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노동(child labour)부터 현대판 노예제까지
수년 전, 영국에서 HR 유학 과정을 시작하며 처음 접했던, 그리고 상대적으로 낯설었던 컨셉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아동노동(Child Labour)에 관한 것이다. 국내에서 HR 실무자로 일하면서 거의 접할 일이 없었던 주제였다. 아동노동은 주로 5~14세 사이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어린이들이 해당 시절에 마땅히 경험해야 할 학교 학습을 하지 못하고 정신적, 신체적, 도덕적으로 유해한 노동환경이 주어짐을 의미한다. 이 낯선 컨셉을 영국 대학 HR 교육과정에서는 하나의 수업 전체 토론 주제로 다루기도 한다. 왜 그러할까? 국제사회에서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는 아동노동이 낯선 개념일 수 있으나, 사실 아동노동은 몇몇 빈민국 뿐만 아니라 여러 선진국에서도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빈곤한 가정 경제 여건과 학교가 부족한 사회 기반시설 상황은, 아동노동을 야기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이러한 아동노동은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현대판 노예제 일면이다. 이 글에서는 아동노동을 포함하여 노예제가 왜 현대 사회에서도 거론되고 존재하고 있는지, 특히 영국의 역사적/지리적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본격적으로 아동노동과 현대판 노예제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앞서, 해당 이슈가 HR 관점에서 왜 중요한지 먼저 살펴보자. 1990년대 초, 나이키(Nike)는 동아시아에서 신발과 의류 생산을 위해 공장 근로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들을 학대한다는 비난을 공공연하게 받고 있었다. 당시, 회사는 인건비 상승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국 및 대만에 있던 기존 공장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으로 이전하고 있었다. 이 때 Life Magazine에서는 1996년에 다음의 사진이 포함된 기사를 보도하며 나이키 회사의 아동 노동력 착취 이슈를 대중에 본격적으로 알린 바 있다. 해당 사진은 12세 파키스탄 소년이 바느질로 나이키 축구공을 만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당시 전 세계 축구공의 절반에 가까운 생산량이 파키스탄에서 이뤄지고 있었고, 전문가들은 이 생산량의 ¼이 14세 미만의 어린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추정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의 수 만명 아이들은 축구공 산업에 종사하며 하루에 10~15시간 가량 축구공 꿰매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약 4시간에 걸쳐 공 하나를 완성하면 그 대가로 약 15센트(한화로 약 150~200원)을 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작업이 대부분 집에서 이뤄졌기에 아동노동 착취 산업의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도 부각되었다.
해당 이슈가 대중에 점차 공론화되자, 나이키 측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한 방식이었던데다 아동에 대한 고용 이슈는 하청업체에서 한 것이라며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였다. 하지만 소비자와 투자자를 포함한 대중은 나이키의 책임감있는 대응을 요구하며 나이키 불매운동을 벌였고, 이는 전례없는 주가하락을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문제가 커지자 결국 나이키 측은 저임금 구조에 대한 개선과 아동노동에 대한 근절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약속을 공식적으로 하였다. 이에 대한 개선은 단시간에 이루어 지지는 않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나이키는 산업, 보건, 근로자의 안전 등을 위해 하청업체 파트너사들에 대한 정기적인 감사를 시행하였다. 최근에는 ESG가 대두되면서 근로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나이키 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근로자의 기본 노동권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경우, 노예제라 하면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1863년에 했던 노예 해방 선언과 함께 점진적으로 폐지되었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는 법적 제도가 폐지되었을 뿐, 여러 다른 모습으로 현대 사회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판 노예제(Modern Slavery)란 노예, 인신매매, 착취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여기에는 심각한 신체 상해나 폭행, 강간 또는 아동 성적 학대, 그리고 기타 형사 범죄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포함한다. 현대판 노예제의 피해자는 전 세계 모든 연령대의 남성, 여성, 어린이가 될 수 있다. 현대판 노예제 피해자는 종종 몇몇 빈민 국가에서나 발생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종종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18년 7월에 발표된 최신 글로벌 노예 지수(Global Slavery Index)를 보면, 영국 내 현대판 노예 피해자 수를 136,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대판 노예제 피해자가 경험하게 되는 착취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1)노동 착취: 피해자의 입장에서 무상으로, 또는 소유자/고용주가 일방적으로 정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도록 강요 받는 경우이다. 근로자로서는 비자발적, 강제 또는 처벌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작업 조건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2)성적 착취: 피해자가 성적 만족, 금전적 이득, 개인적 이익 또는 기타 비합법적인 목적을 위해 합의되지 않은 학대 또는 다른 사람과의 성행위를 통해 착취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3)가사 노역: 이 경우 피해자는 다양한 집안일(예: 요리 및 청소)을 수행하는 가사 노동자이다. 이 중 일부는 고용주와 함께 생활하며, 대부분의 경우 낮은 임금을 받는다.
(4)범죄 착취: 강제 구걸, 좀도둑질, 소매치기, 대마초 재배, 마약 거래, 금전적 착취와 같은 활동에서 범죄자의 통제 하에 강제로 일하게 되는 피해자를 의미한다.
공식적으로 영국의 노예 제도는 로마의 점령 시기 이전부터 11세기까지 존재했다. 이후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을 기점으로 노예 제도가 농노 제도로 점진적으로 통합되었고, 노예라는 존재는 더 이상 영국 법이나 관습에서 별도로 인정되지 않았다. 12세기 중반에 이르러, 노르만족의 정복 이전에 존재했던 노예 제도 자체는 거의 사라졌지만, 이후 몇 세기 동안 다양한/유사한 형태의 노예 종속관계가 계속 존재하였다.
16세기부터 노예를 활용하는 노동력은 영국의 산업화와 상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특히, 이는 대서양 노예 무역의 배후 세력을 성장시켰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대영제국 시기에 영국 상인들은 대서양 노예 무역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서아프리카인들을 신세계(특히 서인도 제도의 영국 식민지)에 있는 유럽 내 지배 지역으로 운송하여 그곳에서 판매/거래했다. 일부 상인이나 농장주들은 노예를 외부 국가가 아닌 영국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가사 노동을 돕는 하인으로 일했으며, 식민지에서 노예로 끌려갈 때 부터, 향후 영국에 있는 계약 기간동안 하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인권 포기 각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영국 내에서 영향력 있는 노예제 폐지론 운동이 발생하였고, 오랜 폐지 운동 끝에 의회는 왕립 해군의 서아프리카 소대가 시행한 1807년 노예 무역법을 통과시켜 노예 거래를 금지했다. 영국은 노예 무역을 폐지하고 왕립 해군이 노예선을 금지하는 조약에 서명하도록 하면서 전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영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폐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실제로 노예제도는 특히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노예제도는 1833년 노예 폐지법(Slavery Abolition Act 1833)에 의해 식민지 내에서도 폐지되었다. 근래에 들어 노예 제도와 노역에 대한 금지는 1953년부터 시행된 유럽 인권 협약 제4조에 따라 성문화되었으며 1998년 인권법에 의해 영국 법률에 직접 통합되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아프리카와 영국 사이에 이뤄진 노예 무역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근대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으로 인해 아프리카에 많은 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결정적인 발전 요인이었다는 점에 대하여 긍정한다. 노예무역은 같은 기간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를 연결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여겨졌다. 노예 생활에 대한 결정은 돈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만이 판단의 잣대가 되었다. 당시 노예를 사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긴 했지만 그들의 노동으로 인한 이익이 비용보다 컸다. 특히 노예의 약 70%는 가장 노동 집약적인 작물인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보내졌으며, 나머지는 커피, 목화, 담배 수확을 위해 고용되었다. 1791년 이후 영국령 카리브 제도는 가장 많은 설탕을 생산했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노예 제도의 이익은 다시 영국 경제로 유입되어 영국과 그 식민지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1630년에서 1807년 사이에 영국의 노예 상인들은 아프리카인을 사고 팔아 약 1,200만 파운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6억 파운드, 한화로 약 2조4천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노예가 된 사람들은 새로운 식민지에서 원자재 수출의 약 75%를 생산했다.
특히 노예무역은 노예가 된 사람과 이들에게 필요한 주거, 의복, 식품과 같은 상품 수요를 통해 영국의 제조업과 산업을 급속히 발달시켰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러한 노예무역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다고까지 말한다. 영국 산업은 노예를 통한 저렴한 노동력으로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남기며 성장하였고, 이러한 물건을 해외에 수출 판매하는 무역에서 얻은 이익은 영국 사업에 재투자 할 수 있는 자본을 제공하였다. 또한 노예 상인에게 재무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과 보험사 역시 함께 성장하였다. 노예무역을 위한 노예선을 준비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선박이 영국으로 돌아가 수익을 내는 데 1년 이상의 장기간이 걸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항해를 감당하기 위해 상인들은 초기 비용을 충당할 돈이 필요했다. 잉글랜드 은행은 노예 항해에 자본을 제공했고 런던 시는 노예 무역의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리버풀, 글라스고, 브리스톨과 같은 영국의 주요 항구들은 노예 무역을 통해 급속한 성장과 막대한 부를 창출하였다. 특히 맨체스터는 값싼 노예들이 수확한 면화로 천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는 중요한 직물 중심지가 되었다. 이 옷감의 대부분은 노예가 된 사람들에 대한 대가로 아프리카 상인들에게 다시 팔렸다. 1761년부터 1807년까지 영국 항구에 기반을 둔 무역상들은 1,428,000명의 아프리카 포로를 대서양을 건너 노예로 팔아 6,000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80억 파운드, 한화로 약 12조원)의 수익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현대판 노예제는 현재 영국 전역에 존재하고 있다. 과거의 경우와 같이 ‘노예’라는 신분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아닐 뿐, 이들은 함께 공존하며 살고 있다. 현대판 노예제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마초 재배, 성 착취, 가정 노예, 그리고 농장, 건설현장, 상점, 술집, 네일 바, 세차장과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또한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 활동의 경우까지 영국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현대판 노예의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들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신고된 경우를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기에 그 정확한 수준과 규모를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다만, 영국 정부기관에서는 2021년 신고된 인원을 기준으로 12,000명 이상이 있다고 추정한다.
해당 데이터 수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2,727명의 잠재적 추정 현대판 노예 피해자 수 중, 43%, 즉 5,468명은 어린이였다. 게다가 전체 대상자 중 31%는 내국인, 즉 영국 국적자였다. 이들이 가장 많이 희생된 영역은 강제 노동이었는데, 특히 이러한 범죄 착취는 영국에서의 마약 재배 및 판매, 특히 어린이 착취에 의해 발생하였다. 어린이의 경우 마약 밀매에 동원된 영국 국적의 어린이 뿐만 아니라 대마초 생산을 위해 강제 노동으로 인신매매된 베트남 출신 어린이들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국의 현대판 노예제를 방지하는 제도와 지원은 아직 불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영국의 국경법과 같은 법률은 해외에서 영국으로 인신매매된 사람들의 회복을 돕고 그들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오히려 이들을 종종 이민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현대판 노예법 (Modern Slavery Act of 2015)을 제정한 바 있다. 이 법의 54조는 자산 3,600만 파운드 (한화 약 570억 원) 이상의 기업에 대하여 기업 운영 및 공급망에서 노예제 근절에 관한 온라인 성명을 작성하도록 요구한다. 예를 들어, 공급망 인권 위험을 별도의 성명서로 작성해 온라인에 공개하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2022년 기준으로 공시 대상의 1/3 수준에 불과한 기업들만이 이를 준수하고 있어, 이러한 법적 조치 역시 부족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노예제는 과거 역사 속에서나 존재하던 모습일까? ‘노예(slave)’라고 직접적으로 불리지 않을 뿐, 노예제도 시대의 삶과 근무환경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 여전히 존재한다. 영국 보험사 협회(Association of British Insurers)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약 4천만 명이 현대판 노예로 살고 있으며, 영국에서만 약 136,000명의 사람들이 네일 바, 건설 현장, 레스토랑, 대마초 농장 및 카운티(county, 주) 경계선을 포함하여 현대식 노예제 조건에서 살며 일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 현대판 노예 제도의 잠재적 희생자 수가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20% 증가하는 등,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고 본다. 이들이 희생되는 주 영역은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인데, 이는 마약과 무기 밀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수익성이 높은 범죄로 매년 약 1,500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림자 속에 드리워져 있다고 해서 당연히 외면하거나 경시해도 되는 영역은 아니다. 여전히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현대판 노예제에 대한 관심과 더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참고문헌
- Oldfield, J. (2021). Abolition of the slave trade and slavery in Britain.
- Rönnbäck, K. (2018). On the economic importance of the slave plantation complex to the British economy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a value-added approach
- BBC (2023). Slave trade and the British economy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3년 2월호에 기고할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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