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스트 카우>
지인에게 이 영화를 추천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쓱 검색해보더니, "동물 나오는 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리고 서부 영화도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척 봐도 서부 영화 같고, 게다가 제목이 <퍼스트 카우>인 이 영화는 놀랍게도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반신반의하는 제 지인을 위해, 그리고 혹시나 같은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는 여러분을 위해, 오늘 이 영화를 한 번 본격적으로 영업해보겠습니다.
※ 10월 28일(목)에 진행된 <퍼스트 카우>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퍼스트 카우>는 2021년 11월 4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퍼스트 카우
First Cow
<퍼스트 카우>의 배경은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입니다. 미국이 기회의 땅으로 불렸던 때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서부 시대입니다. 그럼 이 영화도 결국 ‘서부 영화’ 아닌가요? ‘서부 영화’는 맞지만, ‘서부 영화’가 아니라고 해야 정확하겠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서부 시대가 맞지만, 장르로서는 서부 영화가 아니거든요.
몰아치는 액션과 시끄러운 총소리로 버무려진 개척 정신과 약육강식. 영화의 한 장르로서 ‘서부 영화’는 이러한 전형성을 갖습니다. 화끈한 총격전은 필수, 매력적인 액션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총탄을 갈겨도 서부 영화는 그저 통쾌하기만 할 뿐,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개척 정신이라는 명목 하에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어쨌든 서로 죽고 죽이는, 살인과 폭력의 스토리니까요.
그런데 <퍼스트 카우>는 유쾌합니다. 이 서부 영화는 그저 ‘서부 개척 시대의 두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소젖 서리를 하는 이야기’거든요. 총은 고사하고,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습니다. 개척 시대에 소젖 서리라니, 영화의 줄거리를 텍스트로 옮겨놓으니 이 영화의 유쾌함이 더욱더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쿠키’와 ‘킹 루’는 총을 잡는 대신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고, 그 빵을 팔아 돈을 법니다. 여느 서부 영화와 다를 바 없이 남성들이 주인공이지만, 이들은 어느 서부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남성들입니다. ‘쿠키’는 유대인, ‘킹 루’는 중국인입니다. 유대인과 동양인은 2세기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비주류의 상징이죠. ‘킹 루’는 사업가적인 기질을 발휘해 총 대신 머리를 굴리며 개척 시대를 살아내는 인물이고, ‘쿠키’는 괴롭힘을 당하는 무리 내 약자이면서도 거처에 들꽃을 꺾어 꽂아둘 만큼 섬세한 성정을 가진 인물입니다. 이들은 싸움이 벌어져도 총을 들고 맞서기보다 그 자리를 조심스레 벗어나기를 택하곤 합니다. 개척 시대의 전형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들이죠. 총잡이들의 세상에서 총잡이로 살아가지 않는 비주류의 인물들. 이 영화가 서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유쾌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영화는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해 두 인물의 특징과 성격을 느긋하게 설명합니다. 서부 시대를 살아가는 두 비주류의 이야기를 관객이 낯설어하지 않도록 말이죠. 당연히 서부 영화인 줄 알고 보러 왔는데, 총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극장을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 발 정도의 총소리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이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이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주류의 역사만을 그려온 서부 영화에 등장한 비주류의 이야기. 낯섦은 유쾌함으로 바뀌고, 유쾌함은 곧 깨달음이 됩니다. 내가 주류의 그늘에 가려진 비주류의 이야기를 또 놓치고 있었구나. 훌륭한 영화 한 편 덕분에 오늘도 제 시야가 한층 더 넓어졌습니다.
가끔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도통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되게 좋은 영화 같은데, 도대체 하려는 말이 뭐지? 관객에게 해석을 맡기는 건가? 나만 이해를 못 한 건가?’ 하며 혼란에 빠지곤 하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정말 친절하거든요. 시작부터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상냥하게 알려줍니다. 바로 이 인용문을 통해서요.
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 man friendship.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
윌리엄 블레이크가 쓴 ‘지옥의 격언(Proverbs of Hell)’의 한 구절입니다. 영화는 이 시를 인용하며 우리가 풀어놓을 스토리가 다름 아닌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퍼스트 카우>는 나란히 누워 숨진 두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친절한 길잡이 덕분에 쉽게 유추할 수 있죠. 저 시신 2구가 우정을 나눈 친구일 것이며, 남은 러닝타임 동안 그것을 설명하리라는 걸요. 아무래도 앞서 소개해드렸던 영화 줄거리를 조금 보충해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서부 개척 시대의 두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소젖 서리를 하며 우유보다 진한 우정을 쌓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이 어떠한 사건(대부분 오해)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진다. 이후 끊임없이 대립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위기의 상황에 놓이고, 어느 한 사람이 모종의 희생(목숨에 위협이 갈 정도로 심각하지만, 절대 죽지 않는다)을 통해 요란하게 우정을 증명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보고 이런 영화겠거니, 지레짐작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쿠키’와 ‘킹 루’의 우정은 요란스러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들은 참으로 차분하게 우정을 쌓아갑니다. ‘쿠키’는 위기에 빠진 ‘킹 루’를 구해주고, ‘킹 루’는 나중에 다시 만난 ‘쿠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배려를 베풉니다. 그들은 개척 시대의 한복판에서 노닥노닥 서로의 고향과 각자의 꿈에 관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저 고향에서 먹던 우유 넣은 빵이 먹고 싶을 뿐인 ‘쿠키’와 그렇게 만든 빵을 팔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킹 루’.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의기투합하여 마을에 하나뿐인 소젖을 훔칩니다. 훔친 우유로 만든 빵이라는 사실을 들켜 쫓기는 와중에도 둘의 우정은 탄탄합니다. 사소한 오해도, 야비한 배신도 없습니다. 이들의 우정은 그렇게 변곡점 하나 없이 끝까지 무탈하게 흘러가죠.
흔하디흔한 배신, 탐욕, 오해가 없는 우정 이야기가 어찌나 낯설던지. 저도 모르게 세속에 너무 물들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꼭 배신한 상대를 용서해야만, 탐욕을 억눌러야만, 오해를 풀어내야만 진정한 친구가 되는 건 아니죠. 진정성 있는 교감, 우정의 전제조건은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시사회장에서 제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분은 자신이 예상했던 서부 영화가 아니었는지, 소젖 서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극장을 나가시더군요. 참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야말로 ‘서부 영화’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작품인데 말이죠. 장르의 전형성을 비트는 역작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의구심을 품던 분들께 제 영업이 제대로 먹혔을지 궁금하네요. 혹시 이 리뷰를 읽으시고 영화를 감상하고픈 마음이 드셨다면, 영화 감상 후 댓글에 여러분의 느낀 점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참, 어느새 낯설어져 버린 35mm의 필름의 투박한 종횡비에 적응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또 한 가지 묘미랍니다.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표적이 되어 쫓기는 킹 루를 구해준다. 몇 년 후 정착한 마을에서 재회한 이들은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돈을 벌기로 하는데…
“우리에게는 지금이 기회야”
감독: 켈리 라이카트 존
출연: 존 마가로, 오리온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