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80일 차, 20200605
고기 핏 물을 빼고 육수를 내고 야채를 손질한다. 아직 주말은 아닌데 금요일 오후를 맞이하는 마음은 이미 주말의 시작이다.
매주 찾아오는 주말이지만 다가올 때마다 설레는 주말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 수 있을까, 새삼 부럽다.
아무런 외출 계획이 없는데, 꾸민 듯 안 꾸민 듯 옷도 갈아입고 머리도 만진다.
집을 청소하고 정리한다. 오늘은 소중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날이다. 이사한 공간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손님이다.
매주 마주하는 주말의 소중함,
처음 맞이하는 소중한 손님,
그리고 오늘 발아한 레몬 씨앗.
공통점 아무 없는 저 세 가지가 오늘을 만든다.
2주도 더 전에 심은 레몬 씨앗이 한참 동안 발아되지 않고 있기에 역시나 내 손은 똥손이구나 생각하며 나는 생명의 탄생 및 성장과 역시나 거리가 있음을 확인했다 생각했는데
정말 예상치 않은 시기에 예상치 못한 조그마한 새싹이 자기 줄기보다 수십 배는 더 두꺼운 흙을 들어 올리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그 어떤 세상의 밝은 소식보다 기쁨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내 법률업무의 대부분은 생명이 없는 것들을 다룬다. 문서들. 그리고 그 문서 뒤에 다루어지는 돈 문제들.
결국은 내 돈 너 돈 하며 싸우는 진흙탕 싸움을 그럴싸한 글자로 덮어 포장시켜 놓은 것이 법률문제다.
아무런 생명을 느끼지 못하는 업무 환경, 그리고 그런 일을 더욱 추구하며 경력 성장을 바라는 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경력 개발 방안들을 고민한다.
저 조그마한 레몬 새싹이 내뿜는 생명의 열기에 더해서
보잘것없는 이 공간에 찾아오는 소중한 손님들.
생명에 생명을 더해주는 그 사람들은 본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모른 채 주변에게 생명력을 뿜어낸다.
얼마 전에 있었던 복잡한 일들이, 생명의 탄생으로, 그리고 언제나 생명력을 전해주는 손님들의 방문으로 마음에서 정리가 되고
평안히 주말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이번 주말엔 마음 편히 쉬어야겠다. 이제 생명이 태어났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