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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진 Jul 17. 2024

다양성은 “정말로” 더 나을까?

조직 다양성이 비즈니스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연구

들어가며 – 성(姓) 중립적 화장실!?


8년 전, 영국 유학을 위해 입학한 대학교 본관의 화장실 문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남/녀 화장실 외에 성(姓) 중립적 화장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다. 화장실은 당연히 남성과 여성을 위한 두 가지 종류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거나, 혹은 신체적 이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별도의 화장실이 있는 경우는 보았지만, 성별의 구별이 없는 성 중립적 화장실이 존재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놀라웠던 것은 해당 화장실을 아무렇지 않게 구분없이 드나드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었다. 성 중립적 화장실은 LGBT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뿐만 아니라 성별에 따른 차별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했다. 

[그림1] Gender Neutral Toilet – 성(姓) 중립적 화장실




다양성(Diversity), 왜 주목받기 시작했는가


성별에 따른 구분의 정당성은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이기에 이 글에서 별도로 논하지 않겠다. 다만 성별에 따른 차별은 다양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서두에 언급하였다. 차별을 반대하는 평등은 다양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성별, 국적, 신체적/경제적/사회적 조건, 신념, 사상, 가치관, 행동 양식, 종교, 문화 등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치관으로 여겨지는데, 한 마디로 나와는 다른,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recognition)’과 ‘존중(respect)’이 핵심이다. 다양성의 개념은 1960년대 중반에 사회적 인권운동에서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종 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점차 기업과 조직에서도 다양성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환경이 자연스러워졌고, 이는 다양성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다양성은 윤리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윤리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며, 이는 인권과도 직결된 문제다. 사회적으로 다양성은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소외된 그룹의 권리를 보호하며, 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다양성은 창의성과 혁신을 촉진하여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연구와 분석 자료들을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다. 특히 HR에서는 채용, 승진, 보상 등에 있어서 인종, 성별과 같은 배경 요인으로 인한 차별을 줄이고 평등한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성의 긍정적 기대에 대한 챌린지 - 두 가지 질문


다양성에 대한 많은 연구와 기업들의 전략적 시도 배경에는 더 나은 다양성이 더 나은 비즈니스 성과와 생산성, 더 나은 창의성과 조직 문화를 형성한다는 전제가 있다. 이는 이미 여러 분석 연구 자료들을 통해 검증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반박할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성과를 발휘하는 기업들, 그리고 수평적인 문화와 직원들의 몰입도가 높은 기업들이 대체적으로 성별, 인종, 학력, 나이 등에 있어서 더 다양한 배경의 직원 구성을 가지고 있음은 여러 연구들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조직 내 여성 리더의 비중, 비주류 학교 출신, 다양한 인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할 점이 있다.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성과 향상 및 생산성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는 일정한 조건과 통제 환경 하에서 이뤄지는 실증적 연구라는 사실이다. 즉, 다양성이 높으면 생산성이 더 낫다는 주장을 일반화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들과 함께 다양성의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트렌드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질문 1. 다양성과 생산성의 관계를 연구한 자료에서 조사에 참여한 기업들이 더 나은 성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로 더 나은 조직 내 인재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일까?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력 구성의 다양성이 조직 성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면 영향력의 100% 중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질문 2. 인력 구성이 다양할수록 더 나은 비즈니스 성과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인력의 다양성은 무조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은 것인가? 다양성의 궁극적인/이상적인 기대 목표 수치가 있는가? 성별이라면 일단 50:50의 성비가 좋은 것인가? 인종이나 학력, 출신 배경도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더 좋은 것인가?


다양성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주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양성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강조한다. 하지만, 위 두가지 측면에 대해서도 명확히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다양성과 생산성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검증하고자 현재 진행중인 연구를 중심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다양성은 정말로 더 나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좀 더 깊게 탐구해 보고자 한다.




다양성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분석 – 영국 National Highways의 사례


현재 영국 리즈대학교 연구팀 소속으로 조직의 인력 구성 다양성이 조직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과제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 중에 있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연구 과제의 대상이 되는 조직인 National Highways는 영국 도로교통부 산하 기관으로 고속도로와 주요 국도에 대한 운영, 유지, 관리, 보수 등을 담당하고 있는 영국 정부 소속의 국영 기업이다. 정규직 인원은 약 5,000~6,000 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파트너 기관 (도로 건설/보수 현장에 비상설 임시직 인력을 제공하는 기업들)에서 제공하는 인력을 고려하면 그 숫자가 수배를 훨씬 넘는다. 해당 연구는 이러한 직원들의 다양성 배경이 조직의 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준실험 구조의 종단연구로써, 연도별로 직원들의 다양성 비율을 조사하고, 직원들에 대하여 다양성을 고취시킬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반영된 이후 조직의 성과 생산성에 어떠한 변화 결과가 있는지 여부를 장기적으로 추적하는 연구이다. 워낙 방대한 규모의 연구라 해당 글에서 모든 내용을 소개하기는 어렵고, 다음의 두 가지 관점, (1) 어떤 데이터를 취합하여 분석하는가, (2) 네트워크 분석을 활용한 도로 현장 다양성 클러스터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1. 어떤 데이터를 취합하여 분석하는가


다양성과 생산성에 대한 실증 분석 연구라 하면, 아무래도 다양성의 개념을 수치화 할 수 있는 데이터 자료와 생산성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 자료가 필요하다. 해당 연구에서는 다양성의 경우 직원들의 인구통계학적 데이터와 함께 다양성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 데이터를 설문을 통해 취합하였다. 이러한 데이터 항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 외에도 더 다양한 데이터가 있으며, 설문 과정에서 수집한 직원들의 의견과 같은 정성적 데이터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 데이터 구성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준실험 설계 구조) 리즈대학의 연구팀과 National Highways의 HR팀이 전략적으로 설계하고 시행한 다양성 고취 프로그램들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성과 데이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하여 분석한다.


성과 데이터의 경우, National Highways에서는 내부적으로 개발한 CPF (Collaborative Performance Framework) 데이터 프레임워크로 성과/생산성 데이터를 측정하였다. 해당 데이터는 National Highways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성과 지표와 연관된 여러 항목들을 5가지 카테고리로 취합하여 10점 만점으로 변환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의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다: ‘Diversity Performance’, ‘Understanding Key Messages’, ‘Lost Time Incident’, ‘Delay’, ‘Predictability’. 이러한 성과 데이터는 산업 또는 기업마다, 그리고 해당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속성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성과 데이터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        재무 성과 지표: 매출 성장률, 순이익, 주가 성과, 주당 순이익 (EPS)

·        혁신 및 창의성 지표: 특허 출원 및 등록 건수, 신제품 출시 수, R&D 투자 대비 성과

·        직원 성과 지표: 직원 1인당 매출 또는 생산량, 성과 평가 점수, 직무 몰입도

·        만족도 및 몰입도 지표: 고객/직원 만족도, 직원 이직률, 근속 연수, 회사 평판 및 브랜드 가치

·        팀 협업 및 의사소통 지표: 협업 지수, 의사소통 효율성




2. 네트워크 분석을 활용한 도로 현장 다양성 클러스터링


애초에 이 연구는 National Highways라는 조직의 다양성 여부를 진단하고, 전략적으로 몇가지의 다양성 고취 프로그램을 수행했을 때,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조직 성과 변화를 비교 추적하는 것에 대한 실증 분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 과정에서 흥미로운 인사이트 하나를 잠시 소개한다. [그림2]는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도식화한 National Highways의 각 도로 건설/보수 현장의 관계 구조도이다. S로 시작하는 각 꼭짓점(node, 노드)은 Scheme의 약자로써 각 도로 건설/보수 현장을 뜻한다. 각 도로 현장은 서로 다른 상근/비상근 직원들이 투입되기 때문에, 현장마다 다양성 상황이 각기 다르다. 이에 대하여 모든 현장의 다양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슷한 다양성 비율 구조와 특성’을 가진 현장끼리 관계도를 그린 것이 그림2의 결과물이다. 보다시피, S09, S10, S11, S17의 네 곳의 현장이 비슷한 다양성 구조를 가진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인다 (그림의 우측). 그리고, 그림의 중간에 있는 S14가 별도의 현장으로 두번째 클러스터에 속한다. 결과도식화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아웃라이어인 S19를 제외한 나머지 현장들의 그룹이 세번째 클러스터로 좌측에 묶인다. 이 분석을 통해 서로 다른 도로 건설/보수 현장(S)들 중 어떤 현장들이 비슷한 인력 다양성 환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2]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도식화한 National Highways의 각 도로 건설/보수 현장의 관계 구조도로써, 다양성 구성비율이 비슷한 현장에 대한 클러스터링을 보여준다.


이렇게 다양성 특성에 따라 구분한 세 가지 클러스터에 대하여 도로 현장의 성과 변화가 시기별로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한 결과가 [그림3]이다. 도로 건설/유지/보수 현장은 각 현장에 따라 업무 작업의 시기가 각각 다르다. 어떤 현장은 3개월 혹은 6개월만에 끝나지만 어떤 현장은 1년 혹은 2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러한 시기를 크게 3등분 (Early – Mid – Late)으로 나누어 각각의 시기에 따라 어떤 성과 변화가 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3]의 내용 중 일부를 자세히 설명하면, 클러스터1에 해당하는 현장들(색상으로 연녹색)은 건설현장 초기(Early)와 말기(Late)에는 클러스터3에 해당하는 현장들(색상으로 짙은 녹색)과 비교할 때 성과에 있어 큰 차이가 없지만, 중기(Mid)를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클러스터 1에 해당하는 현장들의 다양성 정보들을 클러스터 3에 해당하는 현장들의 다양성 정보들과 비교해 봄으로써, 다양성 구성 비율이 성과/생산성에 어떤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림3] 각 도로 건설/보수 현장 클러스터에 대한 건설 업무 시기적 변화에 따른 성과측정 변화


현재 연구가 계속 진행중이라 더 자세히 밝히긴 어렵지만, 연구팀은 National Highways와 함께 다양한 다양성 고취 프로그램을 시행하였고, 이 프로그램들의 시행 이후 성과/생산성을 추적하여 수집 및 분석 중에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도로 현장의 다양성 구성 비율이 성과에 어떤 관계를 보여주는지를 실증적으로 밝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성 프로그램들이 어떤 성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일으키는지 여부도 추적할 수 있으리라 본다.  




마치며 –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상황을 기대하며


다양성에 관하여 국내의 상황을 보면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하는 듯 보인다. 첫째, 해외에서 다양성(Diversity)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받고 있고 이것이 조직의 생산성 향상에 유익하다는 연결고리가 부각되는 현상을 별다른 비판적 관점 없이 무분별하게 수용하거나 적용하려 한다는 점. 둘째, 한국의 문화적 특성과 인종, 학력 배경, 나이 등 여러 다양한 요인이 있는데, 일단 성별의 차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경영진에 여성 비율이 어느정도 되는가를 잣대로 다양성을 판단하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다양성이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 이것이 조직 내 인력 구성에 있어서 어떻게 구체화되어야 하는지,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다양성의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인식할 수 있는지, 또 산업군마다 다른 특성을 고려하여 다양성이 어떻게 생산성과 연계되어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것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조직의 인력 구성 배경이 다양하다는 다양성(Diversity)이 조직의 생산성과 비즈니스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와 기업들의 전략적 시도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이면에 있는 한계와 구체적인 실상을 분명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더 나은 다양성이 정말로 더 나은 조직의 비즈니스 결과를 이끄는가에 대해 실질적인 검증을 시도하고 있는 영국 대학과 기업의 연구 사례 일부를 살펴보았다. 이상적인 다양성 비율은 여전히 탐구 과정 속에 있으며 다양성이 더 나은 생산성과 가치를 준다는 실증 연구들이 축적되고는 있지만, 통제된 환경 속에서의 결과 해석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4년 8월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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