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뼛속까지 지리학과 Jan 27. 2021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났을 때

설마 했던 내가 걸렸다

첫 브런치를 어떻게 열까 고민하다가 역시나 나의 근황에 대해서 쓴다면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영국에서 지리학 박사를 갓 마친 사람이고, 가족과 함께 이곳에 정착한 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내 소개가 왜 필요한가. 그렇다. 제목처럼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었다(과거형). 그것도 영국발 변종 바이러스에. 언론에서 접했듯 영국발 변종 바이러스는 2020년 가을 영국 남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제는 영국 전역에 퍼졌다. 2021년 현재 하루 5만 명이 감염되며 천명 정도의 중증환자들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있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의 확산세를 막기 위해 지난 3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서 록다운을 하였고 이번 1월에 기약 없는 록다운을 또 하고 있다. 두 번째 록다운까진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성에 대해서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설마 내가 걸릴까라는 생각을 하였으나 아뿔싸, 내가 걸릴 줄이야.


사건은 그러했다. 록다운이 시작되기 전 영국은 Tier 시스템을 운영 중이었고 내가 사는 케임브리지셔는 크리스마스 당일은 자유롭게 모임이 가능한 Tier 2 지역이었다. 그래서 행복한 성탄절 연휴를 보내고 마스크 없이 실내에서 맛난 것 먹으며 여느 성탄절처럼 보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중 한 명이 알 수 없는 경로로 이상증세를 보이더니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분이 확진 판정받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내가,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상해짐을 느꼈다. 심리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진짜..설마 나도?


증상의 시작

Day 1. 다음날 아침, 나는 가벼운 기침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마른기침일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기침은 시간이 지나며 약간의 가래를 동반한 듯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어디선가 들은 소식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난다고 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점점 뭔가 확실해졌다. 불안해진 나는 목욕탕에 물을 받고는 당장 몸을 푹 담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과연 기침이 멈췄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증상은 심해져갔다. 확진 판정을 받은 지인은 밀접 접촉한 학내 구성원들의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개인정보를 알려주었다.


Day 2. 증상 2일 차. 나는 아주 힘겹게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후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체온계를 얼른 꺼냈더니 아뿔싸 38.4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머리에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확실히 코로나에 감염되었구나라는 것이었다. 어제의 기침이 의심 단계였다면, 지금은 확신 단계였다. 멍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밀접 접촉을 하였으므로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증상이 있어서 "자가격리할 거예요"라고 속으로 말했다.


Day 3-5. 증상 후 사나흘째, 여전히 내 육신은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었고, 그 결과로 고열과 어지러움이 끊이지 않았다. 고열은 해열제를 먹으면 진정되었으나 어지러움은 무슨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가장 힘든 점은 밤새 약기운 없이 버티는 거였는데 몸이 얼마나 힘겹게 싸웠던지 자고 일어나면 아주 땀 한 바가지를 흘릴 정도였다.


Day 6-7. 열은 이제 제법 내렸지만 그다음에 찾아온 불청객은 근육통이었다. 아내와 나는 무언가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신음하였고 누워있을 때는 아무래도 표면적에 닿은 면적이 넓은 관계로 등판과 다리가 매우 아팠다. 그렇다고 일어서면 어지러웠다. 이 딜레마를 어찌할꼬. 아내는 끙끙거리면서 계속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나는 바이러스에 질 수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방에서 실내 철봉을 꺼내서 미친 듯이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아픈 거 운동이나 하자라는 이상한 심보였다.

고통을 안고 누워있는 아내 vs 극복하기 위한 남편의 무모한 턱걸이. 과연 누가 옳았을까. 잘을 모르겠지만 내 근육통 증상이 오래간 것으로 보아 고통을 꾹 참고 잠을 청한 아내가 현명한 듯하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와이프 말을 들으라고. 그냥 운동한 셈 치자 그랬지만 너무 아팠다 정말ㅠㅠ 


아내는 7일째 지나더니 본인이 검사받아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하라고 했다. 원래 코로나 스왑 검사를 하고 24시간 안에 연락이 오면 양성 그 이후에 오면 음성인 것 같았다. 이전에 딸내미가 잔기침을 해서 검사시킨 짬바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역시나 다음날 아침 7시에 문자가 왔고 같이 살고 있는 나도 격리하라는 소리였다. 네네 당연히 격리해야죠 느흐스님....


Day 8-9. 근육 관련 아픔이 사라질 무렵...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올라왔다. 일주일이 지나갈 동안 사실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고 배고프면 과자나 집어먹었더니 체중이 무려 5kg 가까이 빠져있었다. 의무감으로 식사를 하긴 했으나 후각과 미각이 사라짐을 깨달았고 그 맛난 배달음식들도 사치스럽게 여겨졌다. 코로나 후기를 담을 여러 블로그를 찾아봤는데 열흘 지나면 확실히 좋아진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그날을 위해서 남은 수일을 참기로 하였다. 잠깐 사라진 고열이 재발한 경우도 있었다. 이래서 해열제를 끊을 수가 없어....


Day 10. 열흘째 아침이 되었다. 마치 약속의 날이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6-7시간마다 복용하던 해열제는 하루에 2알 정도로 급격하게 줄였다. 그래.. 이놈아 내 몸에서 10일 동안 즐거웠다 얼른 설4를 통해 물러가거라라고 외쳤다. 화장실도 몇 번 왕래했다. 이윽고 저녁이 되니 뭔가 걷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앉아있는 것도 한결 편해졌다. 이놈 자슥이 내 몸에서 물러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때마침 금요일 밤이었고 나는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를 틀고 자축했다. 오우 아이유 너무 고마워요.


Day 11+. 열하루째가 된 아침.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모닝 조깅을 하였다. 상쾌한 겨울 내음새가 어찌나 좋은지 영상 3도가 되는 추운 주일 아침이었으나 기온 따윈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냄새는 못 맡지만 일상생활은 가능함. 


변종 코로나가 내게 준 교훈

익히 알려진 대로 변종 코로나는 전염력이 50%나 더 높다. 그래서 실내 같은 공간 안에서 마스크를 벗는 순간 감염은 거의 기정 사실화이다. 영국 내 연구결과에 따르면 1/3 정도는 무증상 감염자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거기에 들지 못했다. '유증상자'이면서도 '항체를 가진 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일단은 수시로 마른기침을 한다는 점이다.  마스크를 끼더라도 사람들은 나의 기침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그 장소가 도서관이 되었건 마트가 되었건 나는 몰래 기침을 삼켜야 할 것이다. 덕분에 Halls만 잔뜩 쟁여놨다. 또 하나는 심리적으로 뭔가 위축이 된 느낌이다. 내가 설마 걸리겠어? 하고 오만했던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나는 건강에 자신 있었는데, 건강한 몸뚱이라도 작디작은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당해버렸다. 이로 인해 공공장소를 다닐 때도 모든 것이 더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후각과 미각이 아직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아 힘들 수도 있겠다. 앞으로 쉽지 않겠지만 한발한발 조심하며 살 자라는 것이 내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이고 혹시 마스크 벗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은 잠시 뒤로 미뤄야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택배에 관세를 부과하는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