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등장했던 이승환의 대표 별명은 ‘어린 왕자’죠. 저는 자꾸 김수철의 그 ‘작은 거인’으로 착각하는데요. 키가 작은 것에 감정이입 되어서인가 봐요. 수많은 인기곡 제치고 이 노래를 좋아합니다. <덩크슛>!
혜성을 보고 소원을 비는데요. 갖고 싶은 빨간 차나 여자친구가 아니라 평생 ‘덩크슛 한번만 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웁니다. '아브라카다브라'도 아니고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도 아니고 야발라바 히기야! 원하는 것 다 이뤄지도록 하는 주문이랬어요.
농구열풍은 스포츠현실계에서도 이어지고 있지만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영화계에서도 몇 번인가 있었죠. 허재, 현주엽, 서장훈 선수들이 인기였고요. 한국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일본 만화 <슬램덩크>, 그리고 극장판 <더 포스트 슬램덩크>까지요. 현실이건 만화, 드라마이건 농구 속 선수들은 무조건 키가 커야 잘 합니다. 예외도 있지만 현실감은 떨어지죠.
그런데 가수 이승환은 작아요. 키 작은 사람들의 소원은 작아서 못하는 것들의 염원이 많습니다.
덩크슛, 슬램덩크는 바스켓위로 몸을 띄워서 공을 꽂아 넣는 일입니다. 던져서 넣는 게 아니라 위에서 꽂아 넣는 거잖아요.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노래제목으로, 노랫말에 주문을 넣었을까 싶은 거죠.
한때 농구화가 유행이었던 적도 있었어요. 농구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도 충격 흡수를 잘 한다고 했죠. 그냥 멋으로도 신었고요. 90년대 들어와서이고요. 70년대 이전에 군생활 하신 분들은 군화, 전투화가 농구화로 주어졌다고 하더군요.
최근 공개된 영화 <에어 조던>은 마이클 조던이 나**에서 자신이름이 붙은 농구화를 출시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더라고요.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미래경영까지 떠오르던데요. 암튼 파카와 함께 농구화도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등골 브레이커’가 됐습니다.
좀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만일 이승환이 값비싼 농구화를 신으면 덩크슛이 가능할까요?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이건 좀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이승환 가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요. 그럼 농구화를 신지 않으면 농구선수들은 덩크슛을 넣지 못할까요? 이것도 좀 애매하지 싶어요. 각종 스포츠화가 정말로 뛰고 굴리고 발을 쓰는데 신발회사가 말하는 만큼 효과가 있을까 싶습니다.
크리스토퍼 맥두걸이라는 종군기자는 <본 투 런>이라는 책 속에서 인간이 달리고 걷는데 신발이 정말로 필요한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죠. 그는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늘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데요. 어느 날 얇은 샌들을 신은 남자가 돌투성이 산길을 전력질주하고 있는 사진을 보게 되죠. 멕시코 험한 산길과 협곡에 숨어사는 타라우마라(가벼운 발) 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을 추적하고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죠. 문명이 발달하고 마차와 차를 탄 인류는 땅과 직접 몸을 접촉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살기 위해 맨발로 달리던 시절에는 없었던 병들을 만납니다. 더욱이 두툼한 쿠션으로 발을 감싸면서 뛰는데 안성맞춤이었던 근육과 힘줄이 그 기능을 잃은 겁니다. 실제로 러너들이 비싼 러닝화를 신으면서 부상이 잦아진 사실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최근 넷***에서 <로레나 샌들의 마라토너>라는 다큐멘터리영화도 공개됐죠. 극영화보다 현실감이 더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맨발로 뛰자는 주장은 못하겠습니다. 이미 퇴화된 기능을 어쩔…. 가끔 산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짝 걱정을 합니다. 조금만 하십시오.
70년대말 정휘창 아동문학가의 동화가 떠오릅니다. <원숭이 꽃신>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 되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물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던 원숭이에게 오소리가 오색빛깔 꽃신을 선물합니다. 원숭이는 신발 따위 필요 없었지만 선물이라서 받아 신었어요. 그 후로도 오소리는 꽃신을 선물로 주었고 원숭이 발바닥의 굳은살은 차츰 얇아졌죠. 이윽고 신발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된 원숭이는 오소리에게 잣을 바치며 신발을 사서 신을 수 밖에 없게 되었죠. 공짜로 원조 받아서 먹던 밀가루에 입맛이 바뀐 어떤 사람들은 비싼 돈 주고 사서라도 먹을 수 밖에 없게 된 이야기와 비슷하네요.
키 작은 사람들의 소원, 덩크슛이 인간의 멈출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의 일부라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소소하게 이룰 수 없는 욕망들이 너무 많은 인간들이어서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음이랄지…. 힝, 쓰고도 마음 아프네요.
기계 칩을 장단지에 심어서 덩크슛 할 수 있는 시절이 올까요? 그러면 신발 대신 기계일까요? 지금도 존재하는지 알 수 없군요.
이승환의 덩크슛 노래는 그러니까, 순진하고 낭만적인 소원을 다룬 노래 같습니다. 아직 굳은 살 안 생긴 원숭이 발바닥 같은.
다른 마음으로 노래 불러 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욕망에 마음 다치지 않기를. 평생을 바쳐서 덩크슛 한번 하는 것보다 여자친구가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주문을 외워보자 야발라바 히기야 야발라바 히기야
주문을 외워보자 오예 야발라바 히기야모 하이마모 하이루라♩
한번 더 외쳐 보니 세상사람 누구나 어쩌지 못하는 덩크슛 하나는 간직하고 있겠다 싶어지긴 합니다. 이룰 수 없는 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