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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 화분이 뭐라고

- 다시 돌아온 자기반성의 시간-

by 까칠한 여자


퇴근길에 보통 엄마를 태워오는 편이다. 먼 거리가 아니라 차 타고 가면 금방인데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서 내려 걷고 하면 시간이 배가 걸려 웬만하면 기다렸다가 같이 귀가를 하는 편이다. 며칠 전 엄마 친구분이 이사를 간다고 마음에 드는 화분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해서 집 가는 길에 잠시 들러 화분을 실어오기로 했다.


친구분 집 쪽이 주택가라 차를 마땅히 댈 만한 곳이 없었다. 먼저 엄마가 내려 가지러 간 사이 좀 멀찍이 한 빌라 앞에 깜빡이를 켜고 잠시 대기했다. 가져온 화분의 실는데 무게에 당황했다. 화분을 한 5개 정도를 가져갈 거라 했는데 이 속도로 엄마가 하나씩 옮기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여 두 번째는 같이 가지러 갔다. 무릎도 안 좋다면서 집 앞 계단도 있는데 이 무거운 걸 어찌 들고 내렸는지 싶었다. 내가 보기엔 예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무거운 화분을 굳이 왜 가져가야 하는지 순간 짜증이 났다. 빡-

차라도 주차장에 넣었으면 마음이 좀 여유로웠을 텐데 차를 남의 빌라 입구에 세워놓은 터라 마음이 급했다. 이게 예쁜지 저게 예쁜지 묻는 말에 그냥 아무것이나 가져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그냥 세 개만 들고 가자고 하며, 화분 하나를 들고 와버렸다. 화분이 작지 않았기 때문에 차에 싣는 것도 쉽지 않았고, 생각보다 공간도 많이 차지했다. 물론 더 실으려면 실을 순 있었겠지만 그냥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주택가 밖에 있던 화분이라 개미 등 벌레들도 많을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차에 싣는 과정에서 흙과 잎들이 떨어져 뒷좌석도 엉망이 돼버린 상태였다.

근데 돌아오는 길부터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다. 차를 빼 달라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기다릴 수도 있는 것이고, 이왕 온 김에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고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난 왜 그 순간 짜증을 냈는지 싶었다.

집으로 와 늦은 저녁을 간단히 먹고, 씻고 나왔는데 엄마가 없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나 했는데 차 뒷 자석을 치우고 올라온 것이었다. 내일 내가 치운다고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내려가서 치우고 온 것이었다. 땀을 흘리며 집 안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니 아까 짜증 낸 못난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더해졌다.

진짜 어려운 일도 아니고, 5~10분 더 여유를 가졌으면 되었을 단순한 것인데 난 왜 순간 짜증을 냈는지 싶어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이렇게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을 조금만 참았으면 됐는데 가족이라 이유로 더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게 되는 것 같다.




화분 사건 전날 동상이몽에 이지혜 님이 결혼식을 하지 못한 부모님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봤었다. 젊을 적 사진들을 전시해뒀는데 부모님에게도 저런 꿈같은 시절이 있었지 하며 부모님들의 젊은 날을 돌아보는 장면을 보는데 나도 같이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 모두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고,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을 테니깐. 한 번씩 옛날 앨범을 보면 한창 꾸미고, 멋을 낸 부모님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허리까지 기른 엄마의 긴 머리를 본 적도 없고, 장난기 가득한 학창 시절 속 아빠의 모습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보며 우리 부모님의 젊은 시절도 회상하며, 더 잘해야지 마음먹었는데 그 마음을 먹은 것이 무색할 만큼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낸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정작 우리 집 복지는 뒷전입니다.' 편에서도 반성을 했는데 또 자기반성의 시간이 다가왔다. 정작 우리 집 복지에는 뒷전인 나를 반성하며, 타인의 복지를 위하는 마음으로 우리 집 복지를 위해야지 또 다짐을 했건만 또 도루묵이 되었다. 애써 잘하고자 하지도 말고 그냥 사소한 것에 짜증 내지 말자. 물론 하루도 못가 짜증을 내고 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매일매일 저렇게 마음만이라도 먹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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