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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위로 Dec 30. 2018

또 하나의 시네마적 경험

영화 <로마>

출처 : 영화 <로마>

<그래비티>는 관람보다는 경험에 가까운, 환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우주라는 공간에서의 '생존'이라는 주제만으로도 이런 연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죠. 그 놀라운 연출의 중심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있었고, 감독은 <칠드런 오브 맨>을 거쳐 <로마>를 탄생시켰습니다.


<로마>를 관람하고 나니,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감독인지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예정되었던 촬영감독이 합류하지 못하게 되며 자신이 촬영의 일도 겸하게 되었는데, 촬영 역시 영화의 주제와 톤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정면을 응시하며 인물을 자세히 보기도 하고, 앵글을 고정시켜 가만히 바라보기도 하며,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기도 합니다. 많은 효과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대단한 연출입니다. 정적이면서도 은유적인 분위기와 카메라의 움직임은 우리를 점점 영화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로마>의 또다른 장점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여러 캐릭터들을 다루지 않고 클레오의 이야기만을 다루어서 영화가 복잡해지거나, 어느 순간 정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클레오의 시선과 생각, 사건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일이지요. 우연적이거나 우발적인 사건들의 연속, 클레오가 맞는 새로운 국면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물 흐르듯 흘러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출과 촬영,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완벽한데도 영화는 배경설명에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멕시코시티 로마의 배경을 생생하게 표현했고, 그와 관련된 클레오의 사건까지 연관시켜 '뜬금없는 설명과 정황'이라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게 만듭니다. 설명마저도 캐릭터의 일생에 적절히 스며들어 영화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감독의 전작인 <그래비티>와 거의 같은 시기에 본 <인 디 아일>, <패터슨>보다도 뛰어납니다. 일생과 일생의 관한 이야기이지만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사건들로 인해 감정적인 부분을 더했고, 감정적인 부분도 지나치지 않게 표현되었습니다. (예술영화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페르민, 안토니오 같은 캐릭터들도 존재한다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게다가 사건 속의 조그마한 이야기들까지 디테일이 숨어 있고, 장면 장면마다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이며, 은유의 수단들도 곳곳에 배치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모든 능력을 쏟아부은 영화입니다. 담담하고 잔잔한 일상 이야기이지만, 감독의 연출과 디테일이 더해지니 에술영화 중에서도 수작이 되었습니다.


정적인 분위기와 영화와는 다룬 '진짜' 경험에 따른 이야기,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프닝부터 흥미롭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바닷가 장면에서는 예술영화로서 만들 수 있는 감정적인 영상의 최대치까지 갑니다. 감정의 폭이 넓지만, 전혀 어색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그야말로 수작이자 명작입니다. 보통의 예술영화라면 은유와 시적인 분위기에 집착해 소홀했을 이야기에도, 이 분야의 영화에서는 그리 기대하지도 않았던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모두 뛰어납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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