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HR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영국 기업 집중탐구 시리즈 3부
들어가며: 개인은 대체될까?
지난 1부에서는 AI 시대에 기업이 스스로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청소기, 선풍기 등 가전제품 회사로 알려진 Dyson이 디지털 농업 기업으로 업(業)을 확장한 사례는, “무엇을 만드는/제공하는 회사인가?”라는 질문으로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굳이 고정화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 관점으로 2부에서는 그 변화의 흐름을 HR이라는 기능으로 좁혀, HR 부서 없이 조직을 운영하는 Octopus Energy의 사례를 통해, HR 기능이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번 3부에서는 그 초점을 한층 더 좁혀 개인에 대하여 다음의 질문을 생각해본다. AI 시대에 자동화와 빠른 도구로 인해 개인은 그 역할이 퇴색될 것인가? 조직과 HR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HR professional 개인은 무엇으로, 또 어떻게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해야 하는가? 이 글에서는 필자가 속해 있는 대학을 하나의 사례로 삼아, 조직 내에서 개인 연구자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또 영국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관점으로도 함께 논의해보겠다.
AI 시대에 개인의 퇴색에 대한 챌린지는 연구(리서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AI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여타의 조직에서 개인들이 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AI 에이전트 모델을 개발하여 반복적인 루틴 업무를 자동화하는 경우도 있고, 또는 단순히 자료 검색용, 문서 써머리, 작문, 영어 문법교정 등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play with AI”하면서 지식을 논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AI에게 자신의 가설을 논하면서 반박해보도록 하거나, AI의 답변에 대해 비판적으로 재논의 하거나 (counter-argument), 일부러 반대 의견을 갖는 페르소나를 형성하여 특정 연구 주제에 대해 토론해보는 식이다. (Devil’s advocate – 악마의 대변인 이라고도 한다.)
[1] Devil’s Advocate 는 토론 문화가 발달된 영국에서 개인 혹은 다수가 논의할 때, 일부러 상반된 의견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며 논리적 허점을 공격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러한지 특징들을 생각해보면, 애초에 AI 등장 이전부터 정답(right answer)을 찾는 방식의 학습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로 논의하고, 생각해보고, 재논의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정교화하는 학습법이 익숙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측면 때문인지, 적어도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학생들과 교수 및 연구자들에게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그 사용을 격려하고 있다. 실제로 옥스퍼드 대학은 영국 내 대학들 중 최초로 OpenAI와 협업하여 ChatGPT의 대학교육에 특화된 모델인 ChatGPT Edu 모델을 2025년 9월에 도입하여, 대학에 소속된 사람이면 누구나 해당 모델을 별도의 구독료 없이 사용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대학 입장에서 이러한 전격적인 도입, 그리고 전폭적인 지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래도 대학기관은 일반 기업보다 보수적인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 영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스퍼드에서는 대학 전체의 연구와 행정, 교육, 그리고 학습 방식을 AI 시대에 완전히 재설계하려는 목적으로 도입하였으며, 앞서 언급했듯 필자가 느꼈던 학교 내 학자들 간의 지식 나눔과 협업 분위기도 어쩌면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활용중인 ChatGPT Edu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핵심적인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조직 내부적인 보안 및 데이터 통제이슈이다. 일반 버전과 달리 사용자(개별 연구자)가 입력한 데이터를 OpenAI의 모델이 외부에 공개적인 자료 검색으로 쓰이지 않도록 제한적인 학습 기능을 구축해 놓고 있다. 그렇다보니 대학 내 민감한 연구 데이터나 외부에 노출되면 위험한, 즉 연구 윤리에 저촉되는 데이터 및 개인정보가 ChatGPT Edu에 입력하더라도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외부의 공개 자료는 제한 없이 들어오되, 내부의 데이터는 외부로 나가지 않는, 즉 일방향이 통제된 모델이다. 이 외에도 일반 구독료를 납부하는 개인 사용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용 한도를 제공한다. 아무래도 연구자들이 방대한 양의 논문을 분석하거나 복잡한 코딩 작업을 수행할 때, 업무 프로세스가 저해되지 않는 환경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Custom GPTs를 활용하거나 AI 에이전트 모델을 개별적으로 구축하기도 한다.
옥스퍼드 대학이 이러한 도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단순히 교육 분야의 대학기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직원)이 다양한 AI도구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에 대하여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옥스퍼드 대학이 이러한 모델을 추구하는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학문적 추구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작금에 있어 AI 문해력(AI Literacy)은 모든 학생과 연구자들이 당연히 갖춰야 할 능력이 되었다. 또한 교수와 학생 간의 학습 방법에 있어서도, 교수는 더 이상 지식을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이것은 AI 시대에 개인의 역할 재정의와도 연관되는데, 전통적인 교수의 주요 역할이 “가르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한 답이 무엇이든 “비판적인 사고로 검토하고, 생각해보고, 디벨롭하는, 퍼실리테니터 facilitator”로 그 역할이 재정의되고 있다. 연구 측면에서도 기존에 반복적인 정리나 기초 분석 시간을 줄이고, 연구자들이 더 고차원적이고 창의적인 질문에 집중할 수 있게끔, 그러한 고부가가치 업무에 더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그 목표라 할 수 있다.
AI가 인간 지능의 영역을 이미 대체하기 시작한 이 시대에, 옥스퍼드 대학이 (하나의 조직으로서)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시도가 물론 단 하나의 솔루션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개인(직원)에 대해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오던 조직들, 그리고 HR Professional이 분명히 생각해볼 만한 관점이다.
AI에 대한 많은 논의는, 여전히 대부분 대기업과 대규모의 조직 및 구조 변화에 먼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AI 시대의 HR 미래는 이미 조직 밖, 혹은 HR 제도가 거의 없는 영역에서 먼저 그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영국의 스타트업, 소규모 조직, 프리랜서, 1인 사업자들의 상황을 몇 가지 함께 살펴보겠다.
애초에 HR이 없던 조직에서는 AI 시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영국의 스타트업과 소규모 기업을 보면, HR 부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최소화된 경우가 많다. 물론 이는 한국도 비슷할 것이다. 채용, 성과 관리, 학습, 보상, 웰빙과 같은 전통적인 HR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이를 담당하는 전담 부서는 이런 소규모 조직에 없다. 대신 창업자, 팀 리드, 혹은 매니저가 이 역할을 커버한다. 이전에 2부에서 소개했던 Octopus Energy가 여러개의 팀 단위로 운영되며, 각 팀의 매니저가 HR 기능을 전담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환경에서 AI가 빠른 속도로 HR의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로써 활용된다는 것이다. 조직이 커지면서 일반적으로 구체적이고 시스템화된 HR(인사) 시스템을 도입하곤 했는데, 이제는 개인 단위에서 그러한 HR 관련 기능들을 AI를 활용해 수행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2부에서 다뤘던 Octopus Energy의 마이크로 팀 단위의 운영 사례가 다른 조직에서도 더욱 가속화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채용 프로세스에 대한 설계, 직무소개서(JD) 작성, 보상에 대한 설계 및 제도 구축, 채용 계약서 작성, 커리어 디벨롭먼트 설계, 인터뷰 방식에 대한 구조화 등 기존에 HR이 하던 세부 기능들을 AI를 통해 할 수 있기 때문에, AI 자체가 HR의 기능을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기존에 대규모 기업의 조직에서 HR 부서가 별도로 있는 경우보다, 중소기업,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또 개인 단위에서 더 자주 목격되고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Fractional HR (파트타임 인사책임자)이 부상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정규직 CHRO나 HRBP (Human Resource Business Partner) 대신,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Fractional HR 전문가를 고용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이들은 혼자서 3~4개 혹은 그 이상의 복수 회사에 대한 HR(인사) 전략과 업무를 자문하고 담당한다. 과거라면 팀 단위로 수행했을 조직 진단과 성과 분석을 AI 툴로 개인이 해결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파편화가 점차 개인 단위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중소기업/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HR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 혹은 상당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Peninsula UK는 1983년에 설립된 영국의 대표적인 HR 및 노동법 아웃소싱 전문 기업으로, 영국 내 수만 개의 중소기업(SME)을 대상으로 인사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점차 더 활성화될지, 아니면 AI를 활용하는 개인 단위로 HR 서비스로 트랜지션 되면서 약화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Fraction HR은 최근 영국 스타트업 씬 뿐만 아니라 유연한 노동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개념이다. 이를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부분제/파편형 인사’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기존의 HRBP와 역할의 범위와 소속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다. Fractional HR은 주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시니어급 HR 리더(CHRO급)가 한 기업에 풀타임으로 고용되는 대신, 주 1~2회 혹은 월 단위의 특정 시간만 할당하여 고위급 전략 자문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Fraction HR은 풀타임 CHRO를 고용할 예산이 부족하지만, 조직 설계나 인재 전략 등 고차원적인 고민이 필요한 초기~중기 스타트업들이 주로 활용한다. Fractional HR은 프리랜서이자 여러 기업과 복수로 협업하는 독립 계약자라는 점에서, 특정 기업에 풀타임으로 소속된 정규직원인 HRBP와는 차별화된 개념이다. 뿐만 아니라, 특정 조직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HR 전문성을 상품화하여 여러 곳에 파는 형식이, 기존에 HR 업계에 많이 보이지 않았던 새롭게 정의된 HR professional 역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며: AI 시대는 업(業), 조직, 부서, 개인이 재정의되고 있는 시간
1부 다이슨의 업(業)의 재정의, 2부 옥토퍼스 에너지의 HR 구조의 변혁, 그리고 3부에서 다룬 개인의 HR 기능 역할 변화까지. AI 시대에 변화는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고, 그렇게 변화하는 프로세스는 이내 또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적어도 명확한 한가지는, 변화의 프로세스에서 Redefine/redesign을 통해 관점을 변화하는 조직 및 개인은 그러한 변화 속에서 더욱 기회가 창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 내용은 국내 HR매거진 '월간인재경영' 2026년 2월호 기고 글의 일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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