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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Feb 16. 2021

좀비는 왜 무서운가?

-좀비 현상과 사회적 실패에 관한 소고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 각종 서구 매체에서는 좀비물들이 엄청 증가해왔는데, 최근 한국에서도 좀비물이 대세인 것 같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스위트홈', '킹덤'을 비롯한 좀비 영화뿐 아니라, 좀비 웹툰, 소설, 문화...


TV, 넷플릭스, 케이블 TV 등 어느 매체나 채널을 돌리면 좀비물이 쏟아진다. 왜 그렇게 사람들은 좀비를 무서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열광하는 것일까? 그들은 단순히 공포 영화를 즐기는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 특별한 상징적 현상이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필자는 후자 쪽에 뭔가 Gut Feeling이 땡긴다.


일단, 좀비의 특징은 이러하다. 그것들은 괴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 1차로 죽음을 맞이한 시체들이다. 그리고 다른  개체를(때에 따라 사람, 또는 여타의 동물들도 해당) 만나면 물어뜯거나 생채기를 내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러면 공격당한 개체는 좀비로 변하게 되고 또 다른 개체를 찾아 거리를 헤매게 된다.


솔직히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중남미 아이티 등에서 마약을 투약하고 정신적으로 학대하여 생각이나 의식을 거의 갖지 못하게 한 후, 좀비 노예로 만드는 사례들은 최근까지 종종 보고되었다고는 하나, 실제 물리적인 죽은 몸체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좀비 같은 실체는 당연히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좀비라는 추상적 개념은 사람들의 주관적 관념 속에 살아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좀비를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좀비의 흉측한 외모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필자는 좀비의 속성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주인공 발에 우연히 걸린 낙엽의 바스락 소리, 잠깐 손으로 터치한 차에서 나는 비프음에 극도로 민감한 어떤 존재. 어렸을 때 이불속에서 숨죽이고 시청했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의 발자국 소리 같은 불안한 느낌... 그래서 자칫 나의 한 순간의 실수가 스스로 좀비가 될 수도 있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두려운 것 아닐까.


이러한 속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상징으로서 좀비 현상을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위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 이후의 신자유주의를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다. 좋든 싫든 이 체제하에서 사는 모든 이들은 상위 1%와 하위 99%로 구분되어 존재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주요 문명국들의 경제사를 훑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이전에도 대체로 1:99 또는 10:90의 계층이 존재한다고 하였고, 신자유주의 체제하에 그 불평등 극간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자본주의 하에서 사는 99%, 또는 90%는 자칫 빈민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고 산다. 그리고 운이 없던 능력이 없던 실제로 그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필자는 바로 이 사회적 실패라는 가능성 자체를 좀비라는 추상적 개념과 연동하여 생각해보았다.  


좀비 영화에서는, 선택된 극소수의 1% 인원들이 군대의 호위 아래 헬기, 우주선, 커다란 배, 지하 벙커 등의 세이프존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극소수 인원들의 세이프 존이라는 곳도 늘 어디선가 '감염자'가 생기게 마련이어서 결국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영화 말미에 영웅의 등장으로 간신히 사태를 모면하지만 이미 대다수는 좀비의 희생자가 된 이후이다.

 

실제로 코로나 19 팬데믹 초기에 어떤 초부유층들은 아예 독립된 섬을 사서 피난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결국 감염자는 발생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식량도 날라주어야 하고, 주택이나 시설이 고장 나면 고쳐주어야 하는데, 그 일을 누가 하는가? 그들이 접촉을 하지 않으려 했던 바로 99%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선택된 극소수 1% 인원들은 늘 그들만의 세이프 존 안에 들어가 있다. 훌륭한 교육과 보건, 그리고 평생 쓰고 남을만한 자산이 그 세이프 존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나름 탄탄한 구조임에도 세이프 존의 입구와 출구는 하위 99%가 살고 있는 구조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위 99% 또는 90%의 경제적 부침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1%의 세이프 존에 쓰나미나 가뭄을 몰고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좀비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좀비를 무서워해야만 하는가. 기피해야만 하는가. 나만 잘 살자고 도망가야만 하는가. 사회적 상징으로서 좀비 현상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1. 2월 어느 날, 용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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