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하게 보는 것에 대한 고찰
몇 일 전 오랜만에 수탁회가 열렸다. 수탁회란 수요일의 탁구모임이라는 뜻과 수탉같은 남자들만 모여 탁구친다는 뜻을 모아 만든 동네 탁구 동호회 이름이다. 동네 탁구도 레벨이 있어서 나도 탁구 부수(레벨)로 하면 전체 8부 중에 중간급인 4부~5부 정도 된다. 그런데, 수탁회 회원 중 한 명은 나와 거의 같은 부수인데 굉장히 특이하게 플레이를 하여 선출(엘리트 선수출신)까지 당혹케하는 사람이 있었다. 결국 그날 리그전의 우승자는 우여곡절 끝에 그 특이한 플레이어가 차지하였다.
여기서 ‘특이한 플레이어라’함은 정규 레슨을 통하여 정확한 자세와 기술을 갖추지 아니하고 나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들을 무림 탁구계에서는 ‘사파(似派)’라 일컫는다. 나 역시 몇 년 레슨을 꾸준히 받았지만, 사실 사파에 가까운 플레이어이다.
사파,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공은, 분명히 왼쪽으로 타구를 할 것같은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날라온다. 괴이하고 삐딱하기 짝이 없는 이상한 회전으로 드라이브인지 스매싱인지 느닷없이 옆구리쪽으로 파고들어오기도 한다. 회전이 반쯤 먹은 탁구공이 술에 취한 듯 비실비실 공중에서 흔들리며 오기도 한다. 상대방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특히 고교때까지 탁구선수 생활을 하였던 나의 아내는 그런 사파 플레이어들과 게임을 하게되면 짜증부터 낸다. (언급하였듯이 사파인 내가 시합 중 가끔 이상한 공을 하나씩 던져주면 짜증내면서 그냥 라켓을 던져버린다)
그런데, 오늘 아침 차를 마시다가 사파가 왜 짜증 유발자가 되어야하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꼭 이 자세에서 그 코스로만 넣으란 법이 있나? 몸을 요가처럼 꼬고 치던 발레리나처럼 풋워크를 하던 내 자유의지이지, 굳이 교과서대로만 하라는 법이 있나?
물론, 탁구 교과서에 나오는 자세나 기술은 가장 효율적이고 정밀하게 공을 보낼 수 있도록 관련 전문가들이 수십년간 연구하여 정리한 것일게다. 사파식으로 공을 치는 것보다는 정파로 치는 것이 훨씬 에너지가 적게 들면서도 강력하다라는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수십년 전의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가.
그때 보다 탁구공의 규격도 달라졌고 셀룰로이드에서 플라스틱으로 재료가 바뀌면서 회전력도 달라졌다. 점수제도도 21점 제도에서 11점 제도로 바뀌고, 심지어 탁구복 조차도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여 여자 플레이어들은 테니스 선수처럼 화려하고 섹시한(?) 미를 강조하는 미니 스커트를 입고 경기를 할 수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전과 작전도 달라져야 하고, 세트마다의 전술도 달라져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판을 뒤집어 엎어 생각해야 가능한 큰 틀의 전략까지도 달라져야한다. 계속 변화하는 상황과 맥락적인 면을 고려해 보면, 정파에서 이야기하는 기술과 자세만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물론 기본기를 갖출 때까지는 정파 이론으로 훈련해야겠지...하지만, 그러할 때조차 그것만이 해답이라고 주입하면 안될 것 같다. 내가 코칭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해답’이고, ‘진짜 해답’은 앞으로 네가 찾아내야지...하는 마인드를 형성시켜야하지않을까.
그래서, 천편일률적인 정제된 내용보다는 플레이어의 체형과 체력적 역량, 나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운동해야 한다. 특히나 나이들어 시작한 생활체육의 경우, 선수 출신 코치들에게 정규 선수식의 코칭을 받다가는 40대, 50대들은 무르팍이 다 나가고 각종 관절염에 시달릴 수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최진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있는 것을 따라하거나 재생하는 일은 탁월한 활동일 수없다고...선도력을 가질 수없다고...
그러니, 엘리트 선수들도 과감하게 사파적 전술과 기술을 연구해서 적극적으로 써먹어라. 정파가 아니라고 아마추어들을 비웃지말고...(마누라, 내 글 읽고있나...앞으로 나한테 라켓 던지자마라. ㅋㅋㅋ)
기실, 생각을 좀 더 넓혀보면 우리 주위의 모든 상황에서 사파적 사유가 필요하다. 마케팅과 영업을 한다 치자. 기존의 마케팅 툴들은 학자들이 과거 몇 십년간의 베스트 케이스들을 연구하여 성공요인들을 파악, 이론화한 것이겠지. 그런데 그 ‘몇십년’전의 사례가 ‘지금 현재’ 상황에 반드시 맞는가? 상황, 맥락적 사고를 하지못하면 과거의 틀에 맞추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정파적 이론은 우리를 과거에 머무르게 한다. 미래를 사고해야하려면 과감하게 사파적 사유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전략 프레임을 짤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삐딱해지자. 리더들은 부하들에게 삐딱함을 독려하라. 사파적 사유를 코칭하라. 언젠가는 사파가 검증되면 그것이 정파가 되기때문이다.
-용모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