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릐 Feb 06. 2024

곧 사라질 스테이크 연기 같은 평온한 나날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60일 차, 20200516

5월 중순이 지나가는데 4월 중순보다 쌀쌀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재채기와 콧물이 계속 나오고 밤에 잘 때 난방을 켜지 않으면 추위에 떨면서 일어난다.

햇살이 밝고 따뜻하게 내리쬐는 날이라도 선선하게 가슴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음을 명백히 알려준다. 


내 몸이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예민해진 것인지, 

혹시나 문제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일 기후에 있는 것은 아닌지

5월이 넘어가도록 추위를 느끼는 내 모습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바쁘게 지낸 한 주의 토요일 아침, 온몸으로 불어낸 에어매트리스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일주일의 캠핑이라고 생각하고 에어매트리스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 지 3일 정도가 흘렀다. 

매일매일 피곤함에 져서 눈만 감으면 바로 잠이 들곤 하는데 얼마큼 깊이 자는지는 자고 일어난 상태를 보면 대략 파악이 된다. 

누적되는 피로를 비타민과 영양제로 죽여가면서 최근 며칠을 보냈는데, 

늦잠이 주어지는 토요일 아침은 언제나 소중하다.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해서 페인트 관련 제품을 몇 가지 사고, 

슈퍼마켓에 가서 주말 혹은 다음 주까지 먹을 식료품을 잔뜩 사 온다. 

언제 이럴 수 있겠냐는 듯이 먹고 싶은 것들, 마시고 싶은 것들을 잔뜩 골라서 장바구니에 채운다. 

오늘의 메뉴는 티본스테이크와 야채구이. 


어느 식당의 스테이크보다 맛있게 잘 익혀진 티본스테이크로 새로운 집에서 제대로 된 첫 만찬을 갖는다.

아직은 쌀쌀한 5월의 날씨가 믿기지 않는 만큼,

맛있는 음식과 음료가 함께하는, 지어져 가는 보금자리도 믿기지 않고,

곧 사라질 스테이크 연기 같은 평온한 나날들의 사라짐이 보이기에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것처럼 열심히 고기를 씹고 또 씹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험이 선사한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