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보다 '연대'

- 가슴이 뜨거워지는 공동체를 위한 첫 단어

by 엉뚱이

파리에 도착한 지 2일 차, 그 유명한 오르셰 미술관으로 향했다. 세찬 바람이 부는 파리의 겨울은 맵고 짰다. 우리는 다행히 사전 예약을 하여 다른 이들보다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대체로 1848년 이전 작품을 전시하고, 오르세 미술관은 그 이후부터 유럽 벨 에포크 시기의 끝인 1914년까지의 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따라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잔, 마네, 모네,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이 가장 많이 전시되어있는 미술관이 바로 오르세이다.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2020.1월


나는 1층의 각종 조각상들을 대충 훑어보고 인상파 작품이 몰려있는 5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한참 동안 미술책에서만 보았던 명작들, 또 그것을 보러 온 인파들을 동시에 감상하며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구석에선가 뭔가 환호성 같은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바로, 클로드 모네의 '깃발로 장식된 몽토르게이 거리'였다. 거기에는 미국 역사가인 필립 노드(Philip Nord)가 이야기한 '공화주의의 순간'이 내 눈 앞에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 작품은 1878년 6월 30일의 만국박람회의 폐회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매우 정치적이고 현실참여적인 그림이다. 1978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100여 년간의 공화정-왕정-제정의 계속 반복되는 혼란 끝에 세워진 제3 공화정 당국이 국경일인 이 날 민중들에게 마음껏 민주주의를 느끼고 환호하라는 기회를 주었는데, 모네가 이 장면을 멋지게 포착한 것이다.


또한, 알려진 바와 같이, 이 그림에 나오는 프랑스 국기의 이름은 '라 트리콜로르(La Tricolore)'이다.

파랑은 자유(liberte), 하양은 평등(egalite), 빨강은 박애(fraternite)를 상징하며, 프랑스 대혁명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확실하게 암기하기 위하여 스마트폰으로 다시 한번 liberte, egalite, fraternite의 단어를 찾아보다가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세 번째 단어가 영어사전의 뜻과 불어 사전의 뉘앙스가 다소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fraternite에 대해 영어사전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박애'로 나와있었지만, 불어 사전에서는 1. 형제 관계 2. 우애, 유대감 3. 동지 관계, 동질 의식으로, 더 디테일하고 현실적 느낌의 단어로 나와있었다. 굳이 직관적 단어로 표현한다면 우리 말의 '연대'가 제일 가까운 뜻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나중에 가이드도 그런 것 같다고...)


예를 들면, 모든 인류를 사랑한 테레사 수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박애'라고 한다면, 2002년 월드컵 당시 광화문 거리에서 전 국민이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짝짜짝 짝짝'을 한 것을 우리는 '연대'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즉, 박애는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연대감은 어떤 Ideology나 Agenda들에 대해 사람들이 '순간 일치'되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수백 년 동안 흘러왔던 프랑스의 '연대'라는 가치는 오늘날 기업에 근무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까... 잠깐 사유해보았다.




요즘 기업들에서 강조하는 핵심 가치 중 '협력'이라는 키워드가 많다. 그런데, 이 '협력'이라는 단어는 다소 드라이하고 피동적으로 들린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톱니바퀴가 생각이 난다.


A호텔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하는 '홍길동' 대리는 가끔 주말에 연회장에 가서 접시를 나른다. 왜 주말에 쉬지 않고 접시를 나르냐고 물어보면, 그저 '회사 사훈이 협력이니까', 또는 '다른 부서지만 서로 협력해야 하니까...'라고 약간은 볼멘소리로 중얼거린다. 맞다. 이것도 협력은 협력일 게다. 돕기는 도우니까...


그런데,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 도움'이라는 가치일까?


'협력'이라는 단어 대신에 '연대'라는 단어로 한 번 바꾸어보자. 그러면, 말의 뉘앙스가 바뀐다. 즉, '누가 시켜서... 또는 매뉴얼에 나와있으니까...' 이런 소극적인 마음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너는 이 순간 나랑 똑같은 동지니까..'.라는 보다 적극적인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어느날, 타 부서의 부장 한 사람이 잠깐 우리 부서에 왔다가 놀랐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A라는 직원이 짧은 티미팅을 했는데, 같이 자리했던 B, C, D 팀원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일사불란하게 자기 할 일을 찾아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더란다. 순간, 전율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것이 연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보면서 당시 프랑스인들이 느꼈을 법한 연대감, 서로 손을 잡고 비전을 향해 뿌듯하게 앞으로 질주해가는 동지적 경험들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기업체든 사회든 국가든 모든 공동체에는 바로 이 자발적 연대감만이 현실 이슈를 해결해갈 수 있는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콜라보는, 협력보다는 연대!

- 8월의 용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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