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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Jul 16. 2021

객관적으로 떨어져 나를 보다

- 의식(Consciousness)을 먼저 차지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최근 회사에서 개인적으로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정기 감사 시즌에 (내 생각에) 깜도 안 되는 사안에 대하여 지적을 당하였던 것이다. 살면서 지금까지 사회적 룰이나 도덕, 규범에 크게 저촉되지 않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조직 생활 30여 년 만에 감사실의 지적을 받게 되니 다소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내용을 까 보니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다만, 이 자리에서 회사의 감사 지적 상황에 대하여 일일이 토를 달거나 변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그러한 것을 들춰내야만 하는 감사실 고유의 역할도 십분 이해한다).


이 사건이 있기 전 나는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었다. 의식 철학이나 뇌과학, 인지 심리학 등 최근 이론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1인칭 관점에서 내 자신의 '의식'도 관찰하고 있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한낱 여름날의 흩어졌다 사라지는 덧없는 구름 같은 것인가? 아니면 종교계에서 말하는 영혼이라는 실체가 중심이 되는 뭔가 의미 있는 존재인가? 나의 의식을 관찰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상위 의식(메타 의식)은 매우 평온하였으며, 모든 이성과 지성, 감정은 일사불란하게 진리 탐구를 위하여 협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평형상태는 상기 감사실 지적 사건을 전후하여 완전히 깨져나갔다. 일주일 내내 다양한 종류의 생각과 감정이, 마치 폭풍처럼 나의 뇌 속을 휘저으며 다녔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것들은 머릿속 한편에 언제든지 일어날 태세로 똬리 치고 나를 노려보고 있다.


바로 이것이 궁금한 것이다. 왜 나의 의식은 이렇듯 변화무쌍한가. 최근 1주일간의 나의 의식을 파훼하는 것이 오늘의 주제이다.




최근 의식에 관한 연구는 대략적으로 크게 보면 4가지 결을 갖고 진행되고 있다. 의식은 완전한 뇌의 작용이라는 물리주의(환원주의 ; reductionism)나, 자극과 반응의 매개 작용이라는 기능주의(functionalism)의 유물론적 흐름이 있고, 의식은 영혼 등 신비한 그 무엇이라는 신비주의(mysterianism)와 인간의 마음이 갖는 고유한 현상적 개념이라고 의식을 설명하는 현상학(phenomenology)이 있다.


다소 어려울 수가 있어서, 위에 언급한 나의 감사 지적 사건이 나의 의식에 미친 사례로 설명해 보도록 하자.


1. 물리주의(환원주의) 연구가의 설명

   - 감사실장의 전화를 받고(청각 신호-> 측두엽 뉴런들에게 전달) 관련 기억을 더듬어보니 (장기기억장치의 정보망 활성화)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전전두엽에서 기존 기억과 현재 정보를 비교 판단) 지적질해서 화가 났다.(변연계 등 감정을 관장하는 뇌 부위의 활성화)... 음, 설명하자니 더 어려운 것 같다. 하여튼 이 연구가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의식은 특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뇌의 신경 상태라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들과 그다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


2. 기능주의 연구가의 설명

   - 감사실장의 전화를 받으니(입력-자극) 이거 뭐야, 이게 감사 껀이야?(매개) 원참 성질나네(출력-반응). 이러한 기능주의 연구가들 역시 환원 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을 동물의 그것이나 매한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개를 걷어차면 깨갱하는 반응이 나오는...) 사실, 이러한 입장은 현대의 학습심리나 조직심리에서 많이 응용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3.  신비주의 연구가의 설명

   - 감사 지적 상황이 발생되었다. 아, 이게 웬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저 감사실장은 나하고 필히 전생에 웬수지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아 그리고 알고 보니, 나는 2021년 7월 중순경에 구설수에 오를 사주를 타고났다... 신비주의 연구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을 결정주의적 설명이라고 하는데, 사실 의식에 관한 4가지 접근법 중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접근방법이다. 이러한 원인을 현재의 자기 책임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고 귀인 하기 때문에 맘(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서)이 편해지는 것이다.


사회 부조리나 불합리한 면이 발생하게 되면 1,2번 접근가들은 사회 구조적 문제나 개인 병리적 차원을 들여다보는 반면에, 3번 접근가들(특히 종교계)은 운명 탓, 전생 업보 탓, 조상 탓, 하늘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 탓이요 운동' 등 정확한 Fact finding보다는 극단적이고 무조건적 자기 귀인을 유도하기도 함) 사실 이 접근은 개인과 사회적 성장, 발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4. 현상학 연구가의 설명

   - 감사실의 지적이 있어서 나의 마음은 현재 억울함, 분노, 화, 걱정 등이 지배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현상학 접근법에는 1인칭 접근법과 3인칭 접근법이 있는데, 1인칭은 말 그대로 나 자신이 1인칭 주체가 되어 사건을 현상 그대로 느끼고 판단하는 것을 내성 관찰 등의 방법으로 접근하는데 반해 3인칭은 이러한 모든 현상들을 객관화하여 증거를 수집하고 기술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1인칭과 3인칭 접근법을 융합해서 접근하는 방법도 모색이 되고 있다.(프란시스코 바렐라 같은 이가 대표적인 학자이다)


, 의식에 관한 최근 재미있는 이론 중 하나는 굳이 분류하자면 기능주의 연구가라고 할 수 있는 대니얼 데닛의 '정치적 권력 투쟁으로서의 의식' 이론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은 동시에 여러 가지 파편화된 의식 덩어리들이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에 떠있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하나의 의식이 마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파편화된 의식 덩어리들은 대표 의식이 되기 위하여 서로 타협하고 경쟁하면서 민주적으로 권력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의식이 인간의 '그 순간 의식'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감사 지적 사건 케이스에서의 나의 의식 획득 과정은 마냥 그렇지만은 아 것 같다. 지난주 감사 지적 상황을 통지받았을 당시 나의 두뇌 속에서는 여러 가지 의식들(이를테면 리더십 논문을 찾아 읽어야 한다던가, 점심밥을 뭘 먹어야 할 것인가, 누군가 만나야 하는데 라는 걱정 등등)이 경합을 벌이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치 쿠데타가 일어난 것처럼 감사 지적 사건에 관련된 의식이 한순간에 나의 두뇌를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그 와중에 다른 의식들과의 민주적 과정(타협과 소통, 의사결정 등)은 싹 다 무시되었다. 그 이후 이 의식은 장기 집권으로 약 1주일 간 거의 90% 이상 나의 두뇌 에너지를 소모하였다. 그 와중에 들어오는 여러 가지 정보나 판단 요구는 그저 묵살되었다.


아마도 개인차는 있을 것이다. 필자는 Big 5 심리검사를 하게 되면 N(신경증) 점수가 수준 미달로 나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목계지덕(木鷄之德)을 갖춘 사람들은 좀 다르겠지... 어쨌건 대니얼 데닛의 정치적 권력투쟁 의식 이론은 재미있기는 하나,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순간적으로 격앙되고 분노에 휩싸이며 충동을 누르지 못하는가? 또 어떨 때는 행복감에 가슴이 떨려오기도 하고, 편안함과 숭고, 감동에 휩싸이는가? 어쩌면 철학과 과학, 종교가 만나는 세 지점에 그 해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격정에 휩싸여 부르르 떨고 있을 때, 뭔가에 빙의된 듯 홀려있을 때 평상시로 돌아오게끔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실천적 방법은, 객관적으로 나의 몸에서 붕 떨어져 또 하나의 상위 의식(메타 의식)으로 나를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다. 옛 분들이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할 수 있다라던가, 화가 나면 1부터 10까지 천천히 세보라든가, 심리학에서 감정 빼기 등등이 비슷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건 나는 지금에서야 1주일간 나를 지배하였던 감사 지적질에 대한 부정적 의식에서 벗어나(약간의 파편화된 부정적 의식은 전술하였듯이 아직도 뱀처럼 뇌 한켠에 앉아있긴 하다) 의식에 관련된 이 브런치를 쓰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상위 의식이 내 뒷머리 윗부분에서 지금 대표 의식을 관찰하고 있다. 어쩌면 그 상위 의식도 또 하나의 상위-상위 의식에 관찰되고 있으리라...


- 2021. 7월. 휴직 중 용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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