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종로

by 엉뚱이

그날, 종로

엄마는 그날따라

이상한 말씀을 하시었다

살아싸워라



산동네 문구점을 운영하시는 울 엄마

퀭한 눈으로 청년 아들을 올려다보시며 반복해서 말했다

나오지않는 볼펜심을 꾹꾹 혓바닥에 누르며,

살아싸워야지 죽으면 다 헛것이여



그날은 삼십년전 오월, 이십오일 오후였다



뜨거운 오월의 햇살은

차 한대 없는 종로 신작로에 쏟아지고

번득이는 눈알을 굴리며 백골단들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골목마다 하얀 안개같은 최루 포말이 퍼지고

결코 먹잇감을 놓치지않는 그들의 발길에

우리는 무너지고 부서지고 찍히고 밟히었다

와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여학생이 밟혀죽었대



스멀거리고 웅성대는 소리의 파도

점점 커져가는 분노의 동그라미

전열을 가다듬고 스크럼을 다시 조직하며 나가본다

주먹을 불끈쥐고 목소리를 높여도 보지만



돌아오는건 또 다른 발길질과 몽둥이질



하지만 그날 우리는 살아남았고

이름모를 그녀는 죽었다

치를 떨었지만, 어쨋건



삼십년이 지났다



어느날

TV에서는 수천명의 택배 노동자가


그녀가 스러져간 바로 그 공간에서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또다른 절규를 하고있었고,


그시간 안방에서

나는 택배 한 상자를 편안하게 열고있었다




그런데 상자 안에는

삼십년전의 이름모를 그녀

김.귀.정

그녀가 살풋 미소짓고 있었다



또 책 속에는,

살아싸우라는 나의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닮은

그녀의 엄마가 노점상을 하고 있었다



그날 종로



누군가는 살아 돌아왔고

누군가는 죽었었다



하지만,



삼십년이 지난 지금 과연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어있는건가



ㅡ 2021. 5월, 김귀정 열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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