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릐 Mar 08. 2024

빛이 들지 않는 방에는 언젠가 병이 서린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61일차, 20200517

창이 북서쪽으로 나있다.

북서향은 보통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야 할 위치가 아닌가.

그럼에도 방이 환하다. 북쪽에 창을 두고 있는데도.


한국에서 지내던 대치동 원룸이 생각난다.

조그마한 방에 위치도 좋고 창도 동쪽으로 나있는 방인데 왜인지 항상 어두웠다.

이유는 아마 가깝게 붙어 있는 주변 건물들과 낮은 층 수가 아니었나 싶다.

숨 막힐 듯 붙은 건물들. 창문 열면 옆 건물 창 안이 보일듯한 빼곡함에 빛이 들어올 여유는 없다.

한국 다세대 주택에 사는 많은 이들이 어둑어둑한 방 안에서 지내지 않을까.


고생고생해서 얻은 집인데 창이 북쪽으로 나있어도 방이 밝아서 참 다행이다.

낮에 방이 밝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중요한 요소이다.

햇빛은 치유하는 힘이 있다.

빛이 들지 않는 방에는 언젠가 병이 서린다. 몸에도 마음에도.


오늘도 날을 쌀쌀하지만 화창한 날이다.

주변 벼룩시장에서 혹시 챙길만한 물건이 있을까 하여 트람을 타고 나간다.

아쉽게도 벼룩시장은 열리지 않았다.

날씨가 화창하기에 천천히 집으로 걸어온다. 내리쬐는 햇살 받으며.

빛이 들지 않던 예전 방들이 떠오른다. 어두웠던 그곳에 필요했던 빛.

문명의 산물인 건물들에 쌓여 막혀있던 그 치유하는 빛.

결국 병들었던 내 마음. 그리고 이를 치유해 줄 빛을 마음껏 받아들이며,

아직도 밝은 새 집으로 들어간다. 그림자 등지고서.

매거진의 이전글 곧 사라질 스테이크 연기 같은 평온한 나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