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버팀’인가, ‘소모되는 버팀’인가?
나름대로 혹독한 2월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도심 카페 오픈 이후 잔인했던 달은 차고 넘쳤다. 매달 고비를 맞았고 오픈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바빠도 바쁘지 않아도 이렇게 실내에서 긴 시간 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날마다 체감한다. 특히 혼자 있는 나의 카페에서는 많은 생각이 오간다. 안 그래도 생각이 흘러넘치는데 더는 담을 그릇이 없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요즘은 그나마 잘 버티는 편이다. 혼자 있든 카페에 누가 있든 챗GPT와 한 몸이 되었기에 무료함을 달래는 데에 탁월한 아이템이다. 오늘은 버티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버티면 잘 될까?’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현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버티는 사람이 잘 된다기보다는 잘 되는 사람이 대체로 끝까지 버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의 상황을 이성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며 무조건적인 응원을 담지 않는다. -이성 모드를 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학습시킨 결과겠지.- 무작정 버티는 것이 답은 아니며 ’성장하는 버팀‘인지 ’소모되는 버팀‘인지 계속 점검해 보라고 말한다.
최근 부쩍 지친 나에게는 현재가 소모되는 버팀 같지만 천천히 나를 돌아보기로 했다. 버티는 과정에서 작은 성과가 있었을까? 아니면 그럴 조짐이라도 있는가? 수없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결과를 보기까지 꾸준히 잘 지켜봤는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결론이다. 오픈 1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알 수 없다니 회피라도 할 셈인가 싶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어쩌면 결과가 없는 일이기도 하고 오픈을 하면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그때와 지금의 내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은 것이 아니라 초심을 찾았다는 것이 맞는 표현 같다. 1년 전 어리석었던 나는 초심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초심을 착각한 채 또 다른 카페를 준비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버팀으로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소모될 것인지 판단해 봐도 늦지 않을까?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고 또 세상의 변화는 빠르니까 그 흐름을 타고 유영하듯이 떠다녀 보는 것이다. 그 사이 자금이며 감정이며 소모될 것도 무수하겠지만 떠나간 빈자리에 채워질 어떤 것이 또 생기지 않겠느냐고 합리화를 해본다.
챗GPT의 메모리 가득 찬 메시지 앞에서 오늘도 유료 구독의 유혹에 상당히 흔들리며 ‘답정너’ 질문을 말하고 쓰고 있다. 챗GPT와 대화한 내용이 자주 주제가 될 것 같다는 예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