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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틀란 Jun 11. 2023

덩크슛, 이승환 (1993)

소원과 신발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 히기야 야발라바 히기야

주문을 외워보자 오예 야발라바 히기야모 하이마모 하이루라     


1989년 등장했던 이승환의 대표 별명은 ‘어린 왕자’죠. 저는 자꾸 김수철의 그 ‘작은 거인’으로 착각하는데요. 키가 작은 것에 감정이입 되어서인가 봐요.  수많은 인기곡 제치고 이 노래를 좋아합니다. <덩크슛>!      

혜성을 보고 소원을 비는데요. 갖고 싶은 빨간 차나 여자친구가 아니라 평생 ‘덩크슛 한번만 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웁니다.   '아브라카다브라'도 아니고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도 아니고 야발라바 히기야! 원하는 것 다 이뤄지도록 하는 주문이랬어요.     


농구열풍은 스포츠현실계에서도 이어지고 있지만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영화계에서도 몇 번인가 있었죠. 허재, 현주엽, 서장훈 선수들이 인기였고요. 한국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일본 만화 <슬램덩크>, 그리고 극장판 <더 포스트 슬램덩크>까지요. 현실이건 만화, 드라마이건 농구 속 선수들은 무조건 키가 커야 잘 합니다. 예외도 있지만 현실감은 떨어지죠.

그런데 가수 이승환은 작아요. 키 작은 사람들의 소원은 작아서 못하는 것들의 염원이 많습니다.


덩크슛, 슬램덩크는 바스켓위로 몸을 띄워서 공을 꽂아 넣는 일입니다. 던져서 넣는 게 아니라 위에서 꽂아 넣는 거잖아요.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노래제목으로, 노랫말에 주문을 넣었을까 싶은 거죠.

     

한때 농구화가 유행이었던 적도 있었어요. 농구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도 충격 흡수를 잘 한다고 했죠. 그냥 멋으로도 신었고요. 90년대 들어와서이고요. 70년대 이전에 군생활 하신 분들은 군화, 전투화가 농구화로 주어졌다고 하더군요.


최근 공개된 영화 <에어 조던>은 마이클 조던이 나**에서 자신이름이 붙은 농구화를 출시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더라고요.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미래경영까지 떠오르던데요. 암튼 파카와 함께 농구화도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등골 브레이커’가 됐습니다.  

       

좀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만일 이승환이 값비싼 농구화를 신으면 덩크슛이 가능할까요?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이건 좀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이승환 가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요. 그럼 농구화를 신지 않으면 농구선수들은 덩크슛을 넣지 못할까요? 이것도 좀 애매하지 싶어요. 각종 스포츠화가 정말로 뛰고 굴리고 발을 쓰는데 신발회사가 말하는 만큼 효과가 있을까 싶습니다.  

    

크리스토퍼 맥두걸이라는 종군기자는 <본 투 런>이라는 책 속에서 인간이 달리고 걷는데 신발이 정말로 필요한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죠. 그는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늘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데요. 어느 날 얇은 샌들을 신은 남자가 돌투성이 산길을 전력질주하고 있는 사진을 보게 되죠. 멕시코 험한 산길과 협곡에 숨어사는 타라우마라(가벼운 발) 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을 추적하고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죠. 문명이 발달하고 마차와 차를 탄 인류는 땅과 직접 몸을 접촉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살기 위해 맨발로 달리던 시절에는 없었던 병들을 만납니다. 더욱이 두툼한 쿠션으로 발을 감싸면서 뛰는데 안성맞춤이었던 근육과 힘줄이 그 기능을 잃은 겁니다. 실제로 러너들이 비싼 러닝화를 신으면서 부상이 잦아진 사실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최근 넷***에서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라는 다큐멘터리영화도 공개됐죠. 극영화보다 현실감이 더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맨발로 뛰자는 주장은 못하겠습니다. 이미 퇴화된 기능을 어쩔…. 가끔 산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짝 걱정을 합니다. 조금만 하십시오.

     

70년대말 정휘창 아동문학가의 동화가 떠오릅니다. <원숭이 꽃신>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 되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물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던 원숭이에게 오소리가 오색빛깔 꽃신을 선물합니다. 원숭이는 신발 따위 필요 없었지만 선물이라서 받아 신었어요. 그 후로도 오소리는 꽃신을 선물로 주었고 원숭이 발바닥의 굳은살은 차츰 얇아졌죠. 이윽고 신발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된 원숭이는 오소리에게 잣을 바치며 신발을 사서 신을 수 밖에 없게 되었죠. 공짜로 원조 받아서 먹던 밀가루에 입맛이 바뀐 어떤 사람들은 비싼 돈 주고 사서라도 먹을 수 밖에 없게 된 이야기와 비슷하네요.      


키 작은 사람들의 소원, 덩크슛이 인간의 멈출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소소하게 이룰 수 없는 욕망들이 너무 많은 인간들이어서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음이랄지…. 힝, 쓰고도 마음 아프네요.

기계 칩을 장단지에 심어서 덩크슛 할 수 있는 시절이 올까요? 그러면 신발 대신 기계일까요? 지금도 존재하는지 알 수 없군요.


이승환의 덩크슛 노래는 그러니까, 순진하고 낭만적인 소원을 다룬 노래 같습니다. 아직 굳은 살 안 생긴 원숭이 발바닥 같은.


다른 마음으로 노래 불러 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욕망에 마음 다치지 않기를. 평생을 바쳐서 덩크슛 한번 하는 것보다 여자친구가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 히기야 야발라바 히기야

주문을 외워보자 오예 야발라바 히기야모 하이마모 하이루라     


한번 더 외쳐 보니 세상사람 누구나 어쩌지 못하는 덩크슛 하나는 간직하고 있겠다 싶어지긴 합니다. 이룰 수 없는 꿈으로.

https://youtu.be/-9Qt4zzk5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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