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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와 이제 헤어질 준비를 합니다.

-이전의 나로-

by 까칠한 여자


익숙해진다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참 무서운 것 같다.

변화되는 환경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느 정도 적응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그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어느새 우리는 익숙해지고 만다.

익숙해지고 나면 그 앞에 상황이나 그 앞의 나의 모습은 까맣게 잊히고, 때론 그 익숙함이 당연함으로 연결되어버리기도 한다.


작년에는 강상의 문제로 회복을 위해 주말에는 주로 집에서 쉬었다. 처음에는 회복을 위한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그 시점이 그냥 나에게는 여러모로 쉼이 필요했는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자발적인 약속은 잡지 않게 되었다.

만나자는 약속에 응하기는 했지만 자발적으로 내가 약속을 잡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약속도 주말보다는 퇴근 이후 시간으로 정하는 일이 많아져

주말에는 거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게 된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이전에는 생각지 못한 나의 일상의 모습이다.

난 그냥 무료하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참 아까워했던 사람이었다.

주말에도 늦잠 자는 시간이 아까워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이른 하루를 시작했다.

약속이 없을 때는 책 들고 동네 카페에 가고, 공원에 산책이라도 가야 했던 사람이었다.

뭐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냥 보내는 하루가 너무 아깝게 느껴져서.


그랬던 내가 변했다.

'또 다른 나' 만난 느낌이었다.

퇴근 이후 시간에는 무기력하게 거의 외부활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집에서 쉬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날도 있고, 멍하게 하루를 그냥 보내는 날도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책 들고 카페 가는 횟수도 줄고, 약속이 줄어들게 되면서 누군가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관계도 정리되어갔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연락 횟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그냥 서로에 대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쭉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은 연락이 닿아지고, 가끔이라도 안부를 묻곤 하지만

자주 만났더라도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게 되니 자연스럽게 연락도 뜸해지는 사람들도 생겼다.


한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내가 너무 변했다고 했다.

월말이나 월초에 한 달 잘 보냈는지, 잘 보내라는 안부 연락을 항상 먼저 해주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연락을 나에게 받지 못했다며. 자신이 먼저 연락해야 그때서야 연락이 닿는다고.

그 연락을 받고 '아 맞다 내가 그랬었지. 책을 읽다 좋은 문구가 있으면 문구도 소개해주고 그럴 때도 있었지.'

'또 다른 나' 만나기 전에 '이전의 나'는 그런 모습도 가진 사람이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또 다른 나' 에게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던 것 같다.

그냥 그게 나의 일상이었으니깐.

코로나 19가 오기 이전부터 난 사람들과 외부활동들과 사회적 거리를 잘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집-회사 생활을 반복하는 것이 그리 답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익숙해져 버리니깐 약속을 잡고 하는 일이 하나의 일이 된 느낌이 들었다.

서로 약속을 정하고, 만날 장소를 정하는 것이 아주 큰일이 되어버린 느낌.

그렇게 생각해보니 거의 반년 이상을 난 이 생활이 나의 일상이듯 그렇게 지내왔었다.

'또 다른 나' 되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얼마 전부터 무기력 아닌 무기력증이 조금씩 풀려나며 , '또 다른 나'에서 '이전의 나' 조금씩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거의 두 달 만에 퇴근하는 길에 동료와 함께 저녁을 먹었고,

헤어 관리를 위해 정기권을 끊었다. 그리고 거의 반년만에 온라인상이었지만 옷들을 구입했다.

저게 뭐 별일이냐 하겠지만 나에겐 큰 변화임을 친한 동생은 알아차렸다. 요즘 들어 나에게 계속 뭐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 미용실도 좀 가고 바람도 좀 쐬러 다니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엄청했었기 때문에.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경치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싶고, 드라이브도 가고 싶다.

그동안 온라인 친구였던 지인들과 함께.


나 스스로 사회적 거리를 오래 유지한 채 그렇게 몇 개월을 지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 마음의 거리를 줄이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하면서 활력을 되찾아야겠다.

아깝게 나의 시간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도록.


'또 다른 나'로서 생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이전의 나'의 삶이 훨씬 생동감이 더 있었으니깐.

그렇게 난 조금씩 시작하려고 한다.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익숙해진 '또 다른 나'로 인해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수도 있겠지만.

오랜만에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낸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고, 일상을 공유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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