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83일 차, 20200608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 중에 하나는 독일여름의 석양이다.
밤 10시가 지나도록 북쪽 하늘 끝이 밝은 빛을 품고 있는 것을 늦은 시간을 확인하며 볼 때마다 새롭고 경이롭다.
남쪽을 바라보면 어둡고, 북쪽을 바라보면 빛 기운이 남아있다.
저 북쪽 한 없이 따라가면 어두워지지 않는 밤이 있는,
해가 지지 않는 그 땅이 나올까.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지고,
빛이 비치는 시간이 길어졌다.
겨우내 짧았던 일조 시간을 생각하면 여름과 겨울에 각기 다른 공간이 되는 듯하다.
여전히 이따금 울렁이는 나의 생각과 감정은 사소한 물결에도 넘실거리고
일 년 동안 짧아지고 길어지는 낮의 길이처럼,
어떤 때는 밝은 빛이 오래 비추었다가 어떤 때는 지독히도 짧은 시간 빛이 내리기도 하는 이 독일땅은 한국에서 생각하지 못한 인간의 심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예술성은 지극히도 부족해 어떤 작품이나 전시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기 어려운 내가
오묘하게 색칠된 독일의 여름 석양빛은 몇 분, 몇십 분 동안도 계속 바라보며 정처 없는 사고를 이어나간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는 말만큼 진부한 해 질 녘 하늘을 좋아한다는 말.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 해 질 녘이 선사하는 오묘한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의 눈,
그리고 어떻게서든 내가 보는 저 빛을 담기 위해 핸드폰으로 혹은 카메라로 열심히 노을빛을 찍어내지만
애석하게도 기계는 사람의 눈만큼 빛을 담아내지 못하는 듯하고
결국 훗날 내 기억은 실제 내 눈이 본 빛이 아닌 그날을 추억하며 바라본 사진의 빛을 담아둔다.
본래 빛 보다 못한 기계에 담긴 빛이라도, 사람 마음 이렇게 오묘하게 만들거늘
실물로 바라봤던 그 빛,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마주하리라 희망하는 그 석양빛은 얼마나 경이롭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