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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여자 May 27. 2020

엄마에겐 30년처럼 느껴졌을 30분

-우리는 상상도 못할 그 마음-



맞벌이를 하는 언니네로 인해 부모님이 조카 두 녀석 양육을 도와주고 있어 평일에는 우리 집에서, 주말에는 언니 집에서 조카들이 지내고 있다. 어제는 유치원 등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서 보내는 날이었다. 이번 학기부터는 둘째도 첫째가 다니는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등원을 하면 언니네서 생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계속 미뤄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 두 녀석을 데리고 엄마가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첫째는 할머니 손을 잡고 잘 가고 있었는데 둘째는 어제 따라 에너지가 더 넘쳐났단다. 평소에는 혼자 앞에서 조금 뛰어가는 일이 있어도 거리를 멀리 두지 않는데 어제 따라 불러도 뒤를 돌아보고 하면서 서지 않고 계속 뛰었단다. 그러더니 골목 끝자락에서 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조카 녀석이 사라지고 말았다. 


골목을 나오면 집을 100m도 남겨두지 않은 상태라 집 앞 작은 신호등 앞이나 경비실에 있을 줄 알았단다. 근데 웬걸 경비실에도 없고 경비실에 있던 이모님들도 둘째를 못 봤다고 했단다. 그때부터 엄마는 멘붕상태. 아빠부터 다행히 근처에 있던 형부까지 다 급하게 달려와 그 주변을 찾고, 언니는 일을 하다 말다 소식을 듣고 택시 타고 집으로 오고 난리가 났었단다.


골목 입구에 위치한 회사의 CCTV가 골목을 비추고 있는 걸 보고 엄마는 무작정 그곳에 들어가 상황을 설명하고, 어느 방향으로 꺾었는지만 확인하고자 CCTV를 볼 수 없냐고 했다고 한다. 그 직원분이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없는 엄마에게 신고부터 먼저 하라고 하며, CCTV는 경찰 입회하에 볼 수 있기 때문에 보여줄 순 없지만 엄마를 안정시켜주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한다. 급하게 신고를 하고, 5분 정도가 흘러 다행히 인근 지구대에서 조카 녀석을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형부가 가서 조카를 데려왔단다.




모든 상황을 정리해보니 조카 녀석이 골목에서 나와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뛰다가 우회전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곤 골목에서 나와 200m가량을 혼자 뛰어갔던 것 같다. 5살 꼬마 녀석이 울고 있으니 다행히 지나가는 남자분이 지구대에 연락을 해서 경찰차로 태워 지구대로 데려왔다고 했다.


5살 꼬마 녀석이 울면서도 유치원 이름과 반을 알고 있어 그걸 통해 유치원에도 연락이 닿아 신원이 확인되고

신고를 한 게 확인되어 다행히 바로 연락이 닿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아 방지 목걸이는 세척 때문에 빼고 있는 상태였고, 엄마 번호를 외우고 있었지만 당황해서 말을 못 했고 여러모로 일이 생기려니 그렇게 돼버린 듯하다. 형부가 지구대로 들어서니 경찰 아저씨가 사준 젤리를 먹다 말다 아빠 얼굴을 보고 대성통곡을 했단다.


나는 상황이 모두 수습된 다음 이 30분간의 스토리를 들었다.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엄마는 얼마나 놀랬을까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그 순간 조카 녀석도 조카 녀석이지만 엄마 걱정이 가장 먼저 되었다. 거의 6년을 그렇게 손주들을 키워줬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봐 그 누구보다도 마음 졸였을 엄마 모습이 그려졌다. 모두가 놀라고 정신이 없었겠지만 엄마만 했을까 싶다. 물론 조카 녀석도 무서웠겠지만.


저녁이 되어 자세한 설명을 엄마에게 다시 들었는데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는지 울먹이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상황이 어땠을지,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듯했다. 자식들 키울 때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손주 녀석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누가 데려가지 않았는지, 차에 부딪친 건 아닌지 그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고, 온몸은 떨리고 눈물만 계속 나고 모두가 내 탓만 같았다고 한다. 그 순간 얼마나 또 자책을 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정말 아이들은 순간적으로,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고, 뛰쳐나가는 것 같다. 항상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일이 그렇게 되려니 이렇게 벌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금방 조카 녀석을 찾아서 다행이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찔하고 까마득한 30분의 시간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그렇게 지나갔다. 엄마에겐 30년같이 느껴졌을 30분이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얼마나 힘든 하루였을지, 얼마나 안도하는 날이었을지 만감 교차했을 것이다. 우리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근데 엄마 탓이 아니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좋겠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 순간적으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라는 것을.  


황혼육아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본인들 탓이 아니에요. 엄마랑 있다가도 일어날 수 있고, 이모랑도 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P.S 일하다 말다 엄마가 안정될 수 있게 도와준 직원분, 울고 있는 꼬마 녀석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신고를 해준 남성분, 대성통곡하는 녀석을 위해 젤리를 사주고 안전하게 보호해준 경찰관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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