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그리움

by 랑봄

누군가의 그리움



2022년 얕은 찬 바람이 코 끝을 스치는 11월,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들었다.

“16시 18분 운명하셨습니다.”

누군가와의 이별을 짧게 글로 남겨보려 한다.


2000년 4월 27일 , 응애거리며 생명이 태어났다.

작디작은 한 아이를 쥐면 부서질라, 바람 불면 날아갈까 말 그대로 금이야 옥이야 대했다.

동네 구석구석 유모차에 태워 “우리 희야” 하며 자랑하기에 바쁜 한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아직 말도 못 하는 한 아이의 존재 자체가

가장 큰 사랑임을 느꼈을 사람이었다.

그 당시 지역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던 유치원의 추첨 날,

아이 손을 잡고 당당히 순번 1등을 뽑은 날,

한 동네,한 아파트에 살다

차로 1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로 이사 가는 날,

누군가 보면 멀리 떠나는 줄 알 정도로 그 사람은 “이제 매일 우리 희야 못 봐서 어떡해.” 라며 펑펑 울며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였다.

“이리 와 봐라. 우리 희야 안아 보자” 하는 말에 아이는 달려가 안기기 직전 “이상한 냄새나. 담배 냄새 싫어” 라고 했고, 그 말 한마디에 몇십 년 태우던 담배마저 한순간에 끊을 정도로그는 정말 대단한 사랑을 하였다.

그 사람에게는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내가 우리 희야 유치원 졸업하는 건 보고 가려나”

“내가 우리 희야 초등학교 입학,졸업 하는 건 보고 가려나”

“내가 우리 희야 결혼하는 건 보고 가려나 ”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습관처럼 나오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작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전처럼 그에게 쉽게 다가가진 못했다.

속된 말로 대가리 좀 컸다고 가족보다 친구가 더 좋은 아이였다.

그래도 받는 사랑은 여전했기에 생신 때는 한두 푼 용돈을 모아

지하상가에 가 지갑을 구매하여 선물로 드렸다.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중학생이 될 무렵, 새로운 시작이라는 두근거림을 가지고

교복을 맞추며 학생증에 쓰일 증명사진을 찍어

그에게 한 장을 건넸다.

그는 사진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짓고는 지갑 안에 고이 넣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된 아이는

사춘기로 방황을 하며 누가 봐도 좋지 않은 길을 걸었다.

초등학생 땐 그저 친구가 좋았다면

중학생이 된 아이는 친구를 세상의 전부로 알고 있었으니

그의 사랑을 어쩌면 모른 체 했던 걸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는 그에게서 흔한 잔소리 한 번 들은 적 없이 여전한 사랑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조금의 철이 들어 꿈을 찾아가던 중

이른 나이에 새새명을 맞이했다.

그는 말은 안 했지만 분명 걱정도 있었을 거다.

그저 서로만 믿고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가진 아이였으니.

그래도 그는 사랑으로 아이를 믿어주었고

아이는 그에 보답하듯 열심히 가정을 꾸려 냈다.

그렇게 사랑 받던 아이는 받은 사랑을 내려 줄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가 금이야 옥이야 하던 아이가 낳은 더 작은 아이들이기에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더 한 사랑을 주었다.

아이는 엄마란 새로운 직업과 호칭을 얻어 살림을 꾸려 나가다 보니

그전처럼 그를 자주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는 말없이 자리를 지켜주었다.

만나면 전과 다른 티 나지 않는 사랑을 주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평소와 같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살갑지 않던 아이는 평소와 달리 그날따라 유독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부끄러움에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직도 아이는 그날을 후회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