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링 로맨스>
곧 극장에서 내릴 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영화, 꼭 영화관에서 보셨으면 좋겠거든요. 미친 영화, <킬링 로맨스>입니다.
킬링로맨스
Killing Romance
하, 이 영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인데 말이죠. 그래도 어디 한 번 해보겠습니다. 세상에 못하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실은 <킬링 로맨스>가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촬영하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은 영화죠. 한 마디로 세상에 불가능한 건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하는 작품입니다. 일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영화가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작품이었지요, 아마?
'웃기려고 작정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킬링 로맨스>에는 각종 코미디 요소가 판을 칩니다. 이 작품은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만든 영화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차원 개그부터 고차원 개그까지 고루 섞어서 다채롭게 넣을 수 있을까요? 예고편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과장된 행동과 말투, '존나(John Na)'라는 이름 개그만으로 감히 이 영화를 짐작하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평가'라는 단어는 적합한 표현이 아닙니다. 평가는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까요. <킬링 로맨스>에 대적할 만한 혹은 버금가는 영화는 적어도 우리나라엔 아직 없습니다.
코미디 영화는 관객을 웃기려고 애써버리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웃음기가 싹 날아가는, 굉장히 어려운 장르의 영화입니다. 하지만 <킬링 로맨스>에는 캐릭터의 성격을 부연하거나 스토리에 맥락을 더하는 개그가 많아서 웬만하면 웃음이 죽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억지로 웃기려고 넣은 개그들도 보였죠. 그러나 그마저도 뻔하지 않게 비틀어 주기에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쓱쓱' 날리는 잽 정도는 손쉽게 피할 수 있다며 방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으로 '삭' 접근해 귓가에 '후웃-'하고 바람을 불어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그런 웃음 공격이랄까요? 한 마디로 '쓱쓱삭후웃-' 전법이죠. '쓱쓱삭후웃-'.
'킹 받네'라는 신조어, 한 번쯤 들어보셨지요? 영어 단어 ‘King’과 ‘열 받네’를 합친 말로, 부정적으로도 쓰이고, 긍정적으로도 쓰이는 묘한 표현입니다. 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음이 빵 터졌을 때, 그렇게 웃음이 터져버린 내가 어이없을 때, 그런데도 여전히 재밌어서 웃음이 새어 나올 때, '킹 받네'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네, <킬링 로맨스>는 정말 '킹 받는' 영화입니다.
<킬링 로맨스>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참 매력적입니다. 웃음을 포장지 삼아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사회 문제들을 드러내죠. 아무래도 공부에 소질이 없어 보이는 '범우'가 서울대만 배출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4수에 도전한다든가,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래'가 어쩔 수 없이 밀랍 인형처럼 웃으며 버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냥 웃어도 되는 영화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몇 번이나 '존나'를 죽이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고 마는 '여래'의 상황은 영화의 결과는 달리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마음이 아려오기도 했죠. 현실의 씁쓸함을 웃음으로 심화한 <킬링 로맨스>, 잘 만든 블랙 코미디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원석 감독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안전하지만, 절대 신선한 자극을 줄 순 없죠. 전체 영화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이러한 장르에서 최상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이러한 장르가 뭐냐고요? 글쎄요, '장르가 이원석'?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킬링 로맨스>는 (그 와중에) 뮤지컬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관에서 꼭 보셨으면 하고 바란 이유가 여기에 있죠. 영화의 주제곡 중 하나는 가수 비가 녹음했고, 단체 댄스 장면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댄서 모니카가 연출했습니다. 아직도 영화가 썩 끌리지 않는다면, '이런 부대 요소라도 한 번 구경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다녀와 보시는 건 어떨지요? 적어도 한두 번, 아니 서너 번, 아니 네댓 번은 웃고 나오시리라 장담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히 미친 영화, 저는 너무 좋던데요. 요즘같이 퍽퍽한 세상에 이런 영화 하나쯤은 괜찮지 않나요?
대재앙 같은 발연기로 국민 조롱거리로 전락한 톱스타 ‘여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남태평양 ‘콸라’섬에서 운명처럼 자신을 구해준 재벌 ‘조나단’을 만나 결혼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한편, 서울대가 당연한 집안에서 홀로 고독한 입시 싸움 중인 4수생 ‘범우’는 한때 자신의 최애였던 '여래'가 옆집에 이사온 것을 알게 되고 날마다 옥상에서 단독 팬미팅(?)을 여는 호사를 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조나단'의 사업 확장을 위한 인형 역할에 지친 '여래'는 완벽한 스크린 컴백을 위해 '범우'에게 SOS를 보내게 되고 이들은 '여래'의 인생을 되찾기 위한 죽여주는 계획을 함께 모의하는데… (출처: 씨네21)
감독: 이원석
출연: 이하늬, 이선균, 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