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주 정도 지났을까?
2022년 10월, 또 다른 가족에게 전화가 왔다.
얼마 전 밤에 호흡이 가빠지며 쓰러졌다는 전화였다.
아이에게 대가 없는 무한한 사랑을 주던 사람이 쓰러졌다.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급히 면회 예약을 잡고 달려갔다.
그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평소 보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말랐던 그의 몸이 수액으로 인해 퉁퉁 부어 있었고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잡고 물으니 자가 호흡이 불가하고
깨어나긴 어려울 거 같단 대답이 돌아왔다.
한평생 신을 믿지 않았지만 그날은 세상 모든 신을 다 불렀던 거 같다.
“제발 깨어만 나게 해 주세요”
“제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신이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내가 간절하지 않았을까?
그날 이후 그저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바란 날이 일주일 정도 흘렀을까
받기 두려운 전화가 걸려 왔다.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많이 안 좋다고. 오늘, 아니 당장 몇 시간도 넘기기 힘들 거 같다고.
정말 아니길 바랐다.
오진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미친 듯이 달려갔다.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정신없이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와 함께 온 가족들이 곁에 있었다.
“2022년 11월 16일 16시 18분 김상문님 운명하셨습니다.” 임종 선언이었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 중
다리 풀리며 주저앉는 모습은 과장된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내 모든 게 무너진 느낌이었다. 내 전부가 무너졌다.
사람이 심정지가 와도 몇 초간 청력은 남아 있다고,
마지막으로 할 말을 전해야 한다는 글을 어렴풋이 본 기억이 있다.
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헤어짐을 겪는다면 그게 어렵다.
그저 아직은 따스한 손을 잡으며 울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흰 천으로 덮어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도왔다,
내가 해야 할 일 같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병원에서 장례식장까지 가는 길,
빈소가 마련되고 상복으로 갈아입는데 아무런 감정이 안 들었다.
안 들었다기보단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았다.
부고문에 가족들 이름과 할아버지의 사진이 올라왔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얼마 전만 해도 정정하게 서 계시며 인사했는데.
그날 마음 가는 대로 안아드릴 걸’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장례 첫날은 멍하니 조문객을 맞이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염을 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남인 아빠가 할아버지 머리를 받쳤다.
지도사가 머리부터 눈썹 수염 정돈을 해 주며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고, 손 한 번씩 잡아주세요”
그렇게 잡은 손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내 기억 속 할아버지 손은 너무 따듯했는데 거짓말 같았다.
수의를 입히고 그 품에 편지를 넣어 드렸다.
손녀가 무뚝뚝해 죄송하다고,
할아버지가 내 할아버지라 너무 감사했다고,
할아버지가 나에게 준 사랑은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하늘에서도 손녀 잘 사는지 지켜봐 달라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문 같은 느낌의 편지였다.
마지막 인사를 다 하니 지도사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옷매무새를 정돈하더니 하얀 줄로 몸을 묶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할아버지가 다시 깨어 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세게 묶는 거지' 싶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묶은 끈들을 풀고 싶었다. 믿고 싶지도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관이 닫히고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입고 있던 병원복을 받았다. 그 옷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일분일초가 지옥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남은 하루도 보내고
장지로 가는 날,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살 거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화장장으로 가는 길에 서 있었다면 쓰러질 거 같았다.
운구차가 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앞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랑 마지막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니 원 없이 울고 싶었다.
화장장에 도착하니 다른 유가족들 우는 소리와
분위기와 공기가 숨 막히게 했다.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관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화장 시작한다는 글과 함께 이름이 올라갔다.
그렇게 뜨거운 곳으로 할아버지가 들어갔다.
절망스럽단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 같던 아빠가 소리치며 울었다
“아버지 아버지” 다른 말없이 아버지란 단어만 불렀다.
그 단어 속에 모든 감정이 다 들어 있었다.
강해 보여도 여린 엄마는 숨죽여 울었다.
나보다 더 많은 날들을 할아버지를 봐 왔을 테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엄마도 안다, 할아버지가 엄마도 참 좋아했던 것을.
오전 8시 38분에 시작하여 오전 10시 30분에 화장이 끝났다.
나는 두 시간가량 할아버지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떠나기가 싫었다.
할아버지가 외로울 거 같아서, 혼자 무서울까 봐.
화장이 끝나니 한 줌이 됐다.
어린 시절 나를 이끌어 준 사람이 이젠 내 품에 안기고도 남을 정도가 됐다.
겨울엔 따스한 빛 들어오고 여름엔 어느 정도 바람도 들어오는 곳에
할아버지를 모셨다.
‘정말 이젠 할아버지를 볼 수 없구나’
‘할아버지가 불러주는 희야도 들을 수 없구나’
그렇게 장례는 마무리됐다.
얼마 뒤 할아버지 집에 방문하여 방에 서랍이 있어 열어 봤다.
혹여나 내가 할아버지를 추억할 물건이 있을까 하여.
그 안에 내가 초등학생 때 사 드린 지갑이 있었다.
가족들에게 들어보니 내가 사드린 이후로 선물이 들어와도 이게 좋다며 바꾸지 않았다 한다.
지갑에는 내가 중학교 입학 때 찍은 증명사진과 증손자들의 사진이 있었다. 지갑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내 상상 이상으로 할아버지는 날 사랑했었구나. 있을 때 잘하란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2024년 5월 12일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속 마음 한 편에
할아버지의 습관처럼 하는 말이 남아 있었다.
“내가 우리 희야 결혼하는 건 보고 가려나”
이상하리만큼 죄책감이 들었다.
실제로 봤다면 누구보다 좋아하시며 “벌써 이만큼 컸구나” 하며 흐뭇해하셨을 텐데.
나는 부케를 준비하며 자그마한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며 부탁했다.
꽃들 사이에 할아버지 사진을 넣어 작게나마 메모를 했다.
‘할아버지 시기만 기다리다 늦게 올려 죄송해요, 이렇게라도 지켜봐 주세요’
그 꽃다발을 제일 앞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래서 그런지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따듯하게 식을 올렸다.
그렇게 하루, 한 달, 일 년, 이년 시간이 흘렀다.
소중한 누군가와의 첫 이별이라 그런 건지, 아님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몰라서인지
아직 그 이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지만 서툴러도 묵묵히 이겨내는 중이다.
그래도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계기로 세상을 살아가며 보고 싶고 , 보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매일 찾아갈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얼굴을 보며 같이 대화를 하고 웃을 수 있는 날들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자 행복인 것을 깨달으며 한 아이에게 대가 없는 무한한 사랑을 준 그 덕에
서툴지만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 손녀가 쓰는 편지
할아버지 오랜만에 쓰는 편지네.
며칠 지나면 벌써 3주기야. 아직도 나는 할아버지 생각만 해도 눈물 나고 닮은 사람을 봐도 울컥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 눈물이 나네, 할아버지가 나에게 준 사랑에 비해 내가 드린 건 없는 거 같아서 미련이 남은 걸까 싶기도 해.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운 거 같아
한 번쯤은 할아버지와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겨 써 봤어.
내 마음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게
사실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글을 쓰는 법을 배우지 못해 부족한 글 솜씨로
표현하는 게 한계가 있을 거 같았어
그래도 할아버지 보러 갈 때마다 썼던 편지들이 도움이 됐는지 참 사람 일은 모른다 그렇지?
모든 일을 섬세하게 다 적을 순 없지만 할아버지가 날 사랑한 마음만으로도 쓰기 충분하네
손녀가 살갑지 않다 보니 매번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해.
돌아가신 뒤로 꿈에 딱 한번 나와주고 그 뒤로는 영 보여주질 않으니 섭섭하기도 한데 그게 좋다네, 나오면 내가 또 울까 봐 그러는 건지.. 많이 보고 싶네. 유독 할아버지 근무했던 곳으로 이사 오니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아직 곁에 계셨다면 좋아하셨을 텐데 싶기도 해.
증손자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손주사위야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잘하고 있어
근데 첫째는 왕할아버지 기억이 있는데
둘째는 아무래도 어릴 때니 기억이 안 나나 봐.
그래도 왕할아버지 생각하는 마음은 한결같아.
내가 조금만 힘들거나 지쳐 보이면
먼저 “엄마 왕할아버지 뵈러 갈까?”라며 묻기도 해,
애들이 내가 힘들고 지칠 때 할아버지한테 기대는 걸 이제 아는 눈치야,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시간이 흐르듯 내 마음도 조금은 괜찮아지겠지? 얼마 전에만 해도 무척 더웠는데 이제는 날이 추워지네, 더위만큼 추위도 많이 타는 할아버지여서 손녀가 걱정이 많아 그래도 늘 젠틀하던 할아버지였으니까
올 겨울도 따듯하게 계셔요.
할아버지, 늘 드리는 말이지만
내 할아버지라 정말 고맙고 감사해
2025.10.29 손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