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게 느껴진다. 서울에 비하면 기온이 크게 낮은 편은 아니지만 잿빛 하늘이 세네 달 이상 지속되고 비 소식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춘분이 훨씬 지난 후에 함박눈이 내리거나 후드득 꽤나 몸집이 큰 우박이 떨어지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베를린의 겨울 날씨 탓에 많은 이들이 잠시 도시를 떠나고 싶어 (실제로 떠나기도) 한다.
이처럼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소 갑작스럽게 봄이 찾아오는데 그렇게 찾아오는 베를린의 봄은 무척이나 눈부시다. 면적의 삼 분의 일 정도가 녹지인 이 도시에는 오십 종류 이상의 나무들이 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베를린이 참 푸른 도시였지’ 하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인 가치이지만 오월의 어느 청명한 날 호숫가에 위치한 비어가든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다 보면 감히 이 도시의 봄이 어떻게 절대적으로 아름다운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진귀한 시간을 오롯이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나의 남자친구는 가엾게도 이 집단에 속하는데 다름 아닌 꽃가루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베를린에 오고 나서야 본인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의 경우 아주 정도가 심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미친다. 재채기와 같은 일반적인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이내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느껴져 사고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는 아주 지독한 수준의 알레르기이다. 이 때문에 매달 주사를 맞는 알레르기 면역 테라피도 받아보았지만 오히려 더 심각한 부작용으로 그의 면역 체계를 뒤집어 놓았을 뿐이다.
그는 꽃나무에 싹이 돋아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면 매우 곤란해하며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시킬 의약품을 비축하러 약국으로 향한다. 엣취 - 재채기 소리, 칙칙 - 코 알레르기 스프레이를 뿌리는 소리, 똑똑 - 알러지성 점안액을 넣는 소리, 꿀꺽 - 항히스타민제를 삼키는 소리, 이와 같은 소리들이 하루에 몇 차례씩 들려오기 시작하면 온몸으로 봄을 느끼고 있는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용감하게 피크닉에 도전한 어느 봄날. 곧 그의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고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던 우리는 근처에 사는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
2021년 3월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그는 매일 아침 항히스타민제를 삼키며 그저 본인의 운명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올해는 조금 부끄럽겠지만 밖에 나갈 때 수경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등의 제안을 했고 그는 '과거에 한 번 시도해 봤는데 너무 수치스러워서 바로 벗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혹시 동양의학에는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다양하게 검색을 해보기도 했지만 딱히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물질이 올해는 또 얼마나 그를 괴롭힐지 하는 생각에 상심만 커져가는 중이었다.
- 그런데 우리 베를린에 꼭 있을 필요가 있나?
가만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그가 내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애매하게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말인즉슨 어차피 우리 둘 다 코로나로 인해 일 년째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고 두 회사 모두 우리가 유럽 내에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해도 상관이 없는 조건이니 베를린을 탈출하자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덧붙였다.
-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베를린에서는 꽃가루의 공격을 피할 수 없잖아. 그렇다면 꽃가루가 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자는 거지.
무척이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안 그래도 매번 연장되는 베를린시의 코로나 방역규제로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또한 코로나가 가져다준 일말의 장점이 있다면 바로 재택근무라고 생각해 오던 터이기에 '드디어 나도 디지털 노매드가 되어 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조금 흥분되기 시작했다. 월세를 두 배로 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스멀스멀 밀려들려고 하자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지중해 바닷가에 누워 아페롤 스프리츠를 마시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 그래, 좋아. 근데 어디로?
몇 가지 조건을 세웠다. 당연한 것은 역시 꽃나무가 없는 메마른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었고 그 외에는 베를린과 시차가 많이 나지 않으며 인터넷 환경이 잘 되어 있어 일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모로코가 물망에 올랐다. 강력한 주황빛의 이국적 풍경이 떠오르는 모로코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왠지 설렜지만 음주를 꽤나 즐기는 우리 커플에게 장기 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목적지였다. 다음으로는 카나리아 제도의 섬들이 언급되었다. 나의 녹슬어 가는 스페인어를 써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란자로테나 푸에르테벤투라 등의 섬을 눈여겨보는 중이었다.
그는 갑자기 무릎을 탁 치더니 구글맵에 내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베를린을 손가락으로 콕 찍더니 일직선으로 주욱 내려갔다. 이탈리아도 지나치더니 어느 지점에서 그는 손을 멈췄다. 구글 맵을 웬만큼 확대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섬, 바로 몰타였다. 베를린과 거의 같은 경도에 위치하기에 시차도 전혀 없고 척박한 땅으로 이루어진 섬이기에 꽃가루 공격의 위험도 없었다. 친구나 지인이 있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조건도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몰타행이 진행되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 보았고 에어비엔비에서 처음으로 한 달이라는 기간의 장기 숙박을 예약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이제 막 초록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베를린을 뒤로하고 몰타로 날아갔다. 일 년 내내 따사로운 햇빛이 비추는 곳, 인구수만큼이나 자동차가 많은 곳, 영어와 몰타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그 작은 섬에서 장장 세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If you can't beat the pollen, then leave far away to the ocean. Where the trees can't reach you.
-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