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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Mar 28. 2021

비오는 날, 독립서점 탐방기

"봄이 되면 독립서점이나 한 번 탐방하자"


어느날 다락방 브라더스 모임(일명 슈필라움 모임)에서 한 마디 툭 던졌다. 서점 일을 오래했고, 지금은 문구점을 크게 하는 D 브라더가 좋은 생각이라며 본인이 바로 여정을 짜보겠다 한다. 일단 일정은 하루로 잡되, 서울을 중심으로 대여섯 군데를 돌기로 하고 차량은 D 브라더의 SUV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독립서점 탐방날 아침, 이미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가 농밀한 사색의 향기를 뿜으며 온 대지를 차분하게 그러안고 있었다. 평소 페친으로만 알고지내던 몇몇이 중간에 일행으로 합류했고, 차는 천천히 을지로 아크앤북 시청점으로 향했다.


모회사가 외식업체라는 D 브라더의 설명을 들으니 뭔가 아크앤북에서 파는 책들은 맛있는 요리책들일 것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사람을 위한 책, 사람과 책을 위한 공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서점과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고있는 대형 서점이었다. 독립서점이라기보다는 핫플 서점인 셈이다. "독립서점 1타가 왜 이 서점이여?"했더니 일단 기준점을 이 서점으로 하고 나머지 독립서점과 비교점을 찾아보자는 의미라는 D 브라더의 말.


들어서자 마주치는 안티크한 책장 인테리어와 배선이 그대로 노출된 천정, 화사한 바닥 분위기는 마치 서로 다른 성격의 부부가 오래 살면 나타나는 묘하고도 이색적인 어울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느낌은 서점 바로 앞에 옛 서체의 로고에 비하여 모던한 느낌의 진열대를 갖춘 태극당 시청점이 주는 느낌과는 또 사뭇 달랐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보니 책들과 안경, 그림엽서와 소품들이 전시되어있는 중앙광장(?)을 말없이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2대의 빨간 전화부스가 눈길을 끌었다. 특이하게도 그 안에는 책 검색 엔진이 탑재된 PC가 들어있다고 했다(직접 부스 안을 보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그 기능과 상관없이 그저 새빨간 전화 부스의 색감에 매혹되었고, 이렇게 봄비가 뿌옇게 내리는 날, 어쩌면 빨간 색의 전화부스 안에서 누군가 손을 맞잡고 키스라도 한다면, 다니엘 델 오파노의 로맨틱한 화폭이 되었을 거라는 엉뚱한 상상만이 눈앞의 한 장면으로 흘러가고있을 뿐이었다.


늘어선 책꽂이마다 책들은 일반 도서 분류표대로 큰 편향없이 골고루 배치되어있었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책 터널이었는데, 마치 이것은 일본 도쿄의 시나가와 터널 수족관을 연상케하였다. 한 귀퉁이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의 한 부분을 확대하여 그린 그림이 붙어있었고, 그 위로 무려 4천권이 넘는 서적들이 서로의 몸을 맞대고 압착하여 큰 굴을 이루어 내었는데 어떤 이는 그것을 압박과 해방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지식의 아우성이라고도 하였다.

아크앤북의 시그니처, 북터널


아무튼, 아크앤북은 잘 정제된 반짝거리는 소금 알갱이 같은 서점이었다. 서점으로서의 특징보다는 사람과 책이 로맨틱하게 만나는 연인들의 장소로서 적합한 곳이었다. 휴일 책을 매개로 데이트를 꿈꾸는 연인들이여, 책이 쏟아지는 터널안에서 아슬함과 짜릿함의 경계를 누리시기를...(불륜 사절)




두번째 서점은 책을 좋아하시는 한 성형외과 원장님이 직접 자기 빌딩에 차린 '채그로'라는 독립서점...

여기는 뭔가 예쁜 책이 많을거야~아니, 성형외과 원장님이 못생긴 책도 매스로 예쁘게 다듬어서 진열했을꺼야~라는 엉뚱한 상상을 품으며 달려갔는데...역시나 예뻤다. 마치 다락방있는 전원주택의 포스라고나 할까.(실제로는 건물의 8층~9층이 서점)  


독서토론 모임도 꽤 많은 모양이었고, 2~3층도 서점과 연계해서 각종 세미나실 등으로 대관하는 모양이었다. 진열되어있는 책으로만 판단한다면, 이곳 역시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지향하는 독립서점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품고 사람들과 책을 만나게 해주는 지식 공간 중 하나였다. 멋진 한강뷰를 보며 책을 핑계로 데이트도 하고, 가끔 성형도 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 채그로...




홍대 인근 타이 요리 전문점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고, 우리는 서교동의 땡스서점과 바로 옆 정치발전소라는 독립 서점을 찾았다. 이곳들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메이던 독립서점의 이미지가 강하게 풍겨나온 곳들이었다.  


그런데, 땡스 서점을 들어갔을 때, 엉뚱하게도 가슴속으로 훅 들어온 느낌은 2019년에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하일리켄슈타트 하우스의 이미지였다.


입구에는 Enjoy the little things라고 씌어있는 팻말이 서있고, 안쪽에는 비대칭 사선으로 죽죽 그어놓은듯한 진열대, 그 아래 3줄로 얌전히 책꾼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독특한 주제의 도서들이 있는 땡스 서점 한 컷.


귓병때문에 32살에 자살을 시도하려 간 베토벤의 하일리켄 슈타트 하우스, 그곳 스브니에 샵에서 묵묵히 작은 오르골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돌리던 우리 큰 아들의 장면 한 컷.


전혀 닮지않은 이 두 장면이 왜 내 머릿속에서 연합되어있는걸까?


음울한 날씨, 작은 규모, 노란 조명불빛...이런 것이었나? 아, 입구에 서있던 작은 팻말 글귀...작은 것들을 소중히 하라(Enjoy the little things)!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에서 나는 베토벤이 꾸겨 던진 작은 휴지조각을 보았다.


하일리켄 슈타트 하우스의 유리 진열장에 전시된 그 휴지조각에는, 힘없는 작은 것들(민중들)을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혁명가 나폴레옹에게 헌정(교향곡 3번 '영웅')하였으나, 후일,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민중을 배반하고 제정시대를 연 그에게 화가 나 꾸겨 던져버렸다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Enjoy the little things! 얼마나 멋진 말인가? 나는 독립서점 '땡스서점'의 이 작은 캐치프레즈에 반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진열되어있는 책들도 다른 곳에서 잘 살펴볼 수 없었던 강한 개성의 작은 책들이 많았다. S 브라더는 새로운 철학 트렌드를 알려주는 매거진을 골랐고, 또 다른 S 브라더는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딸래미에게 선물할 영화 서적을 구매하였다. 나도 경찰을 꿈꾸는 딸래미를 위하여 어느 형사의 경찰 스토리를 한 권 넣고 바로 옆 독립서점인 정치 발전소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의 특징은 나름 정치사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아지트인데, 동행한 좌빨(?) S 브라더의 해석에 의하면 자신과 같이 래디컬한(극단적인) 취향의 사람들이 찾을만한 depth는 그다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스미요시 마사미의 '위험한 법철학'이라는 책에 이끌려 한참 읽다 끝내 결재를 해버리고 말았다.(책값만 20여만원이 지출되었다...코로나로 한달 용돈이 절반으로 깎였는데 이번 달은 라면만 먹고살아야한다능)





다음에 도착한 '니은 서점'은 그야말로 내가 찾던 독립서점 이미지였다. 작은 동네 서점인데, 노명우라는 아주대 사회학자가 오너이다. 이곳은 월 100만원씩 탄탄하게(?) 적자가 나는 소규모 책방이다. 니은서점이라는 이름은 우리 한글 자음중에 니은이 가장 발음이 편하다고 해서 지었다 한다.


이 분은 서점이야기로 책도 쓰셨는데 책 이름도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이다. 그런데, 서점이 얼마나 안되었으면 하루 한 권도 못 파는 빵(0)권 데이도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절절하게 전해진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책들은 사회학자답게 다양한 관점으로 사회를 볼 수있는 주제들로 배열되어있었고, 특이한 것은 서고들 맨 위칸에 도라에몽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노명우 교수의 별명이 진구(도라에몽 친구)라 하여 그런 인형들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분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북텐더'라고 부르고 더불어 성장하는 존재로 여긴다는 오너의 철학...그는 책을 착하게 보지말고 그저 편하게 보라고 권유한다(한국경제,2020.10.12일자 기사). 책이 바로 옆 친구, 이웃같은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내가 만약 은퇴 후 책 공간을 만든다면 딱 이 규모로 만들고 누구나 편하게 대하는 동네 사랑방 아저씨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책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윽고 문을 나서는 나에게 니은 서점이 질문을 던진다. 다시 생각한다. 책은 나에게 어떤 인식론적 의미를 주는 존재일까? 나는 진정 무엇때문에 독서를 하는가? 늘 진실과 사실의 어디쯤 헤메이다 문득 맞닥뜨리는 아포리아, 나는 늘 책에서 에피스테메를 갈구하였지만 결국 주변인에 불과한 것을 깨달을 뿐...   






마지막으로 강남의 한 서점(최인아 서점)을 들르고, 무려 10시간의 하루 여정은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동행한 L 대표님(복합문화공간 마샘 대표 역임)의 고민을 같이 공유하면서 탐방 소감문을 끝내려 한다. L 대표님의 문제제기는 이러하다. 독립서점의 두 키워드... 즉, '개성'과 '생존'을 어떻게 공존시킬 수가 있을까?


개성있는 독립 서점을 운영하자니 월 몇 백, 몇 천씩 적자가 나고, 그렇다고 생존을 위해서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자니 개성이 사라져 독립 서점으로서 의미가 별로 없어진다...이거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다.(사실 이렇게  실상을 파악하고 나니 나도 은퇴후 독립서점이나 열어볼까...하는 생각은, 바로 마누라 등짝 스매싱 날라올만한 나 혼자만의 낭만적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 두 키워드는 우리네 직장 장면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모순이다. 요즘 개성있고 창의적인 인재를 중용하지않는다는 조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실제로 조직에서 그렇게 행동하게 되면 모난 돌되어 정맞기 십상이다. 그러니 개성을 발휘하려면 조직에서 나가야 하고, 그대로 있자니 정을 하도 맞아 개성없는 일반 돌이 되어버린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모순이다.


L 대표의 제안은 이러하다. 서점이라는 개념을 프라이빗이 아니라 퍼블릭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지역 독립 서점들과 지자체, 국가 공공기관들의 연대를 통하여 요즘 많이 회자되는 기본 소득처럼 서점의 안정된 매출을 유도하고, 서점도 책의 공급, 유통업이라는 개념을 파괴하여 동네 인문학의 구심점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서점이 일종의 공공재 역할을 할 수가 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시인을 꿈꾼다고 한다. 주변에 보면 정말 시도 쓰고 응모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필자를 포함하여) 젊었을 때 모두들 잘 나가는 문학청년이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시인을 지망하는데 왜 시집은 안 팔릴까? 정말 웃픈 현실이다.


가난한 예술인은 있다. 그러나, 모든 예술인이 가난할 필요는 없다. 이 명제가 성립되려면 앞서 L 대표님의 말씀을 확장하여 '예술=공공재'라는 등식을 전제로 하여야한다. 우리는 어쩌면 예술인들에게 일정 부분 빚을 지면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빚을 져야하므로...


2021. 3월 용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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