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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뚱이 Oct 20. 2020

나.당.팬!

-내 마음속의 천사와 악마

나는 이제, 나의 자아를 두 개로 분열시키기로 하였다. 긍정의 '나당팬' 자아와 비판적인 '나당팬' 자아...

뭔 이야기인고? 


기본적으로 나는 'Having'류의 자기 개발서를 믿지 않는 편이다. 책의 좋은 이야기를 잔뜩 머리에 두고 출근하면 바로 현실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긍정 감정으로만 대처하기엔 녹록지 않은 추접 빤스 같은 지저분한 현실 말이다.


그래서 늘 나는 까칠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건 그 저의나 의도부터 의심했다. 소위 나만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았던 것이다. 인지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메타인지와 Context 파악은 뇌 한 구석에서 나의 행동을 제어하는 기본 기제였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기업 장면에서 이것은 나름 경쟁력으로 작동하기도 하였지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면 소위 번-아웃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 안경을 끼고 보면 회사에서 사내 정치하는 모습들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분노와 두려움, 불안 등의 부정적 정서가 항상 내 주위를 맴돌았다.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뭔가 돌파구가 없을까?

어느 날, 출근길에 내 뒤를 바짝 따라오던 BMW 한 대가 깜빡이도 안 켜고 칼치기하려 했을 때(10미터 전부터 그의 의도를 파악한 나는) 평소처럼 빵~경적을 울리며 비켜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의 캄캄한 뇌 속에 메시지 하나가 둥둥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뭐하는데?' 


먼 시야에 V자 모양으로 가을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가 잡혔다.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강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핸들을 잡은 내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노르아드레날린 대신 옥시토신 비스무리한 것들이 온몸을 채워갔는지 갑자기 기분도 아늑해졌다. 


나는 브레이크로 서서히 감속하여 BMW가 안전하게 나의 차선에 들어오도록 했고, BMW는 노란 비상등을 몇 초간 깜박이며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어쩌면 그는 회의 참석 때문에 정말 급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차 속에 응급 환자가 있거나...


메시지가 계속 뇌 속에서 일어난다.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조그마한 양보와 친절을 베푼다는 것, 이것이 기분 좋은 리액션으로 내게 다시 왔다. 그래, 이렇게 다른 사람을 사심 없이, 의도 파악 없이 순수하게 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10대 소년이었을 때 때 묻지 않은 동심으로 아이돌이나 배우를 좋아했던 것처럼...


정말 이것은 '팬심'이 아닌가? 상대방을 향한 순수하고 맹목적인 애정 말이다. 비록 그가 내게 개인적 관심이나 별도의 메시지를 주지 않아도 그냥 좋아하는 것.


범위를 확장시켜보기로 했다. 내 주위의 가족, 동료, 지인들 뿐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까지... 그 모든 사람들을 나의 팬이라 가정하고 행동해보자. 그냥, "나는 당신의 팬입니다"라고... 뇌까리면서 말이다. 나는 그날 아침 굳은 결심을 하였고, 주변에 알렸다. 


이후, 분노를 야기하고 화가 나는 다양한 장면에서 정말로 '나당팬'을 중얼거리며 행동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상황은 놀랄 만큼 빠르게 진정되었고, 그 속도보다 훨씬 앞서 나의 부정적 감정이 가라앉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결과적으로 봤을 때, 내가 생각했던 만큼 나를 둘러싼 상황은 의도적으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곤 하였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나 중심 사고'에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무관심하다는 심리학 메시지가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진짜로 나를 속이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럴 때는 무조건 나당팬을 외운다고 해결이 되지 않았다. 상대방의 기만이 확실할 때에는 철저하게 응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 번째 나당팬이다. 이것은 '나는 당신을 팬다'의 약자이다.(진짜 패는 것은 아니고...ㅎㅎ) 어쨋건, 이런 자들에게까지 맹목적 사랑을 줄 필요는 없다.(나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아니다)


어쨌건, 서두로 돌아가서 나는 나의 자아를 두 개로 분열시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당신의 팬이다' 자아와 '나는 당신을 팬다' 자아...


나의 두 번째 자아가 가급적 잠자고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항상 순수하고 애정 어린 첫 번째 자아가 온 지구 상의 사람들을 대한다면 천국이 따로 없겠지. 


나의 첫 번째 자아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부드럽게 말씀드린다. 


나는 당신의 팬입니다!!

-10월 어느 가을날, 용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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