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버스킹

하늘도 무심하시지...

by 다크엘

농부는 사시사철 하늘을 쳐다본다고 한다. 버스커도 그러하다.


감히 농부에 비교하는 것이 송구스럽긴 하지만 거리가 무대인 버스커로서는 어쩔 수 없이 날씨에 민감해진다. 버스킹 날짜를 잡고 난 다음부터는 며칠간 일기예보 어플을 수시로 들여다보게 된다. 일기예보라는 게 어차피 예상치인지라 일주일 전에 보는 내용과 사흘 전에 보는 내용이 매번 다르다. 분명 어제까지는 당일날 강수 확률이 30%였는데 오늘 다시 보니 60%로 바뀌어 있다. 아, 60%면 위험한데... 이틀 남았으니 혹시나 또 바뀌진 않으려나.


대부분의 버스킹 존이 허가제로 바뀌고 난 다음에는 날씨에 더욱 불안해지게 된다. 예전에는 오늘 거리로 나가려다가 비가 오면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푸념 한 번 하고 내일 나가거나 혹은 다음 주에 나가면 되었다. 하지만 웬만한 곳은 대부분 버스킹이 금지되었고, 지자체 등에 허가받아서 나갈 수 있는 버스킹 존 (Zone)은 거의 한 달, 혹은 두 달 전에 신청해야 한다. 그렇게 겨우 배정되어 잡힌 날짜에 비라도 와 버리면 다음 달에나 다시 나갈 수 있으니 매일매일 바뀌는 일기예보 어플에 매일매일 희비가 엇갈릴 만하지 않은가.


그렇게 일주일을 불안에 떨며 마침내 버스킹 당일이 되었지만 아침까지도 어플의 강수확률은 30%. 애매한 수치였다. 어젯밤까지 내린 비로 바닥은 아직 마르지 않았고, 하늘은 쉽사리 푸른 낯을 보여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팀 단톡방에서는 걱정과 불안의 메시지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오늘 어떻게 하실 거예요? 형님.」

「아무래도 불안한데... 포기해야 하나?」

「지난달에도 못했는데, 그냥 포기하긴 아깝지 않나요?」

「... 일단 이동해 보자, 현장에서 판단하는 걸로...」

「공연 시작 시간이 6시 반이지요? 일단 연습실 가서 짐 싣고 5시 반까지 수성못으로 도착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주차장에서 개인 짐을 카트에 싣고 공연장소인 포켓무대 앞까지 도착해 보니 장비를 실은 멤버들의 차는 도착했는데 아직 짐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왜 아직 짐을 안 내렸냐?”

“아, 형님. 아무래도 하늘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거 짐을 내려도 되나 모르겠어요.”


기타 담당인 J가 다가오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을 쳐다보니 거의 대부분이 구름으로 덮여 있었고, 간간이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금씩 보이다 사라지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애매하네... 이럴 거면 차라리 비가 와 버리든지.”

“저기 저 쪽 먹구름 덩이 보이시죠? 아까부터 보고 있는데 좀 커진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닌데? 바람이 반대로 부는 것 같지 않아요? 구름이 밀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팀의 막내인 A가 그래도 어떻게든 저 하늘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찾아내겠다는 듯이 하늘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건 네 희망사항이겠지...”


막내를 핀잔주는 보컬 담당 T와 A의 실없이 주고받는 농담을 한 귀로 흘리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난감했다. 하늘의 절반 정도를 덮은 먹구름을 보면 지금이라도 공연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지만 또 나머지 절반 쪽에 간간히 비치는 푸른 하늘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사람이야 비를 좀 맞아도 상관없다지만 문제는 악기와 앰프 및 전기장비들이었다. 그리 고가의 장비들은 아니라 해도 우리 처지에는 힘들게 장만한 살림들이었다. 행여 비를 맞아 고장이라도 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감전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갓길에 비상 깜빡이를 켜 둔 채로 멤버들 모두 어쩌지도 못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저 쪽에서 구청 측 현장 관리인 분이 걸어오셨다.


“어이구, 안녕하세요. 오늘 포켓 1 무대 버스킹 하실 분들이지요? 아직 짐을 안 내리셨네. 갓길에 너무 오래 정차해 놓으면 안 되는데.”

“아, 네... 빨리 짐을 내려야 하는데 하늘을 보니 날씨가 좀 걱정이 되어서요.”

“하긴 7월이라 비가 잦아요. 안 그래도 어제 한 팀은 공연 중에 물폭탄을 맞아서 급히 철수한다고 난리더만요, 허허... 아, 포켓 2 무대 팀은 오늘 공연 포기한다고 연락이 왔습디다. 참고하세요. 이거 참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 안 올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멀어져 가는 관리인의 등을 보면서 우리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계속 고민을 이어가기에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면 만의 하나를 위해서도 포기하는 게 맞지만 멤버들 어느 누구도 먼저 포기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지간히들 아쉬운 모양이었다. 지난달에도 이른 장마로 예정했던 공연을 못하고 넘겼으니 오늘 철수하면 다시 다음 달까지 꼬박 두 달을 허탕 치는 셈이었다.


어쩔 수 없지, 까짓 거 세팅해 보자. 김장비닐 몇 개 챙겨 온 거 있지? 지나가듯 뿌리는 빗방울 정도는 무시하고, 하다가 빗줄기 굵어진다 싶으면 최대한 빨리 전원부터 빼고 앰프랑 악기만 덮자. 그리고 차 끌고 와서 재빨리 싣지 뭐. 감전 사고 조심하고.”


흐린 날씨에, 비까지 오락가락하면 어차피 거리에 행인들도 없을 텐데 공연을 강행하는 게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멤버들 모두 그냥은 돌아가기가 싫었나 보다. 결정이 나자 부리나케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으이그, 버스킹이 뭐라고...


불안감 가득한 마음으로 어수선하게 공연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날의 버스킹은 제법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시작 후 30분 정도는 가끔 뺨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흠칫거리며 연주를 했지만 어느샌가 구름은 개었고, 갠 날씨 덕에 저녁에 산책 나온 시민들의 수도 생각보다 많아서 공연 후반부에는 20여 명 정도의 관객을 세워두고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버스킹이 끝난 뒤 기분 좋은 설렘의 여운을 안고 장비를 정리하면서 내가 말했다.


“그래도 공연 강행하기를 잘했지? 지레 겁먹고 포기했는데 비 안 오는 걸 보면 속 쓰렸겠는걸?”

“그렇지요? 오늘 관객들 호응이 썩 좋았어요, 앵콜 곡 후렴부에 관객에게 마이크 넘길 때 떼창 하는 거 들으셨어요? 짜릿하던데요”

“그거야 네가 목 삑사리 나서 마이크 넘긴 거잖아, 모를 줄 알았냐?”

“앗, 눈치채셨어요? 헤헤... 오늘 목이 좀 안 좋더라니.,. 그래도 떼창은 짜릿했습니다.”




하늘을 천장 삼아 무대를 펼치는 버스킹은 언제나 날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추위에 손가락도 얼어붙고 목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겨울은 아예 거리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니 버스킹의 시작은 4월, 아니면 조금 무리해 봐야 3월이다. 날씨가 가장 좋은 신록의 5월을 지나면 6월부터는 잦아지는 비에 일정이 위협받게 되고, 장마인 7월은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로 지나가게 된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더라도 7,8월은 폭염에 시달리는 계절이다. 이 시기에는 장비 세팅을 끝마치고 나면 속옷까지 땀에 젖는 경우가 태반이라 공연 시작 전에 이미 체력이 동이 난다. 악기 장비에 더해서 생수 묶음을 짊어지고 나서게 되지만 자칫하다간 공연 중에 화장실을 찾게 될 우려에 마음껏 물을 마셔대기도 조심스럽다. 야외 버스킹 장소 근처에 언제나 적당한 화장실이 있지는 않은지라 공연 장소를 물색할 때는 주변 공중 화장실이나 아니면 뒷문으로 눈치 보지 않고 드나들 수 있는 카페 화장실의 위치를 미리 알아봐 놓는 것도 버스킹이 반복되면서 깨닫게 된 중요한 체크 포인트다.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과 10월은 바야흐로 버스킹 하기에 매우 적당한 날씨다. 이 짧은 시기를 최대한 활용해 보리라 다짐해 보지만 우리가 놀기 좋은 날씨는 다른 이들에게도 놀기 좋은 날씨인지라 무슨 무슨 축제에 야외 행사들이 즐비해서 막상 적당한 야외공연장이나 광장들은 모두 큰 행사일정이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어찌어찌 일정의 틈새를 잘 활용해 길지 않은 가을 버스킹을 즐겨 본다 싶으면 어느새 찬 바람 부는 11월이 돌아오고, 버스커들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며 지하 연습실로 내려가 스토브리그를 보내야 한다. 아, 1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낭만과 여유가 넘치는 듯 보였던 길거리 버스킹의 1년은 이렇게 날씨와의 고군분투와 함께 굴러간다. 쉽지 않은 거리의 공연이지만 매년 겨울을 보낼 때 다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해지는 것은 그 거리의 무대가 우리에게 주는 짜릿함과 두근거림에 중독된 탓일 것이다. 그 두근거림을 기억하는 한 다시 우리는 내년에도 거리로 나설 것이고, 또 그렇게 흐린 하늘을 보며 조바심을 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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