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하는 일은 다르다
얼마 전, 조영남 화백(겸 가수)에 대한 흥미로운 법원 선고가 하나 있었다. 화가가 아이디어만 내고 실제 그림 작업은 조수 화가가 수행하였다 하여 사기죄로 피소된 것을, 대법원이 대작(代作)은 예술계의 관행이라 하여 무죄 판결을 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명한 가수가 그림을 그린다? 무슨 그림을 그릴까 궁금해서 그의 그림을 인터넷에서 한 번 찾아봤다. 그는 주로 화투를 모티프로 그렸는데, 내게는 나름 신선했고 무언가 생각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었다.
재판까지 갔던 이러한 "조영남식 그리기" 즉, 작가가 개념을 구상한 뒤 조수 화백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자기는 지휘하는 식의 예술 활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으로 존재해왔다고 한다. 20세기 현대 미술에서는, 소변기를 출품하고 "샘(Fountain)"이라고 이름 붙인 뒤샹부터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작품 "해골"로 유명한 데미안 허스트, 작품 "천국의 꽃"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에 이르기까지...
조직에서도 이러한 비슷한 현상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것은 리더의 역할에 관한 문제이다. 즉, 리더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예전에 근무하던 모 회사에서 프로젝트 팀에 1년 정도 발령 난 적이 있었다. 그 프로젝트의 리더였던 L 팀장은 아침 출근해서 저녁 퇴근까지 존재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일에 대해서는 초기 목적하던 바 대로 늘 순항하고 있었다. 조용한 성격의 L 팀장이 하는 일은 그저 팀원들의 R&R을 명확하게 그어주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뿐이었다.
한편, 프로젝트의 팀원 Y 과장이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욕을 달고 살면서 조금이라도 다른 팀원이 실수라도 하게 되면 가차 없이 비판을 하는 등 팀의 골칫거리였다. 프로젝트 중간발표가 있어서 발표자로 L 팀장이 나서게 되면 Y 과장은 뒤에서 "저거 내가 다 만든 거야... 어휴 저걸 저따위밖에 발표를 못하다니...ㅉㅉ"하면서 나머지 팀원들에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Y 과장 옆에 있게 되면 부정적 에너지가 전염되는 것 같아 대부분의 팀원들은 가급적 떨어져서 일하길 원했다. 한편, L 팀장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의 경로만 지시하고 그에게 별다른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L 팀장도 Y 과장 때문에 많이 속을 썩였다고 하더만)
어쨌건 그 프로젝트 팀은 연말에 프로젝트 경진대회에서 나름 성과를 올렸고, 이듬해 그 팀은 해체되면서 L 팀장은 본부장으로 승진하여 다른 부서로 전보되었다. 투덜이 Y 과장은 나중에 누군가를 폭행해서 징계를 받고 퇴사를 했다고 한다. 세상사 모두 다 사필귀정인듯...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물밑에서 팀이 역동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다양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Y 과장 같은 투덜이를 포함해서 팀 내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자기가 그저 욕먹으며 책임을 떠맡았고, 팀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부족한 Resource를 충족시키려 이 부서 저부서 다니면서 챙겨주었으며, 목표를 늘 명료하게 제시해주었다.
즉, L 팀장은 프로젝트 "일"을 직접 하지 않았다. 그는 팀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챙겨주는 "일"을 했을 뿐... 서두에 꺼내 든 조영남 화백 Case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보고자 한다. 리더는 "일하도록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 7월 중순의 리더십에 대한 단상, 용모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