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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Mar 08. 2024

날씨가 주는 따스함보다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76일 차, 20200601

어제부터 날씨가 여름스럽게 바뀌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기온이 제법 따뜻하다.

봄 같지 않은 봄을 지나 이제 6월을 통해 여름으로 들어가는 것이 실감 난다.

언제까지 밤에 깔깔이를 입고 잤는데, 이제는 깔깔이 없이도 추위를 많이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 날씨가 반기는 휴일의 아침은 역시나 늦잠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베를린에 사는 친한 가족과 공원 피크닉을 가기로 했다.

새로 이사한 집 옆 5분 거리에 큰 공원이 있다. 공원에 들어서면 시야가 뻥 뚫리는 잔디밭이 펼쳐지고 그 옆에는 샛길을 따라 산책로가 나있다.

차도를 하나 건너가면 작은 언덕이 있는 공원으로 연결된다.

어제 산책을 통해 처음 가본 공원인데 집 주변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공원에 가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산다. 며칠 전 생일이었던 친한 형의 케이크를 사고,

공원에서 먹을 점심으로 터키 음식점에서 케밥을 골랐다. 음료는 유기농 무알코올 맥주로 샀다.

돗자리가 없기에 얼마 전에 빌린 에어매트리스를 피고 앉아 음식을 먹는다.

여유와 친밀함이 가득한 대화는 날씨가 주는 따스함보다 더 깊게 마음속을 어루만진다.


한국을 떠나 독일로 온 지 곧 3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이곳 생활에 적응하느라 한국의 삶이 별로 생각나지 않았지만,

이곳의 삶에 조금씩 적응할수록 한국의 삶과 이곳의 삶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서의 삶이 더 좋다고 느끼고 어떤 면은 이곳에서의 삶이 더 좋다고 느낀다.


강남에서 살면서 강남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 내 눈을 둘러싼 색상은 인공의 네온사인과 아스팔트와 시멘트 건물의 검회색이었다.

매일 시각적 공해, 청각적 공해에 시달려서 스스로의 삶을 한없이 한탄하던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서울 숲 같은 공원이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다는 것. 이곳에서 즐기는 이국적 음식과 음료들은 삶의 작은 요소이지만 나에게 위안을 주기엔 차고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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