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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기린 Mar 02. 2019

결혼은 미친 짓이다? 바보블래스유!

계속 미쳐라, 그러면 행복할지니

남편이랑 내가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가끔 동시에 중얼거리듯 하는 말이 있다.


“그래, 미쳐야 결혼하지.”


무언가에 홀린 듯, 함께 살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한 결혼 준비. 경제적인 한계나 부모님의 반대 같은 벅찬 장애물들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서로의 손을 더 꼭 부여잡게 만들어준 미스테리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미쳤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맹목적인 것이었다.


결혼 후 우리가 미치는 것들

어떤 목적이나 결과를 향해 집약적인 노력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매진할 수 있는 힘을 일컬어 우리는 무언가에 ‘미쳤다’고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이미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은 끝났거나 보류된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그 일에 미친 사람이 멀쩡한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 결혼도 그렇다. 서로에게 미쳐야 이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동거를 달콤하게 느낄 수 있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우리가 그동안 간과했던, 혹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미션들이 융단폭격처럼 쏟아진다. 자칫 잘못하면 “와 진짜 미치겠네” 소리가 절로 날 수 있는 일들이 지뢰처럼 터진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결혼 후 나쁜 의미로 미치지 않으려면,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방면에 생각이 미쳐야 한다. 부부의 말과 행동은 으레 상대 배우자의 합의를 전제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 이번엔 정말 퇴사하려고.”

“어머, 남편이 그렇게 하라고 해?”


“엄마, 나 친구들이랑 홍콩 가기로 했어.”

“김서방이 그러라든?”


어찌 보면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이벤트일 뿐인 결정들에서조차, 사람들은 나와 남편을 묶어 세트로 생각한다. 그래서 부부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미리 상의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나의 결정이 상대방의 인생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이 과정이 그렇게 부당하게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결혼한 부부에게 함께하는 즐거움은 이미 보장된 결과이다. 그토록 꿈꾸던 결혼생활이 일상이 되면서 매일매일 불타오르던 사랑의 열기는 뭉근하게 방바닥을 덥히는 보일러의 온기처럼 자연스러워진다. 서로에게 미쳤다는 표현은 자못 쑥스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이유는 평범한 오늘의 하루가 내일도, 일 년 뒤에도, 수십 년 뒤에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일들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퇴사를 할 때, 남편이 나에게 그런 요구를 한 적은 없지만 내 생각은 십 수년 뒤에 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더 이상은 회사생활이 의미가 없으니 더 늦기 전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연봉보다 훨씬 높은 남편의 연봉을 나는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Yes’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직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또한 부부의 결정은, 부부뿐 아니라 서로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를 가지는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먼저, 우리는 아이라는 존재에 ‘미친’ 상태가 아니다. 앞뒤 안 가리고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득과 실을 판단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에 생각이 ‘미친다’.


- 우리의 경제적 여건이 아이를 부족함 없이 양육할 만큼 탄탄한가?

- 우리의 정신적 여유가 육아의 고단을 감수할 만큼 넉넉한가?

- 평생 둘이서만 지내면 어느 순간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허전함이 밀려오지는 않을까?


이런 과정을 거쳐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그 결정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양가 부모님은 손주를 볼 수 없게 되고 친구들은 잠재적 육아 동지를 잃게 된다. 출산율의 미미한 감소에도 일조하게 될 것이다.

결혼 전에는 양쪽 눈 모두,
결혼하고 나서는 한쪽 눈만.

우리의 결혼식에서 내 친구가 해준 축사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잘 살피고, 결혼 후에는 한쪽 눈은 감아준다 생각하고 상대를 대하라”라고. 참 좋은 말이지만 내 경우에는 이 말이 다르게 적용되었다.


두 눈을 부릅 떴더니 우리의 결혼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똑똑히 보였다. 그래서 그냥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 몰라, 그냥 결혼하자. 나는 사랑의 장님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한쪽 눈만 살짝 떠봤더니 원근법을 상실해서인지 뭐가 우선인지 판단이 잘 되질 않았다. 오늘 즐거우면 됐지 왜 미래에 지금의 행복을 저당 잡혀야 하는 거야? 그냥 이번에도 내키는 대로 여행 갔다 오자! 그러고 나면 또다시 먼 미래가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되는대로 살다가는 나중에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할지도 몰라. 그건 아무래도 안 되겠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아, 추억의 류시화 시집이여!) 서로의 한쪽 눈에 의지하여 둘이 한 몸처럼 사는 것이 이상적일까? 내 생각엔, 아니다. 그건 마치 뇌는 각자 지니고 있는 샴쌍둥이처럼 부자유스러운 일이다.


지금부터 제대로 미쳐보자!

우리 엄마는 가끔 나에게 결혼 후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말한다. 둘이 맞벌이로 아이도 없이 6년을 생활했는데 모아둔 돈이 없다는 건 잘못 산 것이라고. 나 역시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남편은 내일모레 마흔인데,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남편과도 가계문제로 자주 다투었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무엇이든 허투루 돈을 쓰지는 않지만 너무 많은 곳에 돈을 쓴다는 게 문제였다.


“넌 돈을 참 알뜰하게 많이 써.”


그래서 우리는 몇 달 전부터 새로운 가계부를 쓰고 있다.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지출의 우선순위를 합의한다. 그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써도 되는 비용’도 포함했다. 가치관은 변할 수 있으므로 우선순위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걸 전제했다. 그 결과 요즘 남편은 이렇게 얘기한다.


“사실 그동안 나도 너랑 함께 즐겼으니 그 돈은 같이 쓴 거지. 후회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잘해보자!”


결혼생활은 부부의 생각이 함께 미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것 같다. 상대방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그중 무엇을 함께 추구할 것인지, 그리고 그 가치관의 방향성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야 한다.


미쳐서 한 결혼을 축복한다. 그리고 꼭, 결혼하고 나서 더 깊이, 더 멀리, 생각하는 부부가 되길 바란다. 운명공동체인 부부로서 느낄 수 있는 궁극의 행복에 미칠 때까지.


나도 꼭 그렇게 되기를 오늘도 미치도록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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