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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Mar 13. 2024

우리의 아픔에 대한 모든 설명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88일 차, 20200613

고통을 잘 참는다. 혹은 엄살이 심하다.

나는 절대 너인 적이 없고 너는 절대 나인적이 없건만,

우리는 고통의 인내에서도 왜 끊임없이 자기의 잣대로 서로를 판단하는가.

그리고 왜 자기의 기대치에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고등학생 때부터 고질적으로 허리가 좋지 않았다.

정형외과도 몇 번 다니고 재활 치료도 제법 받아왔지만 좋지 않은 자세 때문에 허리가 좋아질 법하다가도 방심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통증이 느껴진다.

보통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가 불편해지는데, 약 1주 전부터 허리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딱히 오래 앉아 있던 것도 아닌데.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피고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왼쪽 허리춤이 이상하다.

예전에 느끼던 통증과는 사뭇 다른 통증이 느껴지는데 낯선 통증이기에 두려움부터 든다.

혹시나 점점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주변에 허리로 수술한 친구들이 있는데 나도 곧 수술해야 하나. 평생 앉고 갈 통증인가 등등.


나에게는 낯설었던 통증이 엄살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이 정도의 통증을 누군가는 그냥 쉽게 넘어가는지 아니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없다.

바늘에 손 끝이 찔린다고 내가 느끼는 아픔만큼 너도 아픔을 느낄까.

사람이 만들어놓은 통증 지수. 아픔의 정도를 객관적 수치화 한 그 자료들이 우리의 아픔에 대한 모든 설명인 것인가.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한때 유행했던 드라마의 대사다.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상대방의 아픔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때가 있었다.

아! 하고 아프다고 소리치는 아이의 마음을 난 잘 모르지만, 아마도 엄마의 품이 필요해서일 거다.

아프냐, 나는 졸라 아프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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