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초콜릿? 고흐 쿠키!
-기업의 시그니처에 대한 고찰
2018년 1월, 동유럽 여행에서 잠시 들렀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이 도시는 그야말로 모차르트 천지였다. 매주 펼쳐지는 예술, 문화 이벤트는 물론이려니와 의식주 전반에 걸쳐 모차르트 또는 아마데우스의 브랜드를 달고 각종 상품을 팔고 있었다. 심지어는 거리의 쓰레기통 뚜껑에서도 모차르트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상점을 둘러보면서 가장 눈길이 간 것은 미라벨 모차르트 초콜릿. 뭐 먹어보면 맛은 일반 초콜릿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하나씩 정성스럽게 은박지로 싼 모차르트의 두상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잘츠부르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구매한다는 이른바 시그니처 상품이다.
[먹기에는 다소 아까운 모차르트 초콜릿]
동유럽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들렀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이 도시에서는 자국 태생인 빈센트 반 고흐가 광고판에서, 상점 간판에서, 길가 소음차단벽에서...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뮤지엄 인근 기념품 상점에서 쿠키를 하나 골랐는데, 이것도 당연히 고흐의 삐쩍 마른 얼굴이 떡하니 중앙에 새겨져 있었다.
이것 역시 암스테르담의 시그니처 상품.
암스테르담에서 판매하는 반 고흐 쿠키
유럽의 도시들을 둘러보았을 때 가장 부러웠던 점은, 그 도시에서만 볼 수 있었거나 살 수 있었던 '시그니처 아이템'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그니처(Signature)'란, 원래 '서명' 또는 '특징'이라는 뜻의 단어인데, 최근 산업계에서는 '그 기업만의 독특한 기술 또는 상품(브랜드)'로 전유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시그니처 상품(브랜드)이라 하여 위에 소개한 모차르트, 고흐 등 반드시 유명하거나 럭셔리 아이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몇 가지 경험담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필자가 다니는 독서토론 모임인 '숭례문 학당' 인근에는 작은 치킨집이 하나 있다. 메뉴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꼭 그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치킨 메뉴가 있다.
이 메뉴의 핵심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닭 껍질과 살짝 매콤하면서 감칠맛이 두드러지는 힘찬 근육질의 닭다리 맛이다. 게다가, 치즈가루가 살짝 뿌려져 있는 갓 튀겨낸 감자튀김이라니...
실컷 독서 토론을 하고 나와서 밤늦게 시원한 생맥주 한 잔과 이 치킨을 즐기고 있노라면 바로 이곳이 무릉도원인 것 같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정으로 강한, 이 집만의 시그니처이다.
숭례문 학당 인근의 최가네 치킨... 꿀꺼덩~
두 번째 경험담이다. 최근 지인들과 1박 2일 서점 투어 할 때,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는 책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네비도 알려주지 않는 어느 비포장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한참 헤매다 겨우 찾아낸 단양의 어느 헌 책방.
천정에는 거미줄이 주렁주렁 늘어져있고 바닥은 거친 흙바닥, 그 위에 마구 쌓아 올린 거의 몇십 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책장 대열... 우리는 바로 넋이 나가버렸다.
나는 제일 좋아하는 문학예술 편으로 달려가서, 한 권 한 권 책들을 들춰보았다. 첫 여백에 빼꼭하게 가득 차 있는 친구들과의 소소한 우정, 연인들의 분홍빛 사랑, 아버지의 자상한 권독(勸讀)어들... 참 아름답다. 가만히 30년 전의 그 마음들을 쓰다듬고, 보듬어 보았다.
문학예술 책장들 옆은 사회과학 서적들이 쌓여있었다. 그곳에서는 책장마다 진열되어있는 시대정신들과 엄한 훈장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누군가의 평생의 가치관들을 잉태시키고 영글게 했던 수많은 사회과학 책들. 그러나, 지금은 유기견처럼 세월을 견뎌내며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사하다 잃어버렸던 고전을 몇 권 샀는데, 당시 책값 3,500원이라고 찍힌 게 15,000원이라고 한다. 기꺼이 지불했다.
이렇듯 이 책방은 단순히 헌 책이라는 물리적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경유해간 사람들의 아름다웠던 시간을 모아 판매하는 장소이다. 이것이 이 책방의 시그니처이다.
다만, 그 시간을 촬영만 하지 말고 구매도 한 권 해달라는 것이 서점 주인의 당부.
아... 맨바닥에 위태롭게 서있는 저 책장... 책장들!
친애하는 김동창 대표와 함께...
세 번째 소개할 경험담은, 필자가 몸담은 그룹 계열사 중 부산에 있는 호텔 내 뷔페 레스토랑이다. 이 곳에서는 최근 국내 최초로 'to go'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그 시작 동기가 재미있다. 경험담 위주로 이야기해보겠다.
우리가 호텔 뷔페에 가게 되면, 평소 맛보기 힘든 메뉴, 미슐랭 뺨치는 음식들 위주로 식사를 하는가. 아니면 평소 좋아하는 메뉴 중심으로 식사하는가. 당연히 후자보다는 전자가 의미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고급 호텔에 갔으므로... 게다가 양도 무한정 아닌가.
그런데, 필자의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새로운 메뉴 대신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접시에 퍼온다.(에효... 호텔 뷔페에 가서 잡채를 고르는 사람이 바로 나다)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희귀 음식보다는 자기 기호에 맞는 음식들 중심으로 접시를 채우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었다.
결국, 맨날 먹는 음식으로 배가 가득 차서 레스토랑을 떠나게 될 쯤에야 다른 메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저것 좀 몰래 싸 갖고 갈 수없나, 저 마카롱을 집에 있는 막둥이 녀석에게 갖다 주면 너무 좋아할 텐데... 별 생각이 다 들며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다. 바로 이 작은 틈을 포착해서 만든 서비스가 'to go' 서비스라고 한다. 허걱. 남은 음식을 싸 갖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어느 고급 호텔 뷔페에서 싸 갖고 가는 걸 허락하겠는가?
이 호텔은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to go 서비스'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가족들의 마음까지 고려한, 섬김과 배려의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서비스도 시그니처이다.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온 더 플레이트
원하는 범주(일식, 중식, 한식)를 말하면 도시락까지 싸준다, 헐~~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러한 시그니처는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사전 기획된 것? 짜 놓은 플랜? 뭐 일정 부분 맞을 수도 있겠다. 모차르트 초콜릿이나 고흐 쿠키 등은 국가, 지자체에서 엄청난 예산을 퍼부어 만든 아이템 중 하나이니까.
하지만, 후술 한 작은 치킨집의 메뉴, 산골짜기 헌책방, 싸 갖고 가는 뷔페 레스토랑 음식 등의 사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시그니처는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는 것'이다. 즉, '의도성'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1990년대 이후 많은 기업에서 표방해온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에 대한 키워드가 있지만, 최근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출간한 '포에버 데이 원'에서 소개한 아마존의 '고객에 대한 집착'이라는 개념이 바로 이 시그니처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즉, 직원 개개인마다 늘 고객에 대해서 집요하리만치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생각들이 매일매일 개울물처럼 고이게 되고, 회사 내에서 이러한 개인들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면 결국 도도한 강물(이것을 그 회사의 Service Identity라고 할 수 있겠다)을 만들어 거스를 수 없는 고객을 향한 트렌드와 벡터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시그니처 상품과 서비스가 탄생하는 것이다.
"고객을 향한 진정성 있는 자연스러움, 그것이 현현한 것이 바로 '시그니처'다"
참고로, 우리 회사를 의도적으로 홍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이런 글 쓰는 것을 흉보지 마시라. 그저 회사에 대해 진정성 있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례가 도출되었을 뿐이다. (능청)
이것이 바로 직장인으로의 나의 작은 시그니처라고 생각하고 용서하시길.
- 8월의 용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