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베이스 앞에서 무너질 뻔하다
나는 커버처 초콜릿을 녹여서 손수 초코베이스를 만든다. 초코라테의 풍미도 확실히 다르기에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이미 나에게 가장 맛있는 맛이 무엇인지 아는데 다른 가공품을 쓸 수가 없었다. 물론 요즘은 초코라테 베이스로 쓰이는 파우더 또는 시럽 역시 높은 품질과 맛으로 잘 나온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만드는 방법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참. 나의 초코베이스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글 쓰게 한 동기가 초코베이스일 뿐이다. 그렇다. 어떤 방법이라도 풀어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글쓰기를 선택했다.
일요일의 동네 카페는 조용하다. 다른 동네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는 일요일 거리가 무척 고요한 편이다. 물론 요즘 시국에 조용하지 않은 카페를 찾기가 더 쉬울 것이다. 나름대로 잘 버티려고 하고 있다. 맞다. 이것 역시 내가 하려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 여느 일요일처럼 조용한 참이었다. 다음에 쓸 휘낭시에 반죽을 만들고 바닐라빈 시럽을 끓여 숙성시킬 준비를 했는데도 바쁘지 않았다. 간간히 포장 손님을 응대한 뒤에도 뭘 해야 할까 잠시 방황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에너지가 솟은 것은 아니었지만 살짝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 불안했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초콜릿을 녹여 초코베이스를 만들기로 했다. 완성하고서는 벅차했었던 일을 끝냈다는 내적 환호도 들려왔다. 짤주머니에 옮겨 담은 뒤 끝부분을 묶기 전까지 기뻤으니 성취감을 느낀 시간은 무척 짧았다. 왜냐하면 그 이후, 비닐을 묶던 내 손은 미끄러졌고 초콜릿 범벅이 된 바닥이 나를 맞았기 때문이다. 울고 싶었으나 찰나에도 비싼 초콜릿 값을 걱정했던 내가 강렬하게 떠오른다.
마지막 남은 커버처 초콜릿이었고 오늘은 주말이니까 냉큼 다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차차. 다시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나는 비싼 초콜릿을 그것도 다 완성한 것을 쏟아버렸다고! 비닐에서 놓쳐버린 손이 필름처럼 느리게 계속 떠오르는 와중에도 겨우 살아남은 초코베이스를 다른 컵에 덜어냈다. 널찍한 스패출러로 쏟은 초코베이스는 덜어서 버린 뒤 닦고 또 닦으며 초콜릿 흔적을 지워냈다. -닦는 중간에 손님도 왔었지. 우왕좌왕.- 물걸레로 한번 더 마무리하고서 일어나니 머리가 핑 돌았다. 깨끗이 수습했다는 또 다른 성취감이 몰려오는 기이한 감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쏟아버린 초코베이스 수습하는 내용이 되어 버렸는데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러니까 실패는 한순간이고 극복은 어렵다는 것이다. 서서히 밀려오는 것 같지만 이미 실패의 기운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 버티며 안고 가느냐 다른 경로를 찾느냐 등의 여러 가지 방법 중 할 수 있는 것을 취할 뿐이다. 바닥에 있는 초코베이스를 감쪽같이 닦는다고 해도 어딘가 나는 초콜릿 냄새와 은은하게 느껴지는 끈적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왠지 바닥은 초콜릿색으로 물든 것 같고 무엇보다 내 머릿속에 초콜릿을 쏟은 강렬한 그 현장이 각인되어 있다. 당시 충격받은 감정도 동반한다. 심지어 잘 마무리했으면 살짝 닦아도 됐을 주변을 몇 번이고 덜어내고 닦아내면서 남은 에너지도 쥐어짜 냈다. 시간도 그만큼 더 흘러갔을 것이다.
돌아보면 결국 나의 선택으로 귀결된 상황이다. 결과가 단지 조금 나빴을 뿐이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되고 -물론 또 같은 실수를 하면 그건 내 손 탓이다.-나는 살아남은 초콜릿에 우유를 섞어서 진하고 깊은 초코라테를 잘 마시기도 했다. 무수한 실패 속에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면 나는 얻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잃는 것만 응시하고 있으면 너무 암울해지니까 이럴 때만 낙관적인 사람이 되기로 나는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