 공연인 바에야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내 경우에는 야마하에서 나온 사일런트 기타를 사용한다. 바디 프레임이 분리가 되어 케이스에 넣으면 일반 통기타의 2/3 수준의 부피정도가 되고, 통 소리가 없어 하울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기타에서부터 벌써 그렇게 부피 걱정을 하는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장비 목록을 다 듣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앰프를 챙겨야 한다. 기타 한 대 들고 생 목소리로 부르는 버스킹도 낭만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야외에서 앰프 없는 기타 소리와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거리는 상당히, 매우, 대단히 짧다. 당신이 타고난 좋은 목청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노래는 한 곡 내내 질러댈 수만은 없지 않은가? 곡의 셈여림과 강약을 표현하려면 앰프와 마이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버스킹 앰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배터리 지원이다. 앰프이니 만치 소리의 질감과 출력이 우선이겠으나, 당신이 버스킹을 하고 싶은 곳에 늘 전원이 공급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좋은 앰프도 차고 넘치지만 배터리 구동이 가능한가를 고려하면 선택지는 매우 줄어든다.
요즘은 파워뱅크라고 하여 일종의 대용량의 보조배터리도 있어서 사용하는 이들도 늘고 있지만 말이 보조배터리이지 쓸만한 전압과 용량을 지원하는 정도의 모델은 가격대와 무게가 웬만한 앰프 한 통과 맞먹는다. 장비가 많아지는 팀의 경우에나 고려해 볼 만하기에 일단 1인 버스킹을 준비하는 데에서는 제외하자.
배터리 지원 버스킹 앰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모델은 롤랜드 사의 큐브스트리트 EX 일 것이다. AA 배터리 8개로 구동되며 50W의 출력에 기본 3 채널, 최대 5 채널의 입력이 가능한 놈이지만 지금 우리가 궁금한 것은 크기와 무게이다. 대략 48cm × 30cm × 30cm에 ‘7.4kg의 경량설계에 이동성이 우수한 모델’이라는 홍보문구를 볼 수 있다. 무게만 보면 2리터 생수 4병보다는 가볍긴 하다. 하지만 앰프만 들고 다닐 건 아니라는 게 문제. (2리터 생수 4병이 또 사실 그렇게 가볍지는 않다.)
이제는 조금 자잘한 것들을 챙겨보자. 먼저 마이크가 필요하다. 고민은 좀 덜 해도 된다. 영원한 스테디셀러, 슈어(SHURE) 58이 있다. 최고의 마이크는 아니지만 가장 무난한 제품이다. 사실 성능보다는 그 내구성에서 빛을 발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기타와 앰프와 마이크가 있다면 이들을 연결하는 라인이 있어야 된다. 마이크와 앰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흔히들 캐논 잭이라고 부르는 XLR 마이크 라인을 준비하자. 길이는 5m 정도가 무난하다. 너무 짧으면 장비 배치에 문제가 생기고 너무 길면 톤 손실이 발생한다. 기타와 앰프 사이에는 55 잭이라고 부르는 TS 케이블이 필요하다. 이것도 약 5m 정도.
큐브스트리트와 같은 버스킹용 앰프에는 대부분 리버브 정도의 이펙트 기능이 내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취향에 따라 별도의 이펙터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내 경우에는 보컬 이펙터로는 TC Helicon의 Mic Mechanic 2를 사용하고 기타에는 TC Helicon의 BodyRez라는 이펙터를 사용한다.
이펙터들은 대부분 손바닥만 한 사이즈이지만 이 녀석들을 사용하게 되면 부수적으로 짐이 더 늘어난다. 마이크와 앰프 사이에 라인 하나면 되던 것이 두 개로 늘어야 한다. 마이크와 보컬 이펙터 사이에 캐논 잭 라인 하나, 보컬 이펙터와 앰프 사이에 캐논 잭 라인 하나. 마찬가지로 기타와 기타 이펙터 사이에 55라인 하나, 이펙터에서 앰프로 가는 55라인 하나. 케이블의 수는 4개로 늘어난다. 장비 하나 늘면 그냥 하나가 느는 게 아니다. 뭔가 딸린 식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느낌이다.
마이크미케닉은 그나마 배터리 삽입이 가능하지만 바디레즈는 전원이 필요하다. 콘센트가 없으니 9 볼트 배터리와 연결선을 또 챙겨야 한다.
대충 다 챙겼나 싶겠지만 큼지막한 게 아직도 남아있다. 노래만 부른다면 마이크를 손에 들면 되지만 기타를 치면서 노래한다면 필수적으로 마이크 스탠드라는 놈을 챙겨야 한다. 보통 서서 한다면 1자형 마이크 스탠드를 사용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연주하기 위해 앉아서 공연할 생각이라면 T자형 스탠드가 필요해진다. 접을 수 있는 기능은 필수.
내 경우에는 대부분 앉아서 기타 치고 노래해야 하니 의자도 또 필요해진다. 남들의 버스킹 사진 같은 걸 보면 벤치나 돌담 같은 데에서도 잘만 앉아서 하고, 또 그게 여유로워 보여 멋지기만 하더라만 매번 그렇게 형편 좋게 현장 상황이 흘러가 주지 않는다. 접을 수 있고 적당한 높이의 튼튼한 의자를 찾아야 한다. 다이소 5천 원짜리 접을 수 있는 철제의자의 존재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중 70kg까지 버틸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지만 기타 무게를 포함해서 대략 자기 스펙의 120~130%까지 버텨주시고 있다. 다이어트를 좀 해야 하려나...
기타 스탠드도 있어야 한다. 내 소중한 기타를 매번 땅바닥에 내려놓을 수는 없으니. 흠집이 나고 안 나고의 여부보다 아무 데나 내려놓으면 헤드가 닿아서 튜닝이 틀어질 가능성도 있다. A형 낮은 기타 스탠드 중 접을 수 있는 제품을 고른다. 이 정도면 모든 게 다 접혀야 하는 수준이다. 접을 수 없다면 선택받지 못하는 버스킹 장비의 세계라고나 할까.
추가로 또 필요한 게 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라는 홈쇼핑에서나 나올법한 문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모든 곡을 암보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 못하고, (비루한 변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그 말이 맞습니다.) 기껏 암보한 곡도 공연의 중압감에 불안해지지 않으려면 악보를 앞에 두어야 마음이 놓일 때도 있다. 그렇게 보면대와 악보집이 추가된다. 보면대는 당연히 차곡차곡 잘 접혀야 한다. 요즘은 태블릿으로 악보를 보게 되면서 보면대 대신 태블릿 거치대를 마이크 스탠드에 결합해 쓰지만 이 녀석도 보면대보단 덜해도 부피가 꽤나 나간다.
자, 이제 준비한 장비들을 나열해 보자. 기타 및 케이스, (피크와 튜너, 카포, 여분의 기타 배터리는 기타 케이스에...) 7kg짜리 앰프, (혹시 모르니 AA 배터리 8개는 여분으로 챙기자.) 마이크, 캐논잭 마이크 라인 2개, 55 잭 기타 라인 2개, 기타 이펙터, 보컬 이펙터, 이펙터 전원선 및 배터리, T자형 마이크 스탠드, 접이식 의자, 접이식 기타 스탠드, 악보용 태블릿, 태블릿 거치대... 그리고 500ml 생수 한 통.
최대한 차곡차곡 부피를 줄여가며 짐을 꾸렸는데도 기타 가방 하나, 앰프 한 대, 빵빵하게 가득 찬 스포츠가방 하나, 그리고 접이식 마이크 스탠드(이 놈은 접어도 길다...)와 접이식 의자가 눈앞에 놓여있게 된다. 이걸 한 번에 다 들고 움직일 수 있을까.
멜빵이 있는 앰프 케이스를 백팩처럼 메고, 왼쪽 어깨에 기타를, 오른쪽 어깨에 스포츠가방을 걸고, 마이크 스탠드와 접이식 의자를 손에 드니 어떻게든 한 번에 이동할 수는 있을 듯하다. (얼마나 멀리 이동할 수 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하지만 이래서야 공연장소까지 이동하고 나면 다리와 어깨가 후들거려 공연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싶어질 게 분명하니 또다시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게 된다. 최종적으로 접이식 (또 접이식이다...) 두 바퀴짜리 카트를 구매하고 기타를 제외한 모든 짐을 카트에 동여매면 (기타는 소중하니까...) 드디어 즐거운 버스킹의 여정을 떠날 채비가 갖춰진다. 뭔가 장비 챙기다가 벌써 지친 것 같지만...
누가 나에게 기타 하나 둘러메고 가볍게 나서는 버스킹이라고 말한다면 들어서 상처가 될 만한 험한 말을 전달해 줄 용의가 충분해진다. 원래 이상과 현실은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당신이 처음 생각한 만큼 단출한 여정은 아니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리 낙담은 하지 말자. 어쨌든 혼자서 나설 수 있도록은 꾸렸지 않은가. 지금부터 나서는 그대의 버스킹에 행운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