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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Mar 08. 2024

미안해. 내 마음이 더 넓지 못해서.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62일차, 20200518

성격이 털털한 엄마와 세심한 아빠.

털털한 엄마의 말과 행동에 아빠는 종종 마음이 상하셨고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한 엄마는 항상 조심함에도 이따금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하셨다.

어린 내 눈에는 엄마가 조금 조심하고 아빠가 조금 양보하면 될 텐데 하는 쉬운 해결책이 보였지만

왜 이 쉬운 해결책을 어른들이 실천을 하지 못하나 하는 답답함이 컸다.


어릴 때부터 나는 아빠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외모도 성격도.

어머니가 내 곁에서 떠난 이후론 더욱이 아빠의 성격이 나에게 더욱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아빠만큼 섬세하진 않지만 조금 더 꼼꼼해졌고, 아빠만큼 청결해진 않지만 조금 더 청결해지고,

아빠만큼 철저하진 않지만 미리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고,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아빠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오늘은 여자친구와 쇼핑을 나왔다.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하는데, 무심코 던진 그녀의 말에 맞은 나의 마음에 연한 생채기가 생겼다.

기분이 살짝 상해서 대답도 퉁명스럽게 하고 조금 떨어져서 걷는데,

내가 왜 기분이 상했는지는 말하지 않고 그냥 말 안 해도 스스로 알아주기를,

그리고 스스로 사과해 주기를 바라고 가만히 있었다.


저런 말을 하면 내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작은 말에 토라지는 내 마음이 굉장히 꼴불견이었고,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상처받은 티 내지 않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표정이나 말투에서 이를 숨기지 못하는 스스로의 쿨하지 못함이 한심해 보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수그러들까 생각하며 매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내가 사실 아까 너의 말로 기분이 상했었는데 미안해. 내 마음이 더 넓지 못해서. 너도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라는 거 알아. 기분 상한 나의 모습으로 조마조마할 너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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