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시작한 남프랑스 여행도 오늘로 벌써 열흘이 되어가고있다. 아침 일찍 떠나는 니스발 파리 리옹행 열차를 타기위해 무거운 짐을 끌고 일행과 함께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무리의 소년 소녀들이 까르르 웃고 조잘대면서 빠르게 우리 옆을 지나쳐 열차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열차 떠날 시간이 안되었는데 뭐 저렇게 황급하게 뛰어가나...나는 그들이 뛰거나 말거나 뒤처진 우리 일행 중 몇 명을 기다렸다가 여유있게 열차로 올라탔다.
내가 들어가야 할 5번 열차 입구에 다가가니 아까 그 소년 소녀들이 멀고 먼 극동 아시아에 온 우리네 관광객들의 짐을 올려주며 열심히 도와주려 애쓰고 있는게 아닌가, 참으로 기특한 녀석들이네....중얼거리며 나는 그들중 제일 예쁘게 생긴 소녀 옆으로 가 괜한 미소를 흘려주면서(?) 일행 짐 중 가장 무거운 트렁크를 골라 그녀와 함께 올려주는 치기를 부렸다.
그런데 그때, 그녀 옆의 흑인 소년이 다른 짐칸을 가리키며 자꾸 그곳에다 짐을 부리라는 듯이 현란하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었다. 뭐하는 손짓이지? 프랑스 고속열차 테제베 짐칸은 짐을 올리더라도 뭔가 순서가 있나보다 하고 어리둥절하고있을 때였다. 순간 “조심해!” 하는 소리와 함께, 일행의 리더인 김이곤 예술감독이 소리를 질렀다.
잠시후 후다닥 소년소녀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려가는 것이 보였고, 얼결에 나의 크로스백을 본 순간 열려진 지퍼 사이로 마땅히 있어야 할 지갑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재빠르게 열차를 내려와 그들 뒤를 쫒으며 도중에 서있던 경관(알고보니 우리나라 경관복과 비슷한 복장을 한 철도 공무원)에게 지갑을 도둑맞았다고 소리치며 도움을 청했다. 경관은 내 말을 듣고도 그냥 어벙벙하게 쳐다보기만 하였는데, 그 사이 녀석들은 플랫폼을 건너뛰며 사라져 버렸다.
별수없이 나는 닭쫒던 개처럼 녀석들이 사라진 방향을 우두망찰 쳐다보다가 터덜터덜 내 자리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행히도 내 지갑엔 현금이 하나도 없었고(사실 시간이 안되어 인천공항에서 환전을 못했다) 카드 서 너장만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우선 한국으로 로밍전화를 걸어 각 은행에 분실 신고를 마치고 그 사이 사용한 금액이 있는지 문의했는데 다행히 아무 손실액이 없는 것이 확인되어 그제야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보니 소매치기 녀석들도 하필이면 재수없게 수많은 관광객들중 내 지갑을 훔쳐 현찰 한 장 못건져 허탈할 것을 상상해보니 충격적인 그 상황에서도 다소 웃음이 피식 나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순간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그 어여쁘게 생긴 집시 소녀의 관점에서 보게되면 우리네 관광객이란 존재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왜 그들은 학교도 안나가고 매일 수십 킬로를 출근하듯 달려와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어야만 할까? 앞으로 그들은 이런 일만 하고 평생을 살까? 그들을 소매치기하도록 내몬 맥락적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이 아름다운 나라,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프랑스(인근 이탈리아도...그곳은 더 심하다고들 한던데)의 한꺼풀 벗긴 속살이 바로 이런 모습일텐데...
일본의 비판적 지성인인 우치다 타츠루의 견해를 빌리면, 프랑스 파리 인근 무슬림 거주지인 방리유를 중심으로 한 불법 체류자들이 그러한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체 6천5백만 프랑스인들의 약 10%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정규 프랑스 주류 사회에 편입을 거부당하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온갖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못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결국 그 불평불만이 쌓여 터지게되면 테러, 절도, 살인 등 강력범죄에 연루가 되는데,아까 소년소녀 소매치기단들도 결국 그러한 비주류들의 자식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이 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프랑스 인근 후진국에서 원정오는 소매치기단일수도 있다고 함)
나아가 이러한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적 요소가 더 큰 사회 문제를 가져오게 하는 나비효과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까지 전세계에 확산되어온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경제라는 개념... 성장과 발전이라는 허울좋은 명제하에 숨겨진 몇몇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나 혼자 잘먹고 잘살아야겠다는 이기적 생각'이고, 그러한 생각은 결국 소외된 10%를 낳는다.
그 10%는 사회에서 발효되지못하고 썩어가다가 분노의 가스를 지속적으로 생성시켜 결국 나머지 90%를 위협하고 불안에 떨게하는 사회적 폭탄이 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그렇지않은가? 미국의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백인들을 살살 꼬드겨 미국 중심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고 러시아 푸틴, 중국의 시진핑 등이 펼치는 정책들 역시 극도의 자국 중심주의 경향을 띠고있다. 각 나라 안으로 포커스를 좁혀보면 그 소외된 10%를 국가 시스템 안에서 소화해내지 못하여 결국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을 야기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잠깐 시각을 우리나라로 좁혀 보자. 전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을 몰고오고 있는 중국 우한 폐렴 파동에 대한 인터넷 뉴스를 보아하니 우리나라 우한 교민 구출 작전의 종착지 장소가 충청도 어느 지역(아산, 진천)으로 결정되었고 그곳의 주민 반발이 거셌다고 한다.(결국 나중에는 그 지역 주민들이 포용하였지만)
당연히 불안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고 나도 그 지역에서 있었다면 반발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 교민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결국 우리네 고모, 이모, 또 우리들의 자식들 아닌가?
어쩌다 살다보니 다른 사회에 편입되었거나, 되고있는 중에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잠시 보름 정도 피난시키는데 이렇게까지 모두들 난색을 표명한다면 , 만약 나중에 백두산이라도 심하게 터져(또는 다른 국가적 사태가 터진다면) 우리 모두 갈 곳없이 다른 나라로 잠시나마 피난길에 오르는 일이 생겼을 경우, 인접국인 중국이나 일본에서 모두 국경을 폐쇄하고 못들어오게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주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지나치다. 모두들 너무하는 것 같다. 다른 이들에게 좀 더 자비로워지고 배려해주어야 한다. 왜? 우리만 잘먹고 잘살고 안전하게 살면 되지않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