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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식을 들어보니 코로나 19로 이제 2~3년 뒤에나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행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코로나 19 터지기 바로 직전 올해 1월에 남프랑스 여행을 갔다 올 수 있었다. 평생 동안 꼭 보고 싶었던 곳이 있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눈 딱 감고 예약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곳은 바로, 고흐가 아를에서 그렸던 '밤의 카페테라스(Cafe Terrace, Place du Forum, Arles)'.
짙푸른 밤하늘과 황금빛 조명이 함께 어우러진 색채 위에 펼쳐진 하얀 테이블과 사람들... 그리고, 울룩불룩 튀어나온 차가운 돌바닥... 바로 그곳 말이다.
고흐는 아홉 살 어린 여동생 빌헬미엔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곳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한다.
"파란 밤,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흰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창백하리만치 옅은 흰 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여행 첫째 날, 둘째 날은 이미 정해진 Itenary대로 다른 곳을 둘러보았고, 셋째 날에 드디어 포룸 광장을 찾아가게 되었다. 아, 꿈에 그리던 고흐 카페...ㅎㅎ 난 잔뜩 기대를 품고 일행과 함께 호텔을 나섰다.
그런데, 시간이 좀 애매하였다. 카페에 문의해보니 저녁 6시가 되면 Closing 한다고 하여 그 이전에 도착하기로 한 것이다. 어쨌건 차를 달려 가보았는데... 그곳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고흐의 카페는 파리 뒷골목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카페였다. 게다가 벽에는 세월의 흔적인지 보기 싫은 땟국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고, 어닝은 다 찢어져 바람만 조금 불어도 나풀나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로 옆의 조그마한 호텔만이 그림에서 본 것과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을 뿐, 다른 것들은 하나도 마음 가는 것 없는 초라한 카페...
"도대체, 고흐가 그린 황금빛 카페와 짙푸른 하늘 다 어디에 있어? 바닥의 오돌토돌한 돌멩이들은 다 어디 가고 천박한 아스팔트만 쫘악 깔려있고... 허허 참"
물론 저녁때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늘 마음속에 그렸던 그 분위기는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엄청난 실망감을 가득 안으며 카페 밖을 기웃거리면서 누구나 찍을법한 허망한 사진만 몇 방 찍었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는데 카페 앞에 세워져 있는 고흐의 그림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 아름다워... 저 빛과 형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신성한 분위기.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와 일반인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즉, 저 흔한 이미지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새로운 색과 형태, 비율을 찾아내고, 거기다 화두와 의미까지 입혀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나는 대리석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냈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
우리는 그저 거대한 대리석을 볼뿐이지만, 예술가들은 그 안의 아름다운 성상을 본다는 것.
그렇다면, 비록 예술가는 아니지만, 루틴 한 우리네 삶의 한 조각 한 조각들도 그냥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다시 바라본다면 어떨까? 고흐의 눈으로... 모차르트의 눈으로... 시인 천상병의 눈으로 말이다.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느껴지고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어둑어둑해지는 카페 거리를 걸어 나오며 잠시 하늘을 바라보니, 고흐가 찍어 넣었던 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 눈에 도착한 수백 광년 떨어진 저 별빛이 출발했을 때가 바로 고흐가 살던 시대였겠지. 어쩐지 고흐와 눈을 마주치는 듯한 느낌으로 아를의 밤을 보내었다.
-7월의 어느 밤에, 용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