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날의 기억-
겨울이 되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르신이 있다.
몇 년이 흘렀음에도.
어르신들과 어제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했는데
밤새 안녕이라고 다음날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찬바람 부는 겨울에 그런 일이 좀 잦은 편인 것 같다.
한 기관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그 사이 우리 곁을 떠난 어르신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중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한 어르신이 있다.
꽤 오래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기억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반찬서비스를 주 2회 어르신들에게 배달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때는 반찬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어 배달 중이었다.
보통 2인 1조로 움직이며 한 명은 운전을 한 명은 어르신의 집까지 반찬을 배달하는 형태로 진행이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배달을 하는 날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들어간 선생님이 나오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을 즈음 전화가 울렸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어르신이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고..
그 선생님이 너무 놀란 상태라 조금만 기다리라 하고 바로 뛰어 들어갔다.
들어간 집 마당에서 쓰러져있는 어르신을 봤을 때
나도 순간 너무 무서웠다. 몇 년을 보아오던 어르신인데.. 며칠 전까지 이야기하던 어르신인데..
내 눈 앞에 쓰러져 있는 어르신을 차마 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을 바로 눈 앞에서 본 것도, 일을 하면서 이런 경우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추운 바닥에 누워 있는 어르신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없어서 처음 몇 분 동안은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계속 멍하게 있을 순 없었기에 정신을 차리고.. 먼저 119에 신고를 하고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 날 처음 알았다. 119 차량에는 죽은 사람은 태우지 않는다는 것을.
숨을 쉬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는 상황이 파악되자 112에 바로 신고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경찰들이 출동할 때까지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그날 어르신의 상황을 알 수 없으나 바지가 조금 내려간 상태에서 마당에 쓰러져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어 강력계에서도 들어왔고,
TV에서 보던 모습들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현장 사진을 남기고... 증거물을 찾고.. 결과적으로 외부 출입 흔적은 없었다고 하였다.
집 구조상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술을 드시고,
화장실을 다녀오다 옷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나온 상태에서 넘어져 쓰러지신 것 같았다.
술을 드시지 않았다면 상황판단을 하셨을 텐데 술로 인해 몸을 가누지 못한 듯하다. 그리고 추운 날씨 탓에 쓰러진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마셨던 것 같다.
반찬서비스를 받지 않으셨다면 한참 지난 후에 발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다행인 건 주 2회 배달 덕에 어르신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으로 경찰 조서를 받았다. 어쨌든 사건으로 접수가 되어 필요한 과정이라고 해서 경찰서에 찾아갔다.
경찰 조서까지 다 받고 사무실로 복귀했는데
그제야 모든 것이 실감이 났다.
처음에는 내가 정신 차리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정신줄을 꼭 붙들고 있었다.
근데 사무실에 복귀하는 순간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줄을 놓게 되었다. 온몸이 떨려서 그날 퇴근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한동안은 그날의 잔상이 계속 떠올라 어떨 때는 무섭기도 했고 어떨 때는 슬프기도 했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결국 술 때문에 저렇게 되신 것 같고, 추운 겨울날 마당에서 얼마나 추우셨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가 발견을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집안이나 병원에서 돌아가시지 하필 추운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셨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 모습이 오래도록 나를 떠나지 않아 한동안은 조금 힘들었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되면 문득문득 그 모습이 떠오른다.
누구라도 처음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당황할 것이다. 나도 그랬고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잠시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신 차리고 119나 112에 신고하여 조치를 하고, 빠른 시간 내 수습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르신이 편히 쉴 수 있게.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고 해서 이런 경험을 할 확률은 높지 않다.
그 일 이후로 사망한 어르신들의 소식을 들은 적은 많지만 직접 발견한 일은 없었으니깐.
한 동안은 어르신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게 쉽지 않았다. 혹여나 그런 모습을 또 볼까 봐..
문밖에서 어르신의 대답이 있는지 확인하고 들어가곤 했다.
현장에서 노인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은 어르신들의 죽음에 대비를 하고 있으면 좋겠다.
대비라고 해서 특별한 걸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과의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갑작스럽게 이별할 수 있다는 걸.
집 안 내부에서 쓰러져 있는 어르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최초 발견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으면 좋겠다.
염두에 두고 있는 것과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상황에 부딪치는 건 큰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혹시나 어르신들이 돌아가셨을 때는 본인 스스로에게도 시간을 주어야 한다.
내 정신과 내 마음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시간을.
나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나에게 머물러 있을 줄. 그날의 기억이 그날의 감정으로 자꾸 날 데려갈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