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먹다 고흐를 생각하다,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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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아내가 마라탕을 끓여놓고 갔는지 빠알간 냄새가 주방에 가득하다. 새벽까지 동창들과 술을 펐던 나는 매운 마라탕에 손이 가지 않아 결국 라면 봉지를 뜯고야 말았다. 먼저 큰 대파로 국물을 만들고 더 집어넣을 게 없나 주방 안팎을 두리번거리던 나의 눈에 마라탕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허걱, 탕 안에는 귀한 가을 송이 몇 개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나는 매운 국물이 목까지 새빨갛게 올라온 송이를 건져내 펄펄 끓고 있는 라면 국물 속으로 아낌없이 투하해 주었다.


라면의 가장 정직한 시간은 오로지 꼬들꼬들한 면발이 살아있는 처음 10초간에 있다고 했던가. 탱탱한 표면장력을 자랑하고 있던 면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고, 이어지는 시원한 국물... 지난밤의 숙취가 단 몇 모금에 멀리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가을 송이를 맛보는 행복한 시간이 왔다. 나는 두툼한 조각 하나를 건져내 조심스레 씹기 시작했다. 헛! 송이의 독특한 향기와 오돌오돌한 이 식감!


그때였다. 순간, 짜르르... 하며 나의 미뢰에 어떤 이국적인 맛이 감지되었다. 이건 대체 무슨 맛인가... 후각을 담당하는 뉴런들을 총동원해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도통 알 수가 없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맛이었다. 기존의 해물 라면 특유의 바다 향과 대파 향, 그리고 마라탕의 끝 향이 뜨거운 국물 속에서 서로 격돌하고 대립한 뒤 마침내 합쳐져 새로운 하이브리드 맛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느낌, 그리고 확실하면서도 굵은 선이 느껴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맛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냈을까. 나는 조근조근 송이 맛을 감상하면서 문득 몇 백 년 전 어떤 고독한 화가의 내면에서 일어난 두 문화의 충돌이 떠올랐다.




고흐가 일본 판화 우키요에에 흠뻑 빠진 시기가 대략 1886년 이후이다. 그 이전에는 렘브란트나 들라크루와, 밀레 등의 대가들을 연습했고 특히 밀레의 그림을 많이 모방했다 한다. 미술사가들은 파리에서 우키요에를 접한 이후(고향인 네덜란드에서도 우키요에를 접한 적이 있으나 당시 그림들은 대개 음울한 분위기여서 고흐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함) 고흐의 화풍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특히 강렬한 색채와 명확한 윤곽선이 특징인 우키요에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밀레풍의 소재 등이 절묘하게 합쳐져 동서양의 하이브리드 그림이 탄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고흐의 Sower(씨 뿌리는 사람)이다. 매화나무가 캔버스의 우측 공간을 비스듬히 점하고 있고, 좌측에는 특유의 거친 붓질로 농부가 씨를 뿌리는 장면을 그렸다. 캔버스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 마치 찌개 속의 마라탕과 해물라면의 기묘한 맛 같다.

큰아들과 방문했던 2019 암스테르담 고흐 뮤지엄


당시 고흐가 동양, 특히 일본 문화를 접한 문화적 충격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기존 어떠한 화풍이나 법칙(이를테면 원근법)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고 강렬하게 그린 우키요에, 게다가 화폭에 담긴 소재들도 있는 그대로의 서민의 모습들을 편하게 노출시킨 것들이 당시 네덜란드와 프랑스 등 유럽 화가들을 매료시킨 모양이다.

2020년 코로나 확산 전에 방문한 남불 액상프로방스... 우연히 우키요에 전시전이 있어 방문했더니 엄청난 인파에 놀랐음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 함대가 대포를 쏘아대며 일본 에도에 나타났을 당시 쇄국정책을 펼쳤던 막부는 혼란스러웠고, 결국 미국에 굴욕적인 미일 화친조약을 맺는다. 이후 많은 서방 국가들에 문호를 개방하고 문화적 교류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네덜란드와는 그 이전인 17세기 초부터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예외적으로 통상을 하였다)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 나름 경쟁력 있는 국력과 기술, 문화를 보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것들을 인류의 공존보다는 제국주의의 수단으로 삼아 다른 나라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지만 말이다.

이렇듯 처음 두 문화가 만났을 때는 서로 충돌하고 대립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존의 권력을 갖고 있는 한쪽의 문화가 일방적으로 다른 쪽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평등하게 상대방의 문화를 인정하고 서로 좋은 부분을 받아들이고 융합을 시도할 때 비로소 문명은 진화한다.


이것을 인류학자들은 문화 상대주의라 말한다. 문화 상대주의는 모든 사회는 동등한 기반 위에 있고, 지적 발전, 또는 도덕적 발전 지표 대신에 다양성으로 차이를 설명하는 ‘수평적’(이를 테면 평등주의적) 사고를 특징으로 한다.(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 p.57 타카미 쿠와야마)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가 배핀섬의 이누이족을 연구하면서 기록한 것에 따르면, 당시 이누이족은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야만인)”라는 경멸적 용어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사유를 하면서 문화적 상대주의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이들 ‘야만인’들이 함께 궁핍을 견디고, 누군가 사냥에서 포획한 것을 가져오면 모두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아름다운 관습이 아닌가? 나는 종종 우리의 ‘좋은 사회’가 이들 야만인들의 사회보다 어떤 점에 서 나은지를 자문해보곤 한다. 내가 이들의 관습을 관찰하면 할수록 나는 우리에게 이들을 얕볼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고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이 여행으로부터 얻은 가장 중요한 결과는, ‘문화를 가진’ 개인이라는 생각은 단순히 상대적인 것이고, 사람의 가치는 ‘마음의 교육(Herzenbildung)’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내 관점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랑그네스Langness, 문화의 연구, 1974, pp. 45-46)


우리네 조직문화 또한 같은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다. 한 회사가 다른 조직과 합병될 때, 또는 지역적으로나 법인별로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 같은 창업주라 해도 서브 컬처의 진화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또는 서로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다 최근 같은 회사에 입사했을 때... 우리는 자기 것만이 옳다고 주장할 때가 많다. 이때가 바로 갈등과 반목, 질시가 서서히 나타나는 순간이다.


당연히 이 시점에서 CEO는 조직 일체화와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라고 HR에 주문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HR팀에서는 조직 활성화 교육을 한다, 웨이 교육을 한다, 수평적 소통 캠페인을 한다... 시중에 퍼져있는 제도나 교육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모아 직원들에게 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본질은 "받아들이는" 직원들의 사고와 관점에 달려있다.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접근 방법은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직원들이 스스로 느끼게 해야 한다. 나아가, 다른 문화의 좋은 부분이 있다면 적극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필자의 어머니는 전라도 출신의 주부였지만 경상도 음식인 무말랭이를 잘 만드신다. 1960년대 서울로 올라와, 달동네에서 팔도 각지의 엄마들과 오순도순 같이 지내면서 배운 음식 솜씨인 것이다.


어쨌건 권력을 가진 문화적 세력들은 관용과 인내심을 갖고 새롭게 입직한 직원들이나 합병된 조직을 장기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기존 사회적 정체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새로운 조직문화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흡수케 하는 것이 정답이다.




라면에서부터 고흐, 일본 개화와 문화 상대주의, 기업의 조직문화까지 아침의 사유가 너무 멀리 왔다. 식기 전에 오늘의 브런치인 송이 해물 라면의 마지막 국물을 마셔야겠다.


캬! 해물 라면의 바다 향과 이국적 마라향이 서로 화학적으로 결합된 하이브리드 국물 맛... 최고다!

우리네 인생들도, 기업, 조직, 국가들도 라면 속의 송이와 국물처럼 서로 인정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수용하기를 바라면서 허접한 모닝 글을 맺는다.


- 2020. 10월 어느 가을날. 용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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