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왜 수학자로 살고자 하는가
내가 대학원을 다녔던 미국 코넬 대학은 뉴욕 주 이타카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뉴욕 하면 보통 뉴욕 시를 떠올리지만 뉴욕 주의 대부분은 그런 화려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코넬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을 때 모 교수님의 첫마디는 ‘거기 월마트도 없지 않나요?’였다. 그만큼 시골이라는 의미다. 이타카는 작은 도시지만 다양한 지역 축제가 있고, 그 하나하나가 참 특색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진심으로 즐긴다고 느껴졌다. 도시 규모에 비해서 맛집도 많이 있었고, 다양한 느낌의 자연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근방에는 finger lakes라고 불리니 다섯 개의 길쭉한 호수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코넬에서 내려다 보이는 카유가 호수(cayuga lake)이다. 호숫가에서 바베큐를 하거나, 주변을 드라이브하기도 하고,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를 걸어서 건너보기도 했다. 이타카의 다운 타운에서 계곡을 따라 학교로 올라가는 길은 언제 걸어도 질리지 않게 예뻤다. 그 길에서는 사슴들도 종종 만났고, 운이 좋으면(?) 스컹크나 너구리 같은 녀석들을 보게 되기도 했다. 20분만 차를 타고 나가도 아름다운 하이킹 코스가 많이 있었다. 한국의 산들도 아름답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많이 힘 안 들이고 넋이 나갈 정도로 예쁜 경관을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 중 어느 하나도 내가 유학을 간, 그것도 코넬 대학을 가려고 했던 이유는 아니었다. 사실 입학을 결정하기 전에 학교 방문도 해보지 않았고, 그저 가보니 내 마음에 드는 이런저런 것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곳에 있는 교수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피고 뚜렷한 수학에서의 목표가 있어서 고른 것도 아니었다. 코넬로 가기로 결정할 즈음 모 교수님이 그곳의 확률론 하는 교수 하나를 지도교수로 추천하셨긴 했는데, 그 교수는 막상 내가 첫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학교로 옮기고 없었다. 그렇다고 그분에게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서 학교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다른 교수들의 수업을 듣고 시간을 보냈다. 그전에 미국을 한번 가보기는 했다. 대학교 1학년인 때인지 2학년 때인지.. 그때쯤 여름 방학에 UC Berkeley에 가서 8주간 수업을 듣고 캘리포니아 구경을 좀 하다가 돌아왔다. 그때 들은 수업이 인상적이었던 것도 아니고, 버클리가 딱히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캘리포니아 이곳저곳을 다녀볼 때는 즐겁고 재밌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원을 골라간 것도 아니니 이것도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럼 나는 왜 유학을 갔을까. 그리고 왜 하필 코넬에 갔을까. 아, 생각해보니 두 번째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뽑아줬으니까 갔다. 코넬 말고도 뽑아준 대학이 몇몇 있기는 했으니 아주 그것뿐인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가고 싶은 대학이면 어디든지 골라갈 수 있는 화려한 스펙의 사람은 아니었다. 올림피아드는 그때도 지금도 학문 자체와는 별개라 생각하는 사람이니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요즘의 뛰어난 학생들처럼 학부생 때 연구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뚜렷이 내세울 것은 별로 없던 셈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함께 입학 허가를 받았던 다른 학교들에 비해 생활비 보조가 제법 되어 집에 손 벌리지 않고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특히 첫 1년간은 조교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게 장학금을 준다고 하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릴 때였으니,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리라. 그런 저런, 돌이켜보면 사실 별로 중요치 않은 이유들로 최소한 4-5년 이상 20대를 바칠 장소를 골랐다.
그때는 진지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바보 같은가. 길지 않은 인생, 특히나 길지 않은 젊음의 상당 부분을 매달릴 결정을 하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무엇보다 대학원 가서 뭘 하고 싶은지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저 수학을 쫓았다. 그랬다. 수학을 쫓았다.
그러다가 보니 어느새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많은 학생들을 접하는데, 어린 시절 바보 같았던 나의 모습에서 떠오르는 순수함이 보이는 사람들이 좋다. 복잡한 고등 수학을 많이 알고, 누가 봐도 스마트함이 온몸에 줄줄 흐르는 학생보다, 수학에 대한 호기심이 정말 순수하게 느껴지는 그런 학생들과 교류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 어쩌면 그건 내가 수학을 잘 못하면서도 어리석은 마음으로 평생 그를 쫓아다녔기 때문일 게다.
화려한 모습의 사람들이 늘어가고,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그래서 고등 수학을 접하는 나이대도 점점 내려가고, 아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똑똑하고 많이 안다. 그런데, 그래서 더욱 그렇게 순수하게 반짝거리는 원석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드물어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수학을 직업으로 권하는 마음도 점점 무거워진다. 나는 과연 여전히, 그때의 그 순수하고 바보 같았던 마음으로 수학을 쫓고 있을까?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계속 그렇게 해도 괜찮을 걸까?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것은, 이 질문들에 대해서 ‘맞아 그래’라고 답할 수 있는, 순수한 호기심들이 존중받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그런 수학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답을 모르는 질문을 계속 남기게 되지만, 드디어 답을 확실히 아는 질문 하나는 찾은 셈이다. 나는 왜 수학자로 살고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