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의 소개팅이라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지금까지 한 소개팅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기억의 한 페이지를 꺼내보려 한다.
소개팅남 : 직업군인, 운전 초보, 회를 아주 좋아함.
직업군인이었던 분과 소개팅 일정이 잡혔다. 이 직업군인님은 이하 S님이라 하겠다. 만나는 날 약속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에 가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차가 막혀 조금 늦을 거라는 연락. 주말 저녁이고 번화가라 차가 막힐 걸 알기 때문에 천천히 오라고 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이제는 오겠지. 이제는 오겠지' 하고 있는데 30분이 지나도 그 S님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나려 했지만 주선자 입장을 생각해 참고 또 참았다. 평소라면 금방인 시간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면 유독 시간이 안가는 느낌이다.
그 S님은 무려 40분이 지나서야 눈앞에 나타났다. 멀리서도 '나 군인이에요'라는 포스로 말이다. 소개팅 만남에서 이렇게 늦게 나타난 분은 지금까지도 이 S님이 유일하다.
뭐 어찌 됐던 만남을 했으니 무엇을 할지 정해야 했다. 그분이 바닷가 쪽으로 이동을 하자고 해서 그러자 했다.
이 S님은 얼마 전에 새 차를 구입한 운전 초보였다. 그 당시 나는 업무상 운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운전도 하고 있는 상태였고, 도로 지리를 다른 여자분들보다 아주 쪼금 더 잘 아는 편이었다. 주말이라 도로에는 차도 많고, 막히고 있는 상태. 거기다 그분은 길도 잘 모르는 상태. 어쩌겠는가.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어 길을 설명하는 수밖에.
'여기서 오른쪽으로 한 차선 이동해야 해요.'
'직진하다가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하셔야 해요.'
라고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운전이 미숙한 분들은 내 마음대로 차선을 이동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덧붙여 좌우를 다 살핀 후 '지금 이동하시면 돼요.' 차선 이동까지 봐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맘 같아선 내가 운전대를 잡고 싶었지만 또 초면에 그리할 순 없지 않겠는가. 바닷가까지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역할을 다했다.
왜 이 S님이 무려 40분을 늦었는지 차에 탑승을 하면서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속으로 이 S님은 본인의 운전실력을 알고도 왜 굳이 바닷가를 가자했을까 싶었다.
바닷가를 가자는 그 이유는 바닷가에 도착해서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싸한 느낌 '설마 아니지 설마 그러겠어' 라며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바로~~~~60초 후에^^
주차 후 이 S님 뜬금없이 대학시절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말 뜬금없이 대학생 때 친구들이랑 회 센터에 가서 회를 먹었는데 그때를 잊을 수 없다고. 다시 가보고 싶었다고.
여기서 말하는 회센터라 함은 1층에 생선 등 각종 해산물을 여러 가게들에서 팔고 있고, 2층부터는 1층에서 산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초장을 비롯한 상차림을 해주는 여러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말 그대로 그곳은 도떼기시장~그 이야기를 여기서 왜 하는 거죠? 설마 거기를 가자는 건 아니죠?
'설마가 역시나'가 돼버렸다. 그 그 그 도떼기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신나서 옛 추억을 이야기하는 이 S님, 처음부터 여기에 가고자 마음먹고 온 S님에게 싫다 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1층에 발을 들이자마자 여기저기서 손님들을 붙잡으려는 가게 사장님들의 외침이 들린다.
'이쪽으로 와요 싸게 많이 줄게요.' '서비스 많이 줄게요.' 등등 외침과 함께 바닥은 물로 흥건, 물도 여기저기서 튀기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저 가게였던 것 같다' 하며 한 곳을 정해 S님이 걸어간다. 그러고는 생선을 고른다. 뭐 어쩌겠어요 여기까지 왔으니~ 보통은 회를 준비해서 위층 식당으로 올려주기 때문에 주문만 하고 올라간다. 근데 그 S님은 여기서 결정적인 한방을 날렸다.
'회를 중간에 빼돌릴 수 있기 때문에 회 치는 것을 다 보고 가야 해요.'
'그렇게 못 믿을 거면서 여기는 왜 오자 했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색하게 이모님이 회를 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은 바지랑 신발에 어찌나 튀던지.
우여곡절 속에 상차림을 해주는 가게로 입성. 근데 정말 여기도 가관이더라. 뒷 테이블에서는 단체회식을 오셔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고, 회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았는데 서로의 목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고. 그 S님은 뭐가 그리 맛있는지 계속 쌈을 사 먹고. 난 빨리 먹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 나 혼자 이 방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소개팅 처음 만남을 회센터에서 할 줄이야.
이 S님은 두고두고 최악의 소개팅남으로 회자되었다.
시끄러운 상황에서 어렵게 대화를 하며, 회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는 식사가 끝나고 이제 자리를 옮겨야 할 타이밍. 나오는데 정점을 찍는다. 이 S님..
식당 입구에 있는 커피 자판기를 보며 ‘커피도 무료로 마실수 있어 좋죠’ 하며 커피를 뽑고 있었다. 아~
이 S님.. 말릴 틈도 없이 벌써 자판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으악~어련하시겠어요.' 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 그냥 커피를 권하는 S님에게 '괜찮습니다.' 했다.
S님 나오면서 '자판기 커피 뽑고, 커피도 마셨으니 카페 가기는 그렇다 그죠'. 한다.
'네 님이 자판기 커피를 뽑아서 그렇잖아요'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말할 순 없지. 암 초면에 그럴 순 없지. 그러니 그냥 '네 그렇네요' 할 뿐.
그러곤 바닷가를 걷자고 해서 바닷가를 걷는다. 바닷가를 걷기에는 조금 추웠던 기억이 난다. 이 추운 날에 하염없이 바닷가를 걷다니요. 더 이상 의미 없이 계속 걷기만 할 수 없기에 이제 그만 가자고 말해서 이 자리를 마무리 지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회센터 회 싱싱하고, 양도 푸짐하고 좋지 왜 안 좋겠는가.
근데 말이다. 소개팅으로 만나 두 번째 세 번째 만남도 아니고 첫 만남을 회센터 가는 건 쫌.
물론 그때는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벌써 거기로 가려고 맘먹고 온 그 님 면전에 대고 '이건 아니잖아요' 할 순 없었다. 그때는 나름 어리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이 정도 상황을 기분 나쁘지 않게 넘기거나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갈 수 도 있겠지만 그땐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건 아니잖아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