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뚱이 Aug 12. 2022

내 평가 사실을 절대 알리지마라 <시크릿 리더>

존경받는 리더의 흔한 실수 <6화>

제 6화.  부하들에게 내 평가 사실을 절대 알리지마라 <시크릿 리더>
  

회사의 핵심인재 중 한 명인 은주씨가 퇴사 통보를 하자, K 팀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가뜩이나 해결해야할 과업들이 산적해있는데, 깔끔하게 일처리를 잘 하는 은주씨가 퇴사한다면 하반기 주요 과업 수행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은주씨의 퇴사 이유가 회사의 비전이 맞지않다거나, K 팀장이 잘못된 리더십을 갖고있어서라는 상투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퇴사 원인은 K 팀장의 상위자, 즉 J 상무의 지난해말 인사고과의 결과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팀장들에게 1차 고과권을, 팀장을 관할하는 본부장들에게 2차 고과권을 행사하게 했는데,  2차 고과자는 1차 고과자의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재량권을 갖고있었다. 즉, 직속 팀장이 어떤 팀원에게 A 등급을 부여해도 본부장이 그에게 B 등급이나 S 등급을 재량으로 변경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이는 전체 인원의 20%내에서 행사할 수 있었는데, 대개는 유능한 인재가 그해 안좋은 경영환경으로 인하여 갑자기 낮은 고과를 부여받았을 경우 구제해주기 위한 평가제도의 예외조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J 상무는 이를 거꾸로 활용하여 K 팀장이 1차 고과에서 이미 A 등급을 부여한 은주씨에게 B 등급으로 다운그레이드 시켜버렸던 것이다. 물론 이는 평가제도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 한 등급을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는 제도이니…


하지만, 이 사실은 고과가 끝난 지난 12월말부터 이듬해 2월초 까지 은주씨도, 직속 상사인 K 팀장도 전혀 알지못했다. J 상무가 아무에게도 통지하지않았던 것이다. 결국 성과급이 지급되는 2월 중순에서야 B 등급을 인지한 은주씨는 배신감을 느꼈고, 헤드헌터 업체에 구직 신호를 보낸지 한 달만에 전격적으로 이직을 한 것이었다. 


평소 J 상무가 고집이 있는 은주씨를 그다지 좋아하지않는 것은 알고있었으나, 이런 식으로 핵심인재를 떠나 보내야하는 K 팀장의 마음은 먹구름으로 가득하였다. 




대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민법 담당 교수님께서 시험 범위를 자세히가르쳐주면서 한 가지 당부를 하였다. 절대로 답안은 2페이지를 넘기지말라고. 사실 교수님 말씀대로 답안을 단 2페이지로 요약하려면 사전에 노트 정리하는 게 더 힘이 들었다. 


하지만, 필자를 포함한 순진무구한(?) 무리들은 교수님 말씀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2페이지 내에서 답을 써서 냈다. 그런데 나중에 발표된 성적을 보니 생각보다 점수가 많이 낮았다. 점수를 잘 받은 친구와 무엇이 다른가 비교해봤더니, 의외로 답안지 분량 차이였다. 이런…이건 반칙 아닌가? 교수님이 분명히 2페이지 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안듣고 4~6페이지 쓴 친구들이 점수를 더 받았지? 


나는 화가 나서 결국 교수님 방을 찾고 말았다. “교수님, 2페이지 내로 요약 정리해서 답을 정리하라고 하셨는데요?” “응, 그랬지, 그런데 왜? 내 마음이지…” 

“…” 


교수님은 그러면서, 일화 하나를 들려주셨다. 당신이 겪은 어떤 교수는 답안지를 보지도 않고 맨 위에 정렬되어있는 순으로 100점-99점-98점…으로 채점을 했다고 한다. 이 논리에 의하면 맨 밑에 깔려있는 학생의 답안은 아무리 잘 썼었어도 0점이다. ‘사회가 다 이런거야, 교수에게 주어진 파워에 도전하지마” 라며 말을 끝맺었다. 


지금 이런 교수가 있다면 당연히 캠퍼스에서 내쫒길 테지만, 당시에는 시퍼런 군부독재 시절이었고, 사회적으로도 권위주의와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만연해있던 시절이라 나는 억울함을 참고 넘어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이 당시 험악한 사회 분위기에 적응시키려 일부러 그랬나 싶었지만 어린 마음에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 많이 상심했다. 


아마도 지금 대학생들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교수님께 이 상황에 대한 적절한 해명을 요구했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공정이라는 것은 내용과 절차도 중요하지만, 서로 상호 작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업원 만족도 조사나 조직문화 진단을 하게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슈가 인사 평가에 관한 것이다. 내가 김 대리보다 더 많이 성과를 올렸는데 저 놈, 김대리가 먼저 승진했네 ㅜㅜ…나는 열심히 야근하고 C 등급! 이게 대체 뭐야…등등 연말이면 인사팀을 향한 볼멘 소리가 가득하다. 그런데 솔직히 인사팀은 아무 죄가 없다. 매번 좋다고 알려져있는, 세상의 모든 평가 제도를 다 갖다 붙이고 엮어서 만드는데,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평가제도에 대해 하도 말들이 많으니까 어떤 CEO는 “이제부터는 모든 직원들을 그냥 B로 평가해라, 특히 우수한 성과를 보인 인재는 내가 따로 포상할테니…”라고 평가 자체를 거부(?)하기까지 한다. 과연 제도를 기획한 인사부서의 문제인가? 아니면 제도를 적용하는 현장 리더들의 문제인가? 


한 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자. 어느날, 부산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K 모 임원이 전화로 강력하게 항의를 하였다. 자기가 왜 전년도 인사평가에서 B를 받았느냐고. 그런데, K 모 임원의 인사고과자인 L 부회장은 이미 지난해말에 임기가 다 되어 퇴직을 해버린 상황이었다. 


인사제도에서는 당연히 인사고과 후 피평가자와 면담을 통하여 평가 근거와 결과를 통보하게끔 되어있지만, 그 역할을 해야할 고과자가 퇴사해버렸으니 이걸 어쩐담?  난감한 상황이다. 사실 비슷한 사례는 조직에서 비일비재하다. 제도와 현업 적용 사이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어쨋건, 그래도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면담이다. 리더와 팔로워가 만나 그해의 성과에 대해서 과정과 결과를 정리하고, 다음년도의 목표에 대해 협의를 하는 것, 이것이 면담 제도의 취지이다. 이러한 면담제도는 당연히 HR 제도로 명시되어있어야 하고, 효과적으로 면담이 이루어지려면 평소 철저하게 평가자 교육을 해야한다. 


또, 실제로 면담이 진행되는지 면밀하게 추적 관리도 해야겠고. 예전에는 고과자가 피평가자와 평가 면담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괜히 팀내 분란을 야기할 수 있고, 저평가자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피평가자들에게 평가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연차를 내서 잠적해버린다거나, 억지 웃음을 지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정도로 평가 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연초가 되면 상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피평가자들의 항의가 들어온다거나 이직 통보 등의 평가 후폭풍이 불게 마련이다. 


잘 살펴보자. 이러한 이슈의 원인은 역시 공정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특히 분배의 공정성, 절차적 공정성, 상호작용 공정성 중 세번째인 상호작용 공정성이 평가 장면에서는 가장 많은 영향력을 지닌 개념이다. 아무리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해야한다고 평가 제도를 꼼꼼히 만들어봤자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평가 제도가 잘 활용되려면 평가자와 피평가자 두 사람간의 상호작용 역할에 주목하였다. 특히, 비에스와 모애그(Bies & Moag,1986) 같은 이들은 이러한 상호작용 효과를 얻기위해서 평가자의 솔직성, 예의바름, 적시 피드백, 피평가자에 대한 권리의 존중 등의 요인들을 제시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부하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부하를 배려하는 태도나 사려깊게 평가 절차와 결과에 대해 설명해주는 상사의 태도가 직원들의 공정감(공정성 지각이라 한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들도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평가 면담 하라고 하면, 쓸데없는 말을 빙글빙글 돌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다가 막판에 가서 겸연쩍게 결과만 알려주고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리더들이 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어쩌면 리더 입장에서 이러한 성과 면담 장면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당당하게, 그러나 피평가자를 존중하면서 할 말은 해야하는 것이 리더의 책무이자 역할이다. 


그런데 세상에 공정한 평가가 있을까? 하느님이 아니고서야 어찌 인간이 다른 타인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즉 평가를 하게되면 누군가는 불평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타인을 납득시키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즉, 공정, 불공정을 떠나서 현재 리더가 맞닥뜨린 상황(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평가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회사, 조직이 이렇게 당신을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메시지로 피평가자를 납득시켜야만 한다. 납득이 안되면 설명이라도 성심껏 해야한다. 리더는 끊임없이 직원들과 상호작용하는데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이 바로 리더의 기본적 역할이기 때무이다.


그러기 위한 효과적 팁 하나를 제안해본다. 리더들은 평소 직원들을 잘 관찰하고, 성과와 관련된 증거(evidence)를 수집해야한다. 필자는 늘 PL이라고 명명한 작은 노트를 갖고다녔다. 여기서 PL은 Performance Log의 약자로, 나는 직원 개개인별로 성과관리 근거를 찾아 매일 PL 노트에 적어놓았다.


 물론 특이사항이 없는 경우는 굳이 기재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겠으나, 사실 리더가 관찰하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한 줄이라도 메모할 꺼리는 늘 생긴다. 게다가 요즘에는 스마트 기기들이 발달되어있어서 관련 노트 앱들이 꽤 나와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직원 감시용이 아니라 그들의 성과를 잊지않기 위한 것이었다. 연말 면담할 때 PL 노트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해보라. 훨씬 더 생생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게다가 빼박 근거가 있으니 당연히 납득이나 설명이 잘 될 수 밖에 없다.



[스스로 탐침 질문]

1.    지난 인사 평가 시즌에 직원들과 면담 시간이 어느 정도 되었는가

2.    평가 결과에 대하여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를 생각해보고, 올해 평가 시즌에는 어떤 점을 더 보완해야한다고 생각하는가?

3.    끝까지 납득하지 못하는 직원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크릿 리더들이여! 공정한 평가는 없다. 납득과 설명이 있을 뿐이다. 

피평가자들을 납득할 때까지 납득시키는 것이 리더들이 월급받는 이유이다.


2022.08. yongmo.

매거진의 이전글 1인칭 리더십과 3인칭 리더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