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을 하기 위한 마음가짐
가끔 버스킹이 버킷리스트에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죽기 전에 한 번쯤 버스킹이라는 걸 해 봤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시도하는 분은 적다. 가장 흔한 이유는 실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모른다는 것도 또 다른 주된 이유일 것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버스킹은 아무나 할 수 있다. 못 할 이유가 뭔가. 버스킹은 의외로 진입 장벽이 그리 크지 않다. 다만, 나름의 준비는 필요하다.
오래전 일이다. 햇살 좋은 가을 어느 주말 오후, 시내 볼일을 보고 다음 일정까지 짬이 나서 김광석 거리로 산책을 나섰다. 꽤 많은 인파가 벽화를 구경하거나 골목에서 파는 길거리음식을 즐기고 있었고, 군데군데 통기타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버스킹 장소로 가장 인기 있는 김광석 동상 앞 작은 광장에도 한 팀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그들의 공연을 보며 시간을 보내볼까 하고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20대, 혹은 30대 초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그들은 버스킹팀 치고는 인원이 많아 보였다. 예닐곱 명쯤 되는 남녀들이 연신 깔깔거리며 기타와 타악기, 건반 등을 세팅하는 모습이 공연이라기보다는 소풍 나온 무리들의 모습 같았다. 악기들 앞에는「00 소아암 환우 돕기」라는 손글씨로 된 팻말과 팀 이름인 듯한 작은 배너를 세워두었다. 이윽고 한 명이 기타를 잡고 혼자 노래를 불렀다. 평범하지만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곡 정도를 마치고는 기타를 내려놓으며 일행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야, 다음에 누가 할래? ㅇㅇ이 한 곡 할래? “
”아냐, 난 나중에 할래. XX가 먼저 하든지... “
”어... 난 반주 틀어야 하는데... 휴대폰 좀 꽂아줘. “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재잘거리더니 젊은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앉았다. 반주 재생을 위한 휴대폰 연결이 잘 안 되는지 스피커에서 잡음이 한참 동안 흘러나왔다. 이윽고 음질이 좋지 않은 반주가 재생되었고, 남자는 왼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 없는 불안정한 음정으로 노래를 시작한 그는 휴대폰 가사만 보느라 노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비슷한 형태로 몇 명의 노래가 끝나고 처음 기타를 잡고 노래하던 사람이 나와 멘트를 시작했다.
“저희는 ㅇㅇㅇ라는 팀입니다. 소아암 환우 돕기 모금 공연을 위해서 나왔습니다. 오늘 처음 공연에 나오는 친구들도 있고 해서 조금 서투르고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확실히 서투르고 모자라긴 했다. 그래, 서투를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거리공연을 하면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들의 서투름과 모자람은 단지 음악 실력만의 문제는 아닌듯했다.
그 뒤로도 그들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을 세워둔 채로 웃고 떠들며 다음에 뭘 할지를 상의했고, 현장에는 기타, 건반 등 몇 가지의 악기가 세팅되어 있었지만 가끔씩 깔짝깔짝 두드리는 까혼을 제외하자면 두 가지 이상의 악기가 같이 연주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냥 돌아가면서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오는 학생들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자기네 연습실에서 노는 것과 아마도 전혀 다르지 않을 듯한 행동들에 저들이 과연 지금 이 자리가 공연이라는 자각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다음에 들려드릴 곡은 ㅇㅇ이라는 곡인데요, 사실 저희들이 아직 한 번도 연습을 못 한 곡이거든요. 그래서 잘 안 맞거나 서투를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잘 들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한 번도 연습을 안 한 곡을 왜 하는 거지? 연습을 안 했으면 공연을 하지 말아야 되지 않나? 그런데 왜 잘 들어줘야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겸양의 표현이겠거니 하면서 들어본 곡은 처참했다. 가사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멜로디도 머뭇거리는 보컬에, 반주를 하는 건반도 몇 번이나 틀리고, 그나마 후렴 들어가는 부분은 놓쳐서 연주를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마냥 즐거워하던 그들은 동호회 형식의 노래모임으로 보였고, 오늘은 새로 들어온 멤버들에게 경험 삼아 한 곡씩 무대에 세워주는 날인 듯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간다는 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면 저들에겐 이곳은 무대가 아닌 걸까.
준비되지 않은, 혹은 준비가 미흡한 상태의 무대는 무섭다. 그리고 잔인하다. 사람들의 반응은 냉정하고 솔직하다. 학예회나 재롱잔치가 아닌 이상 공연은 언제나 냉정한 피드백을 받는다. 야유와 경멸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차가운 무관심만으로도 공연의 실패는 아프다. 그 반응에 상처를 받지 않는 저들은 대범한 걸까, 무지한 걸까.
그때, 한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가장 처음 노래했던, 팀의 리더처럼 보이는 남자가 누군가와 날 선 목소리로 다투고 있었다. 대화를 하는 상대방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G, 그는 이곳에서 자주 공연하는 버스커였다. 그는 김광석 거리에 오면 언제나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이곳의 터줏대감 같은 사람이었고, 나와도 일면식이 있었다.
다투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리더 혼자서 흥분해서 격양된 목소리로 대들고 있었고, G는 차분한 모습으로 대꾸하고 있었다. 대충 오가는 소리를 들어보니 G가 리더에게 가서 그쪽 팀들이 하는 공연이 너무 준비가 미흡해 보이니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이곳은 그래도 나름 거리공연으로 유명한 장소이고, 외지에서 찾아오시는 분들의 기대치도 있는데 실력을 떠나서 너무 준비가 부족한 것 같으니 주변 상인분들도 곤란해한다. 그러니 조금 더 준비해서 오시는 게 좋지 않겠느냐.라고 정중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중하다고 말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팀의 리더는 매우 기분 나빠했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당신이 뭔데 감히 하라 마라 하느냐 소리 지르고 있었다.
꽤나 좋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그나마 G가 같이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고, 팀원들이 리더를 말려서 더 험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연은 이미 파장이 되어버렸고, 싸늘하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그들은 짐을 싸서 철수를 시작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공연이었고, G의 말에 심정적으로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입을 댄 게 좀 의아스러워서 한편에 물러나 있는 G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어봤다. 그의 이야기로는 공연 장소의 양옆 카페의 사장님들이 그에게 좀 말려보라고 청을 넣었다고 한다. 카페 사장님들은 아무래도 이곳 김광석 거리의 분위기와 버스킹 문화 등에 힘입어 장사하는 입장이었으니 수준 미달의 버스킹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여기에서 자주 공연하면서 카페 사장님들과 친분이 있던 G에게 한마디 해 보라고 등을 떠민 모양이었다. 본인도 영 마뜩지 않은 심정이었기에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김광석 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버스킹 장소들이 구청 등에 의한 허가제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버스킹이란 게 누군가의 허락을 받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타인의 공연에 직접적으로 간섭한 G나 카페 사장님들의 행동이 옳았는지는 관점에 따라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쩌면 꼭 필요한 피드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몸에 좋은 약은 입에는 쓴 법이다.
버스킹을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 같은 것은 없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거리공연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누군가가 기획하는 공연이 아닌 이상 그 실력에 대한 잣대가 존재할 리도 없다. 하지만 거리공연에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있는 무대라면 관객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관객이 유료관객이 아니라는 것은 어떠한 핑계도 되지 못한다. 그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실력을 보이는 유일한 방법은 충분한 연습과 세심한 준비, 그리고 관객에 대한 진지한 자세다. 곡 하나도 완주하지 못한다거나 최소한의 진행조차도 없는 무대는 실력 부족이 아니라 성의 부족이다. 서툰 실력이라고 해도 진심 어린 도전을 하는 무대는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모두가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최선의 무대를 보여줄 수는 있다. 그래서 아무나 버스킹을 할 수 있다. 당신의 최선을 다 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